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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신평리 여근곡 오봉산 주사암

by 구석구석 201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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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이 쓴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 신라 선덕여왕의 기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지 5년이 되던 어느 날. 한겨울인데도 궁 서쪽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 떼가 사나흘 울었다. 신하들이 괴이하다며 여왕께 물었다. 여왕은 "정예병사 2천 명을 모아 빨리 서녘 교외로 달려가 여근곡(女根谷)을 찾아가라. 그곳에 반드시 적병이 숨어 있을 것이니 습격해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각간 알천과 필탄이 군사를 데리고 여근곡을 찾아갔다.



과연 여왕의 말대로 백제 군사 500명이 매복하고 있었다. 백제 군사들은 그 자리에서 몰살당했다. 여왕의 예지에 탄복한 신하들이 물었다. 여왕은 "개구리가 겨울철에 시끄럽게 우는 것은 병란의 조짐이요, 옥문(玉門)은 여성의 음부이니 그 빛이 희고 흰색은 서방의 빛이므로 적병이 서쪽에 있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여왕의 지혜와 신묘함을 알려주는 이 삼국유사 기사는 선덕여왕을 말할 때면 자주 등장하는 얘기다.



백제 군사의 무덤이 된 여근곡이 있는 산이 오봉산(五峰山·632m)이다. 아담한 산이지만 호젓한 산길이 이어지고, 주능선에는 제법 암릉을 밟는 재미가 있다. 경주 남산의 유명세에 가려 아는 산꾼만 찾는 산행지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산꾼과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산행 코스는 운대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성테마박물관으로 간다. 이후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해 유학사까지 간다. 유학사에서 옥문지를 지나 주능선 안부까지 오른다. 등산로가 정비된 곳이지만 비탈이 까다롭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땀이 많이 나는 구간이다. 안부에서 능선을 따라 585봉~코끼리바위를 지나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내려와 마당바위, 주사암을 보고 다시 주능선으로 돌아온다. 올라올 때 만난 안부를 지나 484봉, 261봉을 지나 송선리 버스정류소로 내려온다. 산행 거리는 9.8㎞, 산행시간은 쉬는 시간을 포함해 5시간 정도 걸린다.

 

여근곡/성테마박물관

운대리(윗장시) 버스정류소 앞에 여근곡과 주사암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이 방향을 따르면 곧 중앙선 철로를 지난다. 별다른 통제시설이 없다. 철길을 건너 3분 정도 가면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불지 연못이 보이고 못 둘레를 따라 걸으면 여근곡 성테마박물관(054-751-2229)이 나온다. 박물관에는 박용(76) 씨가 40년간 모은 수석이 있다. 수석 생김새는 대개 남녀 성기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데, 370점가량 전시됐다. 지난 2004년 봄에 문을 열었다. 소문을 타면서 경주지역의 관광 명소가 됐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박물관 마당 한쪽에 여근곡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여근곡이 정면으로 보인다. 여근곡을 제대로 보려면 오전이 낫다. 오후엔 역광 탓에 여근곡 부근이 어두워지고 사진도 잘 안 찍힌다. 여근곡은 짤막한 골짜기 두 개가 잘록하게 들어간 지형을 양쪽에서 둥글게 감싼 모양이다. 생김새가 요상하다 보니 별난 일화도 많다.

 

조선시대 때 과거 때문에 한양으로 가던 선비들이 여근곡을 안 보려고 고개를 돌렸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여근곡 일대에서 진격을 멈추는가 하면 미군들은 이 골짜기를 보며 환호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나와 5분 정도 가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굴다리가 나온다. 굴다리에서 신곡농장 갈림길을 지나 유학사로 가는 갈림길까지 12분 정도 걸린다.

 

▲ 쉼터를 지나 능선 안부까지는 지그재그 모양의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현대식 사찰인 유학사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대웅전을 바라봤을 때 왼쪽 언덕에 등산로 푯말이 붙어 있다. 이 길을 따라 7분 정도 가면 옥문지가 나온다. 백제군이 숨어 있었다는 골짜기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옥문지는 생각보다 수량이 많지 않다. 바닥은 돌인데, 물이 흐른다기보다 스며 나온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작대기를 옥문지에 넣고 저으면 여자들이 바람이 잘 난다고 해서 전에는 마을 청년들이 샘을 지키기도 했다.



옥문지를 지나 7분 정도 걸음을 옮기면 '119 솔라표시등'이 보인다. 태양전지를 이용해 밤에도 빛나는 이정표다.



이 구간부터 말뚝으로 만든 등산로가 드문드문 나타난다. 길바닥은 편하지만 비탈이 심하다. 15분 정도 된비알과 씨름하면 쉼터를 만난다. 쉼터에서 능선 안부까지는 지그재그형 오름길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그늘이 좋아 걷기에 까다롭지 않다.



15분 정도면 안부에 닿는다. 이 안부는 삼거리인데 나중에 하산할 때 또 만난다.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오봉산 주능선인데, 부산성(사적 제25호)이 있었던 곳이다. 심심치 않게 암릉이 나오고, 성곽의 흔적도 발견된다.

 

신라시대에 축성된 부산성의 흔적

첫 번째 전망대를 지나 585봉까지 칼날 능선을 밟고 지난다. 585봉을 지나 10분 정도 더 가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4분쯤 걷다가 다시 능선을 만난다.

 

코끼리 모양의 바위를 지나면 오봉산 정상까지는 한달음에 갈 수 있다. 정상은 평평한 땅에 집채만 한 바위가 가운데 있다. 그 위 표석엔 정상 높이를 685m로 표시했다. 산행팀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높이를 따랐다.



오봉산은 낙동정맥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산이다. 서쪽 조망은 답답하지만 남동쪽의 조망은 좋다. 남쪽으로 단석산, 동쪽으로 토함산이 보인다.

▲ 오봉산에서 내려오면 김유신 장군이 놀았다는 마당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선덕여왕과 동이 촬영을 하였다. 

 

오봉산의 오봉은 말 그대로 다섯 개 봉우리. 하지만 정상 이외에 나머지 4개 봉은 이렇다할 만한 특징 없이 밋밋하다.



정상에서 7분 정도 서쪽 능선으로 가면 마당바위다. 김유신 장군이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놀았다는 곳이다. 지난 2009년 12월 드라마 선덕여왕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포스터가 입구에 설치돼 있다.



마당바위에서 주사암까지는 5분 정도. 주사암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일주문 대신 큰 바위가 절 입구에 서 있다.



예전엔 오봉산을 주사(朱沙)바위가 있다 해서 '주사산'으로도 불렀다. 주사암도 이 바위에서 이름을 빌렸다. 주사바위엔 전설이 있다. 신라시대 때 왕의 총애를 받던 궁녀가 밤마다 이상한 기운에 홀려 정체불명의 바위 아래로 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이 궁녀에게 바위에다 '주사로 표시하라'고 지시했고, 다음날 군사들이 오봉산을 뒤져 붉은색 흔적이 있는 바위를 찾아냈다.

 

하지만 후세에 와서 어떤 바위가 주사바위인지 추측이 엇갈렸다. 산꾼들은 절 앞 큰 바위에 붉은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이 바위를 주사바위로 추정한다.



주사암에서 나와 삼거리에서 임도를 따른다. 7분 정도 걸으면 올라올 때 만난 능선이 다시 나오고, 585봉과 전망대를 지나 안부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안부부터는 능선을 따라 484봉까지 간다. 외길이라 방향에 신경 쓰지 않고 걸으면 된다.

 

484봉에서 10분 남짓 급한 내리막을 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5분쯤 가면 또다시 갈림길이다. 묵은 길이라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갈림길부터 261봉까지는 10분, 261봉에서 5분쯤 내려오다 묘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튼다. 성암사 입구부터는 시멘트 길이다. 여기서 송선리 버스정류소까지 10분 남짓 걸린다.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의상대사가 창건한 주사암

윗장시버스정류소에서 건천읍 방향(남쪽)으로 2분가량 차로 오다 보면 '장시돼지국밥'(054-751-6550)이 있다. 국물이 깔끔하고 밑반찬도 정갈하다. 쌀쌀한 날씨에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산꾼들에게 제격이다. 돼지국밥·내장국밥·순대국밥(6천원)이 맛있다. 돼지고기가 싫다면 굴국밥(6천원)도 괜찮겠다. 돼지 수육 백반은 2인분에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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