본문 바로가기
이런거 저런거/해군

해군첩보부대 502기지 912부대 비둘기편대 UDU

by 구석구석 2022. 9. 28.
728x90

 

■ 해군첩보부대 502기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면 죽는다

해군 첩보부대 502기지는 침투 잠수정을 운용하기 위한 부대로 1973년 창설되었고 1974년 비둘기로 명명되는 코스모스급 잠수정이 이탈리아에서 도입되었다. 이는 공작원(UDU)들이 직접 운용하는 사자를 싣고 다니는 호송임무가 주목적인 소형 잠수정이다. 도입할 당시 이탈리아 잠수정 기술자와 교관들도 한국에 같이 왔다.

ㅇ해군의 공식적인 기록인 최초잠수함 돌고래급보다 이전인 셈이다. 코스모스 특수작전용잠수정은 10명 내외의 특수요원이 탑승해 정찰, 기뢰봉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대형함정을 폭파할 수 있는 250Kg무게의 Big Charge 6개, 50kg무게의 Small Charge 10개, 일명 접시폭탄으로 불리는 Impact Mine을 싣고 다녔다.

ㅇ코스모스의 기준배수량은 약 70톤급 정도로 정규잠수함으로 보기 힘들며 도입비용이 저렴하고 운용유지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이 잠수정에 탑승했던 승조원들은 이후 잠수함대에 주력이 될 핵심요원들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컸다.

현재도 코스모스급은 한국해군에서 운용되고 있으며 장보고급 이상의 중형 잠수함의 부장으로 임명되기 전에 대위, 소령급 장교들의 지휘코스로도 활용되고 있다.

ㅇ설립당시 부대정식명칭은 해군첩보부대 502기지로 신성기업 마산지사라고도 불렸으며 섬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완전 이주시키고 훈련장이 만들어졌다. 502기지부대의 부대원들은 비둘기요원으로 해군장병들이 무작위 착출됐다. 이들 중 신체검사와 체력검정 불합격자는 다시 부대로 보내지기도 했다.

ㅇ502부대는 정보, 본부대, 수리소와 작전팀인 모선운영하는 고구마전대, 중계선을 운영하는 비둘기편대, 상륙용 잠수함을 운영하는 사자편대로 구성되었다.

ㅇ북파공작의 핵심인 육상 임무를 수행한 사자 요원들은 특수요원기초훈련(B-6)을 통해 '인간 병기'로 만들어졌다. B-6는 수영, 잠수, 폭파, 침투, 생존, 암살 등을 내용으로 하는 28주 과정이다. 사자 요원들은 따로 선발돼 전역 때까지 한 부대에서만 근무했으며 비둘기요원들은 5-7년간 근무를 했으며 일반해군부대로 전출되어 종신 서약서를 쓰고 강제전역을 당했다고 한다. 

ㅇ비둘기요원들에게 폭탄조작, 수중운반, 폭파 등 잠수정 운영법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당시 비둘기요원들이 받았던 훈련은 'U1'이라고 불렸으며 28주과정이었다. 훈련내용은 잠수훈련, 항해기법, 기술정비, 폭약설치 등 다양했다. 또 정기적으로 무귀환 훈련, 유사지역침투훈련, 탈출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1985년이후 'S-1'이라고 명칭이 바뀐다. 이후 공작원(UDU)들이 운용하는 사자편대 6개팀 또한 502부대로 배치 되었으며 502기지는 1990년 11월에 국군 정보사령부 제 912부대로 개편된다. 이후 바다에서 작전하는데 비둘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갈래기로 명칭이 바뀌었다.

ㅇ비둘기편대의 역할은 북파특수임무 보상을 신청한 이들이 보상이 거부되자 이에 불복하여 제기한 소송의 판결문과 언론사의 취재로 밝혀졌는데 다음과 같다.

ㅇ고구마라는 모선에 중계선 잠수정인 비둘기, 그리고 최종 상륙용 소형 잠수정인 사자를 싣고 고구마가 출항하여 NLL 이남에 다다르면 사자를 탑재한 중계선 잠수정 비둘기가 NLL을 넘어 북한 육지 바로 코 앞, 수심10M 지점에서 특수공작원(UDU)을 태운 사자를 분리하고 이 분리된 사자를 타고 공작원들이 육지까지 침투하는 형식이다.

ㅇ작전상 분명 NLL을 넘는 이들의 역할은 '호송임무'였다는 이유로 보상신청이 거절되었으며 재판에서 또한 같은 이유로 패소하였다. 분명 1972.7.4.남북 공동성명 이전 북파공작이 실행되던 시기엔 직접 상륙하여 공작을 실행하는 해상정찰대(UDU)가 아닌 해군 정보부대(NIU)의 지원요원들도 보상을 받았는데 왜 이들은 못 받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72.7.4.남북 공동성명 이후 북파공작은 실행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이들은 훈련만 받은 것이다.

728x90

ㅇ비둘기부대 요원들은 소형잠수함을 타고 북한 항만 수심10미터까지 침투 상륙해 정찰 등의 단독 임무와 함께 적 함정 폭파 등의 임무를 맡은 사자요원들과 합동임무를 수행했는데 특수임무요원으로 인정되지 않아 억울하다고 한다.

ㅇ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박태준 부장판사)는 비둘기 요원으로 활동하던 곽모씨 등 13명이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ㅇ'특수임무'는 아군의 군사적 보호와 통제가 되지 않는 지역에 침투해 위험에 노출되는 군사적 활동을 하는 것"이라며 실제 호송업무를 수행했다면 특수임무 수행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훈련만으로는 특수임무수행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판결문을 근거로 도출된 결론은 UDU를 호송하는 이들이 실제 호송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훈련만 받았으며 당연히 이들이 호송하게 되어 있는 공작원(UDU)도 7.4남북 공동성명 이후엔 북파공작임무를 수행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원요원들은 실제 북파공작임무에서 지원을 해야 보상 받지만 공작요원들은 실제 북파공작임무를 수행 하지 않았더라도 법률이 명시한 기간동안(1948.8.15.~2002.12.31.) 첩보부대소속으로 훈련만 받았어도 보상해준다.

■ 912부대 잠수정폭발사고

진해군항에서 발생한 북한 침투용 특수 잠수정 ‘갈매기’(옛 '비둘기'·70톤급) 폭발 사고는 배 안에 가스가 축적돼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2016.8.16일 국방부 당국자가 말했다.

군 관계자는 “지난 5월 2일부터 9월2일까지 정기 점검을 위해 해군 수리창에 들어온 ‘갈매기’ 잠수정이 정비를 위해 상가대(육상 거치대로 올려 배 밑부분을 수리하는 시설)로 이동하던 중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스가 함내에 축적돼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수리도중 폭발한 잠수정은 국군 정보사령부(사령관 노상원 육군소장. 육사41기)가 운용하는 특수 잠수정 ‘갈매기’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수작전용 잠수정 ‘갈매기’는 10명 내외의 특수요원이 탑승해 적진 정찰 및 기뢰 봉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잠수정은 1970~1980년대 북한에 침투해 특수임무를 수행했던 특수 첩보부대원의 중계 수단으로도 알려져 있다. 잠항심도는 150m이며 수중속도는 7노트다. 잠수정을 운용하는 ‘갈매기 편대’는 국군 정보사령부 제 912부대 소속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16 14:07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해군의 첩보부대로 대북침투팀을 운영했었으며 현재는 국군정보사령부로 편입됨

-일반 모집으로 장기하사관근무

 ***창설 

-위장명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54년 만들어진 이 부대의 전신은 이미 48년 6월에 마련되고 있었다. 방첩대였던 미국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가 은밀히 가동하고 있었던 대북공작대가 바로 그것.

-1955년 4월 UDU란 명칭으로 요원선발

-신원이 확실한 방첩부대에서 차출된 1기, 2기요원들은 미국령 모 처에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산 수영만에 1차 집결한 뒤 미군 수송기에 탑승, 오키나와를 거쳐 훈련장소에 도착했지만 비행하는 동안 내내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착한 곳은 자신들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3기부터는 훈련장소를 국내로 옮겨 서해 모 기지에서 훈련을 받기에 이른다.  

***모집

-1960년6~10월(UDU6차) : 전 해군부대에서 모집, 엄격한 체력, 신검, 신원조사, 15명선발 

-육군 hid 30명과 함께 진해 UDT b-6과정위탁교육 수료후 부대복귀

-1961년~1967년(UDU7차~13차): 해군정보하사관선발 자체교육실시하고 해군 UDT에서 수시로 인원보충

-1968년6월23일 : 서해북한 부포항 공작중 UDU 6명전사 하였으며 이들은 전UDT대원으로 알려져 있다. 인원부족으로 해군하사관에서 선발하여 UDT에서 b-6교육훈련후 복귀

-UDU 부대가 초창기의 반양성·반음성적 성격에서 완전한 음성부대로 전환되면서부터는 현역 군인에서 차출하던 요원을 민간인 입영대상자에서 뽑게 됐다. 한번에 40∼50명 선발했고 이들이 안전가옥에서 실시하는 기본교육 6개월

-이른바 밀봉교육을 거치면 정식 수료로 인정돼 공작원 채용계약을 맺는 식이었다.    

                                                         

 ***임무 및 활동

-주로 요인납치 및 암살, 폭파, 기습, 잔류공작원 보급 및 접수, 수송, 철로폭파, 적 통신시설 감지 등이었다. 이들의 북파공작은 71년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에도 부대는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대북공작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61년 처음 임무를 수행(북파)했으며 그 뒤 71년까지 11년간 모두 40여 차례에 걸쳐 북파공작임무를 수행했다.

-63년 지원공작임무를 수행할 때였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공작원을 '접수'해서 복귀하다가 적들과 조우했다. 내륙에서 시작된 교전이 서해 백령도를 통해 귀환할 때까지 40여분간 계속됐다. 적 PT(해군고속정)와의 교전중 나중에는 권총 실탄마저 다 떨어져서 큰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다. (대원인터뷰에서) 

입소하는 교육생들

***훈련

-기본교육 6개월의 과정은 상상외로 혹독해 대부분은 탈락하고 채용계약을 맺게 되는 훈련병들은 대략 10명 안팎이라고 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UDU 출신들은 훈련과정에 대해서 만큼은 말하기 꺼려했지만 자신들이 하는 훈련은 상대방과의 격투에 대비한 '일반 특공무술'이 아닌 효과적인 살상을 위한 '특수살상무술'이라고 밝혀 특전사나 UDT, 해병대 특수수색대와는 다른 훈련과정을 거쳤음을 암시했다.

 ***직제

-군의 체제가 아닌 일반 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소대장은 대리, 중대장은 계장, 부대장은 사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어 부대의 노출을 얼마나 기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신성기업사, 만포개발단, 해양과학연구소로 위장하여 활동을 하였다.

-현재 UDU 교육대에서 UDT(b-6)교육을 실시하고있음.                                                                  

이경재의원 자료

***현실적인 문제

부대 출신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상대적인 박탈감이다. 일단 생존자들의 경우 그들이 목숨을 바쳐 국가를 위해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후 그에 따르는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부분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현재 공공연하게 실체가 인정되고 보상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HID와는 달리 최근의 '북파공작원 논의'에서조차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을 더욱 분통터지게 한다. 

-실종처리되고 있는 5·16 이전 공작원들의 생사확인 또한 시급하다. 지금도 북한내에 살아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상당수의 UDU 요원들은 지난달 2일 북송된 대다수의 비전향장기수와 대칭을 이룬다는 점에서도 정부는 이들의 생사확인과 송환문제를 외면해선 안된다.

한편 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문제(북파공작원, UDU)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부분이고 특수보안에 관한 사항이라 확인조차 힘들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이 있다면 군은 이런 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적법한 절차에 의거해 보상해 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가 목숨 걸고 사선을 넘나들었을 때 돈을 바라고 그 일을 했겠는가. 그저 조국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쳐 충성한 우리들의 순수한 뜻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훈장하나 받고 못받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UDU 동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다. (국가보상에 대한 인터뷰) 

위글의 출처 : 특수부대겔러리다음카페 '해군첩보공작'

대한민국해군인터넷전우회-해군추억록-군사이야기 

 

 

ㅁ 월미산 월미공원에 있는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해군첩보부대는 1948년 6월 10일 창설된 이래 수백회의 공작을 수행하였다.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된 6.25전쟁중 특히 50년 9월 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영흥도탈환 팔미도 등대 확보공작을 성공시킴으로써 인천상륙작전에 큰 공을 세웠다.

해군첩보부대는 반세기 동안 이곳 월미도 언덕위에 주둔하였다.

그간 국토의 분단과 이념의 대결상황에서 남북간에는 소리없는 첩보전이 계속되었다.

당시 비밀공작에 투입된 해군첩보부대원들의 희생과 공훈은 지대하였으므로 이를 기리고 선양할 필요가 있었다. 특수임무 수행중에 산화한 350위의 영령들을 기리기 위하여 예비역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 동지들의 뜻을 모아 2011년 11월에 이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이탑을 건립하는데 국방부 해군본부 국가보훈처 및 인천시의 많은 지원과 성원이 있었음을 아울러 밝힌다. - 2011. 11. 10 국가보훈처장-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음지에서 산화한 첩보부대 전우여러분의 영원한 안식과 삼가 명복을 빕니다. / 해군참모총장

 

 

첩보부대 전우들의 이름은 특수임무수행자라는 특수성에 따라 탑하부에 매설되어 있다.

북파공작원 - HID UDU (tistory.com)

 

북파공작원 - HID UDU

오래전의 자료인데 다시 업로드합니다. 북파공작원 공식규모 확인 '실미도 사건' 등으로 어렴풋이 존재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실체가 그동안 베일에 감추져온 북파공작원의 실상이 정부에 의

choogal.tistory.com

 

728x90

'이런거 저런거 > 해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응징보복대 해병812망치부대 망치작전  (1) 2022.09.30
해난구조대 SSU  (1) 2022.09.30
연평부대 공룡부대  (2) 2021.12.26
해병1사단 제1전차대대  (0) 2021.12.21
해병2사단 / 제2전차대대  (0) 2021.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