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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남원 아영면-성리 치재~매봉~봉화산

by 구석구석 201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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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남원의 봉화산(烽火山·919.3m)은 느긋하게 철쭉 향연도 즐길 수 있고,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산행의 쾌감도 맛볼 수 있는 산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봉화산 남쪽 치재와 꼬부랑재 근처 등을 비롯해 산 전체가 호화로운 철쭉 군락을 이뤄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1996년 산불로 산등성이 동쪽 비탈 일대 철쭉밭의 상당 부분이 불타버리면서 그 명성도 퇴색됐다. 다행히 봉화산 남쪽 지역은 화마를 피해 매봉을 중심으로 한 복성이재~치재 구간의 철쭉밭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산행 코스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의 짓재마을 '봉화산 철쭉군락지 입구'를 기·종점으로 하는 원점회귀 코스로 꾸몄다. 철쭉군락지 입구~매봉~꼬부랑재~다리재~봉화산~헬기장~흥부정~구상저수지~하성마을을 거쳐 기점으로 돌아온다. 총 산행거리 8.3㎞에 철쭉 감상까지 포함해 4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기점에서 25분만 걸으면 철쭉 군락인 치재에 이르기 때문에 꽃놀이만 즐기겠다면 2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점은 표석과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봉화산 철쭉군락지 입구다. 단체 가이드 산행이라면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751번 지방도를 따라 3분가량 더 달리면 도착하는 복성이재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는 게 낫겠다. 주차공간이 넉넉해 관광버스를 대어 놓기 좋다.

 

민박을 겸한 철쭉식당을 우측에 끼고 포장임도를 따라 등로가 열린다. S자로 굽이치는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포도와 오미자, 밤나무 농장, 대규모 양돈장인 늘푸른농장을 차례로 지난다. 15분여를 올라 등성이 가까이에 오르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편으로 난 길은 산허리를 가로질러 등성이를 따라 봉화산 정상 턱밑까지 연결된다. 치재의 철쭉군락지로 오르려면 왼편 길로 곧장 올라간다.



5분쯤 더 걸으면 간이 주차장에 이른다. 머리 위로 돌연 와르르 꽃사태가 펼쳐지며 산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나무데크 계단이 시작되는 이곳이 철쭉군락지로 이름난 치재다. 통신탑이 있는 매봉을 중심으로 치재에서 복성이재에 이르는 능선이 온통 흐드러진 철쭉 물결이다. 촘촘하게 짠 진분홍 융단이 산을 뒤덮었다. 화려하고 고혹적이다. 꽃의 밀도나 선연한 빛깔이 예사롭지 않다.

 

높이 2m가 넘는 산철쭉 군락은 사람 키를 삼킬 정도의 터널을 이루 는데 그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사람은 꽃이 되고 속계는 선계가 된다. 몇 년 째 이어진 역병으로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시름을 잊기에 더없이 좋다. 세상인 듯 아닌 듯 사람인 듯 아닌 듯 꽃에 취하다보면 함께 동행한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칠 수도 있으니 꽉 잡아야 할 일이다. 그렇게 들어간 철쭉 꽃 터널을 빠져나오면 어느새 봄은 저만치 달아나고 길목에선 여름이 기다린다.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지리산 바래봉에 비하면 아무래도 규모는 작지만, 높이 2m에 이르는 유난히 키가 큰 철쭉밭이 한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찰 정도로 조밀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다. 철쭉터널 속을 지나면 뚝뚝 떨어지는 붉은 물에 몸과 마음도 이내 빠알갛게 물든다.

전망대에서 매봉(712m)까지는 20분이면 왕복할 수 있는 거리지만, 넘실넘실 꽃물결에 취해 발걸음은 더디어진다. 목재데크 전망대나 쉼터 정자에 앉아 철쭉의 바다를 바라보면 어느 것이 사람이고, 어느 것이 철쭉인지 분간조차 어렵게 된다.

 

양쪽으로 탁 트인 산 아래 풍경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남원에서도 동북부 끝자락에 해당되는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소재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산하를 내려다보면서 비로소 백두대간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여백을 가지고 사는 농촌의 사람들과 그들이 가꾼 삶의 터전인 농지를 발 아래로 내려다볼 땐 천상화원의 선인이 된 느낌이다. 더욱 감사한 일은 이런 선물 같은 풍경들을 오랜 산행이 아닌 잠깐의 노고만으로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부담이 없는 가벼운 오름이다.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철쭉에 묻히고 향기에 취했다면, 본격적인 산행 구간이다. 백두대간길을 따라 북쪽으로 정상 등산로로 접어들면 인적도 뜸해지고, 달떴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소나무숲 지대와 크지는 않지만 듬성듬성 철쭉 군락지, 희미한 꼬부랑재를 지나면 작은 무명봉에 올라선다. 35분 소요. 간벌을 하지 않아 소나무들이 어지럽게 시야를 가리고, 쓰러진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어 다소 번잡한 편이다.

다시 20여 분가량 오르내리막을 이어가면 이정표가 있는 다리재에 이른다. 다리재와 맞닿은 봉우리에서는 시야가 다소 트인다. 남쪽 능선을 따라 바래봉, 고리봉이 이어지고, 그 뒤로 어렴풋이 지리산 종석대가 보인다. 봉화산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은 높이는 야트막한 편이지만, 그 산세가 매서워 우리 땅의 등뼈인 백두대간 위에 서 있음을 실감케 한다.

 


잡목을 헤치고 나가면 철쭉 터널이 다시 시작된다. 억새밭 사이로 철쭉 물결이 산등성이를 붉게 태우고 있는 곳이 삼각점이 있는 봉화산 정상이다. 매봉에서 시작된 철쭉 봉홧불이 정상에 옮겨 붙은 듯하다. 매봉에 비하면 군락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하늘 아래 사방 시야가 확 트이는데다 금빛 억새와 어우러진 삼색의 조화가 색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북쪽으로 장안산과 남덕유산, 기백산이, 남쪽으로는 붉게 타오르는 매봉 너머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하산은 헬기장을 지나 11시 방향으로 나 있는 왼쪽 길로 억새를 헤치고 내려간다. 억새와 철쭉에 파묻혀 길이 흐릿하지만, 구상저수지를 정면에 두고 내려가면 된다. 

 

봉화산 정상의 철쭉 군락. 멀리 매봉의 철쭉 능선이 봉홧불을 피운 듯 붉게 타오르고 있다.

산불초소 터를 지나면 철쭉은 자취를 감추고, 소나무와 잡목지대가 시작된다. 미끄러운 비탈면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5분 가량 걸으면 임도로 내려선다. 왼쪽으로 꺾어서 오르막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임도를 따라 1시간 정도 내려가면 산행 초반의 임도 갈림길에 이른다.

6분쯤 가다 길이 크게 오른쪽으로 휘감아 도는 삼각 지점이 보이면, 잡목 사이로 난 흐릿한 샛길을 따라 능선으로 내려선다(리본 참고),

칡넝쿨과 벌목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발에 채는 비탈길을 15분쯤 내려가면 전방 조망이 확 트이는 묘에 이른다. 묘 왼쪽(9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송림으로 들어선다. 10분 뒤 갈림길에서는 무덤 3기가 보이는 왼쪽 길로 간다. 3분 뒤 우람한 산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갈림길이 보이면 리본이 여럿 달려 있는 우측 샛길로 내려간다. 이어 전신주가 보이는 작업도로로 내려서면 왼편으로 꺾어 진행한다. 석등이 여러 기 서 있는 공터와 비닐하우스 지대를 연이어 지나면 구상저수지와 맞닿은 곳에 마을 주민들의 쉼터인 흥부정이 있다. 15분 소요. 저수지를 타고 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산행에 지친 몸을 다독여준다.

 

 

둑방길을 시계 방향으로 돌아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구상마을 입구를 오른쪽으로 휘감아 내려가면 751번 지방도에 이르고, 지방도를 우측으로 타고 내려가면 하성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나 종점인 짓재에 이른다.

 

/ 산행 문의: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박태우 기자

 

꽃길 따라 이야기 따라, 봉화산 자락 흥부마을 


흥부마을 / 김수남 여행작가

남원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무대이다. 특히, 봉화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성리마을은 흥부마을로 알려져 있다. 판소리 <흥부가>에는 ‘성현동 북덕촌을 당도허여 고생이 자심헐제’라며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의 새로운 정착지 이름이 등장한다. 아영면 사 람들은 사설 속에 등장하는 북덕촌이 복성이재 넘어 복성리이며 오늘날 성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성리는 해발 500m의 산간마을인데 마을 진입로에 흥부 부부가 박타는 모습을 비롯한 다양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흥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성리의 박춘보묘.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특히, 흥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박춘보의 묘도 마을에 있어서 호 기심을 더한다. 박춘보라는 사람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삶을 살았는데 하루는 마을 고개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이를 발 견한 마을 사람이 업어다 죽을 먹여 살려주었다고 한다. 그 뒤 춘보는 도승이 잡아준 집터로 옮겨 큰 부자가 되었고 훗날 자신을 구해준 마을 사람에게 논 아홉 마지기를 사주었으며 이웃들에게도 선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춘보가 죽은 뒤,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삼일에 그를 기리는 망제를 지냈다고 하니 사실은 어디까지이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또 어디까지 인지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원에 흥부마을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아영면 성리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곳의 인월면 성산마을도 흥부가 태어난 마을이라고 주장하며 두 마을 간 때 아닌 흥부마을 싸움이 일어났다. 두 마을 모두 흥부와 관련된 지명들이 남아 있고 아영에 박춘보가 있다면 인월에는 박첨지가 있는 등 그 설화적 배경도 그럴싸하다. 결국 남원시에서는 인월 성산마을은 흥부가 태어난 마을, 아영 성리는 흥부가 이사한 뒤 복을 받은 발복지로 정리하여 두 마을의 손을 모두 들어주었다. 성리 박춘보묘 인근에는 약 1500년 전 고성인 아막산성이 있는데 신라와 백제간 격전의 현장으로 당시 하루 지나면 주인이 바뀔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지금은 산성터 일부만 남아 있으며 꾸준히 신라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여행팁

ㅇ봉화산 철쭉 절정기는 4월 말에서 5월 초로 예상되며 북쪽인 장수쪽이 약간 늦을 수 있다. 


ㅇ남원 쪽 들머리는 봉화산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철쭉식 당슈퍼민박을 끼고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약 1km쯤 올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철쭉 군락이 시작된다. 작 은 주차장까지는 길이 좁아 자동차끼리 교행이 어렵다. 

ㅇ장수쪽은 남원 봉화산주차장을 지나쳐 3km 더 진행하면 넓은 장수 봉화산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로 철쭉을 감상하며 올라갈 수 있다. 입구에 봉화산민박이 있다. 

ㅇ주요 등산코스 
남원 주차장(철쭉슈퍼) - 치재 - 매봉, 1.3km 
장수 주차장(봉화산민박) - 치재 - 매봉(전망대), 0.8km 
장수 주차장 - 치재 - 봉화산 정상, 3.6km 
복성이재 - 매봉 - 치재 - 봉화산 정상, 4.2km 

ㅇ아영면사무소 앞에 위치한 우돈가는 매운갈비찜이 대표메뉴인데 달달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별미이다. 국물이 많은 갈비찜이어서 산행의 피로를 덜어주기에 그만이다. 원래 인월에 있었는데 주인장의 고향인 아영으로 이사하였단다. 

ㅇ짓재마을 인근에는 요기할 곳이 마땅치 않다. 아영면사무소가는 길에 황토찜질방, 한식뷔페 등을 겸비한 '황토나라(063-626-9811)'가 있다. 

ㅇ남원에는 ‘관광택시’ 프로그램이 있다. 개인 및 가족단위 소규모 여행에 적합한데 남원 곳곳을 안내하며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놓는다. 경비의 일부를 남원시 에서 지원하여 관광객은 4시간에 5만원, 9시간에 10만원(4인 기준)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예약은 남원시 누리집에서 받고 있으며 이용일 기준 하루 전까지 예약해야 한다.


ㅇ남원역 앞에는 남원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자전거대여소 ‘자전거RO’가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겐 요긴한 프로그램으로 남원종합관광안내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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