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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국방1

독수리작전 Eagle Project

by 구석구석 201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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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미국 전략첩보국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관계자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2지대장 이범석이 비밀리에 만나 광복군과 미군이 연합하여 공동으로 수행하는 비밀 작전을 세우고 미군 중국전구사령부(Headquarters, US Forces, China Thearter)에도 보고되었다.



3지대의 김학규도 독자적으로 셴놀트 소장 및 OSS 실무진과 접촉해 3월 15일 한미 군사합작에 관한 6개항의 원칙에 합의했다. 이 원칙은 미국이 광복군에 훈련과 장비를 제공하는 대가로 광복군은 대일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미국에 제공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였다.

 

미군이 광복군을 훈련하고 장비를 지급하여 한반도 내에 투입, 후방에 전선을 형성하는 비밀 작전 일명 '독수리 작전'이 수립된 것입니다.



광복군은 미국 전략첩보국 사전트 소령의 지휘 아래 혹독한 첩보교육 및 잠입 전투 훈련을 받았다.

 

2지대에서 1945년 8월 4일 1기생 38명이 교육을 마쳤고 2지대와 3지대에서도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독수리작전이 중지되었다.

 

▲OSS특수훈련을 마치고 미군 교관들과 함께 한 노태준선생 (첫 번째열 왼쪽에서 첫 번째)ⓒ독립기념관
노태준 선생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군 OSS와 연계하여 국내에 진입, 대일첩보활동을 전개하고자 계획된 국내정진군의 제2구대장에 임명되고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맡기로 했었다. 

[출처: http://mpva.tistory.com/1625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1기생들은 광복군과 OSS가 연계하여 국내침두 공작반을 편성했고 김구주석과 독립군 지청천사령관이 작전을 하기로 선언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한반도 안의 모든 적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기백으로 출전한 우리 광복군에게 뜻밖의 전면 철수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바로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더 이상의 지상전은 필요 없다는 판단으로 독수리 작전이 취소된 것입니다.



뼈를 깎는 훈련을 마치고 눈앞에 조국을 두고 퇴각해야 했던 젊은 광복군들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의 기쁨을 누렸지만 빼앗긴 주권을 스스로 찾지 못한 아쉬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출처 : 따뜻한하루의 메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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