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거 저런거/군대이야기

수방사 제1경비단 30경비단 33경비단

by 구석구석 2020. 4. 19.
728x90

 

ㅁ 수도방위사령부 Capital Defense Command 1경비단

 ㅇ30경비단 청룡대대 북악산 / 33경비단 백호대대 인왕산

ㅇ육본직할부대로 서울시 방위를 하는 부대라 시내에서 장갑차를 운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부대이며 대통령직할로 전작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1961. 05. 16  보병 제 30사단에서 반란군으로 출동하여 중앙청에 주둔 ( 부대명칭 30전투단으로 출발 )
1961. 06. 01 수도방위사령부 창설
1961. 06. 03 부대명칭 30대대라 칭함 
1961. 06. 20 28/741명 창설요원으로 창설 (1ㆍ2ㆍ3ㆍ화기ㆍ본부중대) 
1961. 06. 24 중앙청에서 경복궁으로 부대이동 
1961. 06. 29 제 5160부대라 칭함 
1963. 12. 17 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 
1964. 11. 01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로 수도경비사령부에 배속 (부대명칭 5219부대 라 칭함) 
1974. 10. 03  611헌병제대 창설  
1974. 11. 01 4중대(화기중대)는 5중대로 바뀜과 동시 해체  
1975. 06. 01 30대대에서 30경비단으로 승격
1975, 09. 05 6중대 창설
1976. 03. 29 전차중대 창설 
1984. 01. 05 수도경비사령부 에서 수도방위사령부로 개칭 
1996. 12. 01 30경비단과 33경비단 통합. 제1경비단(3033부대)으로 창설 - 현저동으로 부대이동.

1경비단 1경비대대 청룡

ㅇ 북악산과 인앙산 경비담당하며 30사단과 33사단의 1개대대가 친위대형식으로 경복궁과 독립문에 주둔하며 충정훈련을 하였고 이들 부대가 수방사의 모태이다.

군사정부때 이들대대는 증편되어 경비단으로 승격되었으나 1996.12.17일 김영삼정부 때 군사독재청산에 따라 다시 대대급으로 축소되었고 1경비단이 창설되면서 30경비대는 1대대(청룡), 33경비대는 2대대(백호)로 흡수되었다. 

청와대외곽, 북악산과 인왕산의 일부를 담당하는데 전방사단과 같이 산속과 도심간에 순환근무를 하며 소대단위로 생활하기에 여군이 없는 부대이다. 격오지대우를 받아 특수근무자 증식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수당도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없다. 

단본부는 보안사항이며 예전에는 숲속에 있어 몰랐으나 지금은 건물속에 있어서 노출되어 있으며 호위부대성격이라 평시에도 완편되어 부대가 운영되며 군기가 빡신데 실탄을 휴대하고 민간인을 상대하며 경계근무를 하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배치전에 신원조회는 필수다. 또다른 이유는 눈이 띄는부대이기에 군기 또한 세다.  

지난 촛불집회때 계엄령이 발동되면 1경비단이 제일가깝기 때문에 제일먼저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12.12군사반란때도 30경비단(장세동대령), 33경비단(김진영대령)이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을 배반하고 구테타의 주류였다. 지금도 이곳을 거처간 지휘자는 진급우선이다.   

 병력은 신교대에서 허우대좋은 자원을 1차적으로 차출하며 안경착용자도 있단다.  

 

1경비단가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같이 의지와 정열로 뭉친 용사들

북악과 인왕의 정기를 받아 서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가슴에 깊이 새긴 결의로 내 조국 철통 경계 위하여

천 년을 우뚝 선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나라 지켜나가자

청룡 백호 용맹받아 행동으로 충성다하여서

전군 유일 최정예 근위부대 제 1경비단

 

30경비대 / 청룡대대

12·12때「정승화체포」모의장소로 이용되었던 30경비단은 경복궁내 북단에 본부를 두고 32년동안 청와대주변 최근접 경비임무를 맡아온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로 1975년 차지철 경호실장때 연대규모로 증편되면서 30경비대대에서 30경비단으로 되며 친위대역할을 해왔다.

경복궁 경회루 뒷편 경내에는 장갑차와 시위진압에 필요한 장비들어 대기하고 있었으며 대통령 만찬에 유일하게 영관급 장교로 참석할 자격이 부여된 30경비단장은 당연히 진급과 출세코스로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하나회원들이 독점하다시피했다. 이곳을 거쳐간 이는 67년 30경비대대장을 역임했던 전대통령을 비롯, 손영길장군, 이종구 전국방장관, 전안기부장, 이현우전경호실장등이 있다.

728x90

태원전 - 12․12사태 발생지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일으켰던 군사 반란의 현장으로 구 수도방위사령부 제30경비단이 주둔하였던 곳이다. 원래는 경복궁 태원전 자리였으며,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박람회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헐렸다. 이후 조선총독부 청사 및 총독 관저 경비 일본군 부대가 주둔하였고, 5․16 이후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이 주둔하였다. 태원전은 1996년 말 제30경비단이 이전 하면서 2005년에 복원되었다.

 

33경비대 백호대대

현재 17사단인 33사단의 1개대대가 군사쿠테타후에 남아 33대대라 불리다 33경비단이 되면서 수방사의 모태가 되었다. 청와대인근은 비행금지구역이라 비행기가 뜨면 경고사격이 없이 바로 조준사격을 하게되어 있다.

독립문에 주둔하며 북악산 스카이웨이, 청와대뒷편 경계를 담당하며 초소에는 소대단위로 8명이 근무한다.

12.12 군사반란때 9공수와 33경비단이 출동만 했어도 반란은 제압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 9공수(여단장윤흥정준장)는 육본의 명령으로 출동했다가 신군부의 계략으로 경인고속도로를 들어서기 전에 원대복귀를 했고, 33경비단의 차기준중령이 전차12대를 이끌고 수경사가 있는 필동으로 출동하였으나 신군부측의 김진영대령이 회유하여 서대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1공수여단은 행주대교를 건너 육본과 국방부를 향하고 3공수여단(여단장최세창준장)의 15대대(대대장 박종규중령)가 직속상관인 특전사 정병주사령관을 체포하러 출동하고 수경사 헌병단은 사령부를 접수하게 된다.  

33경비단 충정훈련

 33경비단 8중대에서 예전엔 청남대경호를 했는데 그래서 청남대경호부대가 338경비대이며 배우 오지호가 이곳출신이다.

 

1경비단 기동타격대

예전에는 기동타격대로 헬기레펠을 했으나 현재는 안하는 것으로 안다.

대대에 1개소대씩 2개소대가 기동타격대로 되어 있어 교대로 근무하며  청와대 외곽에서 발생하는 긴급사태에 대응한다.   

특공무술 / 기동타격대카페에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