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산재는 어지간히 단련된 산꾼이라면 3시간 안팎에 완주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다. 거대한 암릉이 가파르게 저항하는데다 절묘한 풍광이 발길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모산재는 '합천 8경' 중 하나인 황매산 자락이다. 해인사 가야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황매산을 지나 거침없이 뻗다가 해발 767m의 바위 봉우리로 솟았는데 이 산이 모산재다. 높지는 않지만 소나무 숲을 뚫고 치솟은 거대한 바위들이 위압적이다. 산 아래 주민들은 이 산을 '신령스러운 바위산'이란 뜻으로 영암산 혹은 잣골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모산재는 영락없는 산이다. 그럼에도 정식 명칭에 산이나 봉이 아닌 고개를 뜻하는 '재'가 붙은 것이 특이하다.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모산재의 옆과 뒤에 여러 개의 고개가 있고, 재와 재를 잇는 길 가운데 산이 위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코스는 모산재 주차장~영암사~이정표~국사당~전망바위~순결바위~황매산성 터~모산재 정상~이정표~무지개터~돛대바위~도로 합류~원점 순이다. 전 구간이 6㎞에 불과하지만 바위 능선이 워낙 가팔라 엉금엉금 전진할 수밖에 없다. 휴식 포함 3시간 30분 소요.
출발은 모산재 주차장이다. 주차장 옆으로 난 좁은 포장길을 따라 700m 정도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층층으로 다져진 넓은 건물 터가 보인다. 사면을 따라 축대를 쌓고 터를 다진 후 그 위로 또 다른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든 계단식 절터다. 고려시대 영암사가 있었던 절터다. 전각은 모두 소실되고 없지만 금당터와 삼층석탑, 석등이 남아 한때 이곳에 꽤 규모가 큰 절이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흔적만 남았지만 절터는 매력적이다. 들머리 삼층석탑은 아담하고 금당터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위태로울 정도로 날렵했다. 통돌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면 삿됨을 쫓는 괴수가 축대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석등을 떠받친 쌍사자의 엉덩이도 탱글탱글 보드랍다.
흔적만 남은 영암사지 옆에는 최근 새로 지은 영암사가 버티고 있다. 위풍당당한 극락보전이 전각 두 채를 양 옆으로 거느린, 전형적인 가람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단청은 선명하고 기둥은 웅장했지만 흔적만 남은 절터보다 운치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영암사가 새로 생기면서 등산로 초입 찾기가 어려워졌다. 극락보전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으로 10m가량 가다 화장실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등산로가 보인다. 일단 등산로에 접어들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 등산로에는 겨울 햇살이 쏟아져 정겹다. 완만한 등산로를 10분 정도 올라가면 간이 천막을 쳐 만든 매점이 있다. 매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오른다. 이때부터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연신 숨을 몰아쉬는데도 호흡을 놓치곤 한다.
한동안 오르막을 치고 오르다 보니 오른쪽에 어린 아이 머리만 한 돌들을 쌓아 만든 석축 구조물이 있다. 돌을 둥글게 쌓아 올려 지붕을 만든 모양이 흡사 알래스카 얼음집 같다. 현판을 보니 국사당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조선 창업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했다는 곳이다.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린 제단 치고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길은 어느새 급한 돌길로 변했다. 완강한 바위가 잠시 방심해 경사가 낮아진 틈 사이로 등산로는 이리 꺾이고 저리 휘어진다. 바위에 걸린 밧줄에 의지해 가며 9푼 능선까지 치고 오른다. 높이 올라가니 둔내리 방면으로 전망이 트인다. 파란 하늘 아래 황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힘차게 뻗었다.
전망바위를 지나니 첫 번째 봉우리다. 집채보다 큰 바윗덩어리가 떼를 지어 있는 이 봉우리는 특별한 이름 없이
순결바위로 불린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한 바위 때문이다. 여성 생식기와 흡사한 이 너럭바위는 가운데 길고 깊은 홈이 있다. 사생활이 난잡한 사람이 바위틈에 들어가면 바위가 오므라들어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순결바위부터 하산할 때까지 환상적인 조망이 이어진다. 모산재의 조망이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과연 명불허전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바위를 따라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면 햇빛에 반사된 대기저수지의 물결이 물고기 비늘처럼 부서진다. 저수지 뒤편으로는 고불고불한 두렁을 가진 다랑이 논들이 층층이 산허리를 파고들었다. 어디에 눈을 두든 그림엽서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모산재까지는 암릉을 타고 간다. 바위 능선은 때론 날카롭게, 때론 부드럽게 솟았다 꺼졌다 한다. 암릉을 타면서 사위를 돌아보면 '좁은 내'라는 뜻을 가진 합천(陜川)의 지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개를 들면 첩첩이 산이요 들판은 없으니 좁은 계곡이 많이 발달해 있다.
암릉 구간 내내 눈이 호사를 누린다. 하지만 몸은 괴로움을 견뎌야 한다. 길이 험해 땀깨나 흘려야 하는데다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 체온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반복한다. 이 구간은 스릴감을 넘어 공포감을 줄 정도로 험하다. 자칫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기 위해 만든 황매산성 터를 거쳐 모산재 정상까지 40분 소요.
모산재 정상 역시 바윗덩어리다. 경사가 완만한 너럭바위에 박힌 정상석에는 평일임에도 기념 촬영을 하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정상의 번잡함을 피해 무지개터 방면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곧 이정표 하나 만나는데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직진하면 황매산까지 4㎞다. 혹시나 오늘 구간이 짧다고 느끼면 황매산 정상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정상에서 200m가량 내려오면 한국에서 제일 좋은 명당이라는 무지개터를 만난다. 풍수지리상 무지개터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지세다. 이곳에 묘를 쓰면 후손 중 천자가 나오고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묘를 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이곳에 묘를 쓰면 나라 전체에 흉년이 들어 백성의 고통이 극심해지므로 아무도 묘를 쓰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무지개터에서 300m가량 더 내려오면 절벽 끝에 거대한 삼각형 바위가 위태롭게 붙어 있다. 배의 돛과 흡사해 돛대바위로 불린다. 하산은 이 바위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길이 워낙 험해 계단을 설치했는데 과장을 좀 하자면 수직이다.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내려간다. 돛대바위에서 도로에 합류해 원점까지 돌아오는 데는 40분 소요.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오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답사대장 010-3740-9323. 박진국 기자
영암사지
모산재 주차장 인근에는 식당 서너 곳이 모여 있다. 이 중 '모산재식당'(055-933-1101)에서 파는 재첩국(6천원)이 시원하다. 시장기가 덜하다면 손두부(8천원)도 좋다. 무공해 콩을 이용해 재래식 방법으로 만든 두부를 썼다. 황매산 도토리로 빚은 묵(7천원)도 유명하다. 조 껍질로 빚은 전통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겠다. 우렁된장비빔밥(6천원)도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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