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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해외 파병

에티오피아-가그뉴 강뉴부대 KAGNEW 지게부대

by 구석구석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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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근위대에서 차출되어 2,200명이 1951년 5월 6일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가그뉴대대

 

전쟁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근위대에서 뽑은 병사들은 한국지형과 비슷한 곳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강적을 궤멸시킨다는 뜻의 가그뉴(kagnew)를 부대명으로 하여 한국전쟁에 참가했으며 1965년 1월에 완전 철수했다.

 

5차례 파병으로 121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포로는 단 한명도 없었는데 황실근위대는 포로가 있을 수 없는 충성스런 군대이기 때문이다.

 

춘천 근화동의 참전기념비 문구

 

 

가그뉴부대는 미제7시단 제32연대에 배속되었으며 강원도 중동부전선에서 활약한다.

1951년 9월 금화 적근산전투, 1952년 10월 철의 삼각지대인 김화 철원 평강전투에서 중공군을 상대하여 고지탈환을 했는데 이때 사상자가 가장 많았다. 

 

 화천 봉당덕리전투, 적근산 펀치볼 전투, 금화지구전투등에서 활약했으며 출정에서 황제가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는 황제의 명으로 참전국중에 유일하게 실종자와 포로가 없는 국가이다.

 

휴전후 셀라시에 황제가 1968년 5월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춘천의 전쟁참전비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군사쿠데타로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참전자들의 집단촌도 반역자들이라 몰리게 되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참전기념 훈장등 당시의 포상물을 내다 팔며 생활하고 있다.

 

강뉴부대와 지게부대

1952년 6월 21일,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와 우리나라 지게부대가 진정으로 혈맹을 맺게 되는 감동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때의 일을 계기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는 대한민국을 '혈맹'이라고 기억하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지게부대는 6·25 전쟁 당시 지게를 사용해 보급품을 운반한 우리나라 민간인 부대를 말합니다.
전쟁에 있어서 보급은 승패를 좌우할 만큼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로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유엔군은 민간 인력을 요청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지게부대'입니다.

지게부대는 10대~6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으며, 군번도 계급장도 없었고 철모는커녕 흰색 무명 바지, 학생복 등 징집당했을 당시에 입었던 옷 그대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눈에 잘 띄는 복장이었기에 적에게 많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지게부대는 탄약, 연료, 식량, 보급품 운반과 진지 공사, 부상자와 사망자 후송 등의 많은 일을 했으며, 유엔군과 함께 온 전장을 누빈 한국전쟁의 또 다른 숨은 영웅이었습니다.

지게부대에 동원된 인원은 3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들은 전쟁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무명용사들이었습니다.

그리스 종군기자로 한국 전쟁을 취재했던 키몬 스코르딜스의 '강뉴, 에티오피아 전사들의 한국전쟁 참전기'라는 책에는
1952년 6월 21일 북한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강뉴부대와 지게부대 사이에 발생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뉴부대 용사들의 말에 의하면 그날 전투에 임한 강뉴부대 멜레세 일병과 이름 모를 지게부대 용사의 최후는 서로의 피와 살과 뼈가 뒤엉켜 누가 누구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뉴부대 용사들은 지금도 그날의 일을 'Mixed Bloo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부를 때도 또한 'Mixed Blood!'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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