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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산청 단성 청계리 단속사지 청계계곡 석대산

by 구석구석 201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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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지 

단성면 운리 웅석봉 남쪽 계곡에 자리했던 단속사(斷俗寺)는 통일신라 이후 고승을 많이 배출해 1,000여 년의 법통을 이어왔는데, 1568년(선조 1년) 유생들이 불상과 경판 등을 파괴하고, 이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후 재건됐으나 현재는 폐사됐다.

보물로 지정된 단속사지 동삼층석탑(보물 제72호)과 서삼층석탑(보물 제73호)이 있고,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있다. 동·서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비례미와 균형미가 잘 조화되어 안정감이 있고, 또한 치석의 수법이 정연하여 우아하다. 삼국통일 이후에는 이 같은 쌍탑 가람형식이 지방의 깊은 산골에까지 전파됐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절터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와당을 비롯한 석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주변 민가의 담장이나 집안에 많은 석물들이 흩어져 있다.

단속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두 가지 설이 전한다. 748년(경덕왕 7년) 왕의 총애를 받던 이준(李俊)이 조연소사(槽淵小寺)를 개창하여 단속사라 하였다는 설과, 763년(경덕왕 22년)에 신충(信忠)이 벼슬에서 떠나 지리산에 들어가 삭발하고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창건했다는 설이다.

김일손(金馹孫)이 정여창(鄭汝昌)과 함께 천왕봉을 등반하고 쓴 <두류기행(頭流紀行)>에서 단속사를 ‘절이 황폐하여 중이 거처하지 않는 곳이 수백 칸이나 되고 동쪽 행랑에 석불 500구가 있는데 하나하나가 각기 형상이 달라 기이하기만 했다’고 적고 있다.

 

청계리 청계계곡

선사시대의 유적인 '선돌(立石)'을 비롯해 천년의 풍상을 이겨온 석탑이 아직 남아 있는 단속사지,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혹독한 시집살이를 못 이겨 죽고만 어느 여인의 한맺힌 삶이 아직도 고갯마루에 돌무덤으로 서있는 계곡이 청계계곡이다.

 

볼거리가 많고 사연이 많은 계곡답게 차로 한달음에 찾아갈 수 있게 잘 개발되어 있으며 청계(淸溪), 단속(斷俗)등의 이름에서 벌써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계곡이 얼마나 맑았으면 '청계'라 했나 싶고, 골짜기가 얼마나 깊으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이라 했을까 싶다.

먼저 청계계곡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남사마을부터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화를 처음 재배한 배양마을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4㎞ 거리에 있는 남사마을에 들어서면 정감 있는 토담집 앞에 우뚝 솟아있는 솟을대문 그리고 고졸한 멋이 느껴지는 40여채의 기와집과 동네를 뒤덮고 있는 숲에서 조선시대양반들의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남사마을을 지나면 호암교 위로 운곡 관광농원, 다물민족학교등의 푯말이 있는데 이 푯말을 따라 들어가면 청계계곡이다. 계곡을 들어서면 입석마을을 보게된다. 입석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높이 약2m의 선사시대 유적인 '선돌'은 청계계곡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증거물인 셈 이다.

단속사는 가족간에 오붓이 야영할 수 있는 공간과 도로변에 민박집이 있어 쉼터로도 적당하다. 또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 단속사는 현재 보물 72, 73호인 3층석탑이 있고, 한때는 경덕왕의 초상화와 솔거가 그린 유마상 (維摩像)에, 각기 다른 형상의 석불만도 500여기가 있었다고 한다. 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도 탑리로 부르는 단속사터에는 옛절의 규모를 말해주듯 당간지주가 석탑과 멀찍이 떨어져 있다.

당간지주를 지나 석탑 앞으로 올라서면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탑 2기가 동서로 나란히 서 있다. 아무 기교없이 다듬어 놓은 단아한 모습의 석탑은 그것으로 이미 지난 세월의 풍상을 모두 말해준다. 특히 석탑 앞의 대나무는 석탑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올곧게 서 있고, 석탑 뒷편 정당매(政 堂梅)로 불리는 매화나무와 비각은 또 하나의 전설을 더해준다.

탑을 돌아나와 고갯길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청계계곡의 백미라 일컫는 계곡이 나온다. 여름이면 사라진 절의 흔적인양 바위틈새를 비집고 서 있는 소나무 그늘을 의지한 텐트들이 들어서는 곳이다. 여기가 없었다면 청계계곡이란 말도 없었을 정도로 계곡이 아름답다. 넓다란 시내폭에 잔돌로 이루어진 공터가 있고, 물도 맑은데다 깊이도 어른 무릎 정도라 물놀이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석대산(石岱山 534.5m)

지리산의 변방에 위치해 근교의 정수산(841m)과 둔철산(823m)에도 훨씬 못 미치는 높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한국적 길지의 조건에 이상형의 지세를 갖춘 산으로 한번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10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진자마을회관(경로당)이다. 우측으로 난 농로를 따르면 계단식 논밭을 따라 골짜기 안 밤나무 단지 속으로 길이 연결된다. 주능선에서 좌측으로 길을 잡고 오르노라면 빼곡하게 들어선 송림 사이로 소나무의 진한 향기와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세파에 오염된 때를 말끔히 정화시켜 준다. 

등산로가 점차 고도를 높이면 암릉이 나타난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적송이 군데군데 거대한 분재처럼 독특한 자태로 거대한 암반에 뿌리를 박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산길을 걷는 동안 마치 동양화 속에 빨려 들어간 착각에 빠진다. 

바위로 된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그대로 따라도 되지만 우측으로 조금만 비켜서면 기암의 조망대가 곳곳에 만들어져 환상의 조망을 누리게 된다. 두세 차례 밧줄을 통과해 뒤돌아보면 좌측 발아래에 진양호와 집현산, 의령의 자굴산과 한우산, 산성산이 펼쳐져 보인다. 그리고 정면 좌측으론 경호강과 월아산, 방어산이 조망된다.   

암릉 길이 끝나면 숲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곧 길 좌측으로 작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거기서 바라보는 지리산 남부능선과 지능선 줄기 속의 선인봉이 눈길을 끌고  운리마을에서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도 보인다. 북서쪽 전방으로 고개를 돌리면 움푹하게 꺼진 한재 좌측으로 지리산 웅석봉이 조망되고, 바로 앞 지척에는 올망졸망한 바위로 형성된 석대산이 관측된다.

 헬기장을 지나니 다시 암릉길, 핑크빛 진달래가 한 무더기씩 피어나 군락을 이뤘다. 허물어진 석축을 지나자 석대산 정상이다. 산의 높이에 비해 거대한 정상석이 다소 부담스럽고 제단이 살짝 분위기를 다운시키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지리산 자락의 지맥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보인다.

 정상에서부터 꿈결 같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푹신한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은 비단 길이 간벌을 해야 할 만큼 우거진 송림 속으로 내내 이어진다. 첫 번째 탈출로인 네거리 안부를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480m봉. 여기서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길이다. 곧이어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습지도 눈에 띈다. 474m봉은 돌무더기가 있는 바위봉으로 전망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좌측 전방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청계저수지와 웅석봉이 가까이 다가서고, 우측으로 둔철산과 경호강, 철탑 뒤쪽으로는 정수산과 대성산이 바라보인다.

 석천원 가는 안부 네거리를 지나 평탄한 길목 넓은 등산로에서 중식을 한다. 바람이 제법 불어오지만 앉아서 자리를 잡으니 별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고압선 철탑과 안동 권씨 묘지 군을 지나면 왼쪽으로 숲길이 나타난다. 잠시 후 좌측 청계마을 산야초농원으로 탈출하는 색다른 이정표가 눈길을 끌고 우측으로 직진하니 석대산 정상보다 34m 더 높은 최고봉 수리봉(568m)이 반긴다. 예전에는 남가람봉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정상석에는 세로로 ‘석대산 수리봉’이라 적혀 있다.

 수리봉에서 보는 조망보다는 상투바위 주변이 훨씬 빼어나다. 암릉길을 조금만 더 진행하면 아슬아슬한 바위봉인 상투바위가 나타난다. 전망이 가장 빼어나고 스릴이 있는 바위능선으로 넘어도 되고 우측으로 우회해도 된다.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지만 통과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상투바위에 올라서면 발 디딜 공간이 조금 있어 조망을 즐기기도 하지만 바람이 세찰 때는 필히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보였던 모든 조망들이 한꺼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기이한 바위들이 자웅을 겨루는 암석지대를 통과하면 내림길이다. 다소 가팔라 조심해서 내려야 하는 곳으로 로프가 매여져 있다. 20분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페이스에 따라 코스를 선택한다. 오름길을 계속 직진하면 528m봉을 지나 한재까지 연결되고, 좌측으로 내려서면 15분 뒤 도로와 만난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던 좌측 청계저수지 밑 청계약수터까지 내려서야 한다. 한재에서는 30분, 중간 탈출로에서는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진자마을을 출발해 석대산, 수리봉, 상투바위를 거쳐 한재까지 진입한 후, 청계저수지 밑 약수터까지는 약 8㎞ 거리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군데군데 탈출로가 다섯 군데나 있어 등산시간과 체력에 부담이 적고 원점회귀 등산이 가능하다. 등산코스를 역으로 잡는 것도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  

 산행 후 보물 제72, 73호인 단속사지 동·서 3층 석탑과 밀양 박씨, 성주 이씨, 진양 하씨 등이 수백 년에 걸쳐 형성한 전통가옥들인 남사 고가마을을 둘러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근대불교의 대표 선승인 성철 스님 생가 터에 위치한 기념관과 겁외사를 둘러 볼 수도 있다.

자료 : 매일신문 글 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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