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산 기슭에 위치한 운문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구니 사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문사를 ‘운문산 운문사’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운문사 입구의 석주와 현판에는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라 적혀 있다. ‘호거’(虎踞)란 호랑이가 무릎을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국. 북서쪽을 올려다보면 호랑이 한 마리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듯 위압적인 바위봉 하나가 보인다. 일명 등심바위 또는 호거대라 불리는 장군봉(507m)이다.
통상 절 이름 앞의 산 이름은 가장 근접한 곳의 봉우리 이름을 붙이는 관습에 따라 호거대가 호거산으로 바꿔 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운문사 같은 큰 사찰이 이 작은 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고 믿기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장군봉 능선이 합류하는 운문산 줄기의 삼거리 봉우리를 작은 범봉, 그 좌측 봉우리를 범봉이라고 부르는 걸 무시할 수 없다. 또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범봉을 중심으로 운문사를 둘러싼 산릉을 호거산으로 표시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산행의 들머리는 청도군 운문면 황정리 화랑교다. 운문사 주차장에 대형버스를 주차하고 인공암벽장이 보이는 운문천을 가로지르는 화랑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야영장 끝머리까지 간 다음 산자락으로 바로 붙지 말고 운문천 우측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오른다. 야영장 중간과 끝 지점에서 산자락으로 올라붙는 등산로는 철저히 무시한다.
지류가 합류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등산로가 뚜렷해지고 곧이어 좌측 지류를 건너 산 능선으로 바로 올라붙는 길이 보인다. 7, 8분 정도 오르면 갈림길. 길은 산허리를 감다가 다시 지능선에 붙는다. 암석지대를 만나 바위 사이를 오르노라면 거대한 암봉 하나가 떡 하니 가로막는다. 암봉 아랫부분에 넓은 암반이 형성되어 있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계곡 바람에 이마에 흐른 땀을 잠시 식혀 본다.
집채보다 훨씬 큰 바윗덩어리를 우측으로 감아 돌면 거대한 암석 2개가 맞닿아 통천문이 형성되어 있다. 우측으로 한 바퀴 돌면 큰 바위 정상부에서 쇠줄이 늘어뜨려져 있다. 높이 7, 8m나 되는 직벽을 굵은 쇠사슬을 잡고 올라야 장군봉이자 호거대 정상이다.
사면이 낭떠러지라 아슬아슬한 조망이 사면으로 펼쳐진다. 스테인리스 기둥에다 장군봉이라 쓰인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다. 가까이는 운문천 너머 지룡산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복산·상운산·가지산·운문산·억산·귀천봉·용각산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초보자는 오를 때보다 쇠사슬을 잡고 내려설 때가 더 위태롭다.
내려서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른다. 우측으로 가면 방음산과 까치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다. 장군봉에서 작은 범봉(904m)까지가 오늘 등산의 최고 하이라이트. 미끈하게 잘 빠진 능선이 마치 호랑이의 등허리를 타는 기분이다. 완만한 능선이라 부드러운 융단길이고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하다.
우측의 박곡지와 좌측 운문천으로 내려서는 안부네거리 옛고개를 지나면 450m봉이다. 삼각점이 있는 485.3m봉을 통과해 20분이면 갈림길이다. 위쪽 능선 길은 657m봉으로 가는 주능선 길,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지능선 3개를 횡단하는 좌측 등산로를 선택한다. 이곳에서 20분 정도 완만한 길을 따르면 636m봉으로 가는 능선 길과 합류한다.
지도에는 없지만 지능선 두 군데에서 좌측 운문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636m봉을 지나면 좌우를 조망할 수 있는 바위가 연이어 나타난다. 왼쪽 운문사 방면으로 기암과 못골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옹강산과 영남알프스의 주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숲은 대부분 활엽수로 원시림이다. 조망이 터질 때마다 우측 전방에 시선을 끄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명 깨진바위로 알려진 억산(954m)이다. 범봉의 우측에 위치한 억산은 20여m의 홈이 파여 있고 칼로 내려친 것 같은 단애는 높이만 130m에 이른다. 이 깨진 틈은 몸부림치며 하늘로 승천하던 용의 꼬리에 찢겨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마지막 오름길이 만만치 않다. 가파른 오르막을 20분 정도 치고 올라야 비로소 ‘운문산 생태·경관보전지대’라는 안내도가 있는 904m 봉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20분 정도 더 가면 가장 높은 봉우리인 범봉(962m)이다. 억산보다 8m가 더 높지만 숲에 가려져 조망이 별로고 정상석도 허술하다.
▲석골폭포. 매일신문
이곳에서 마지막 등산로를 선택한다. 운문사로 하산하려면 능선을 이어 타고 딱밭재로 내려선 다음 좌측 천문지골로 빠지면 된다. 딱밭재에서 운문사까지는 4.5㎞다. 억산과 귀천봉(579m), 또는 대비사나 석골사로 하산하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팔풍재까지 간 다음 코스를 선택한다. 직진하는 능선 오름길은 억산과 귀천봉, 또는 구만산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이 박곡지가 있는 대비사, 좌측이 석골사가 있는 석골사 계곡이다.
황정리 버스정류장에서 등산을 시작해 장군봉·범봉·팔풍재·억산·귀천봉을 거쳐 박곡리로 내려서는데 약 14.3㎞에 6시간 정도. 천문지골로 해서 운문사로 하산하는 데는 15.3㎞에 7시간 가까이 걸린다. 대비사나 석골사는 5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청도 장군봉과 연계한 등산로를 잡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산지점 선택이다. 억산과 귀천봉을 연계한 하산지점 박곡리는 인근이라 차량으로 15분 내외지만 석골사로 하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능선 2개 정도를 넘는 근거리지만 황정리 주차장에서 석골사 입구까지는 차량으로 1시간 이상을 돌아가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석골사 계곡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여름 산행지다.
석골폭포는 석골사 계곡의 백미이고 석골사는 신라 경덕왕 때에 비허 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경내에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작은 석탑과 부도의 기단석이 있다. 6`25전쟁의 와중에 전소되었고 지금의 가람은 근래에 중창한 건물이다. 자료 : 매일신문 글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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