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 내내 좋아도 눈꽃 절경이 장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정남향으로 기세 좋게 달리던 마루금은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간다'는 추풍령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이후 해발 600~700m의 자잘한 산을 오르내리다가 경북 김천 땅에서 갑자기 1,000m급의 산을 만나면서 멈칫하는데 바로 황악산(黃岳山·1,111m)이다.
김천은 예로부터 교통 요충지였다. 이런 지세 덕에 신경준의 산경표에도 황악산은 남한 땅의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산악인 이장호 씨도 '한국백명산기'에서 "이 산을 가운데 놓고 동서남북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어보면 동으로 동해 영덕, 서로 서해의 서천, 남으로 경남 남해, 그리고 북으로 강원도 홍천까지가 거의 서로 일치하는 것을 볼 것이니, 모두 약 130㎞씩의 직선거리가 되는 셈이다"라고 썼다.
▲ 직지사 정문 현액. '제일가람' 타이틀답게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유서깊은 절이다.
황악의 '황(黃)'은 오방색(다섯 가지 방위 색깔로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이다)의 가운데 색을 상징한다. 산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이 산의 지리적 의미를 얼추 인식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시했다. 학이 많이 몰려왔다고 붙은 이름이지만 대동여지도와 택리지 등 옛 문헌에는 '황악'으로 적혀 있다. 김천시와 직지사도 황악산으로 쓴다.
흡사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연상시키는 산 높이에, 대개 덩치 큰 산에 붙는 '악(岳)' 자가 께름칙하지만, 그 흔한 날카로운 암봉조차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진득한 육산이다. 다만 주능선으로 붙는 동릉과 내려서는 남릉 길이 가파른 편이다. 꽃, 나무, 계곡이 좋아 사계절 내내 산꾼들이 즐겨 찾지만 겨울 눈 산행지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산&산' 취재팀이 찾은 날에도 간밤에 내린 눈 때문에 7푼 능선 이상부터 설국이었다.
산행은 직지사 정문 앞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직지사를 구경하고 내원교를 지나 운수계곡 윗길로 걷는다. 나무 계단이 촘촘히 박힌 가풀막을 딛고 운수봉 왼쪽 안부에 오른다. 안부에서 정상인 비로봉까지는 능선을 따라가거나, 능선 사면을 걷는 외길이다. 까다롭지 않고, 묵상하면서 넉넉히 걸을 만한 등로다. 다만 조망은 참나무, 진달래, 철쭉 군락에 막혀 답답한 편이다. 확 트인 조망은 정상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야 나타난다. 정상에서 내려와 형제봉~바람재 이정표~신선봉을 거쳐 가파른 내리막을 계단처럼 내려오다 다시 망월봉으로 잠깐 오른다. 망월봉부터는 참나무 그윽한 숲길을 따라 직지사 우회 임도로 내려선다. 산행거리 12.3㎞, 쉬고 밥 먹는 시간을 포함해 5시간 정도 걸린다. 적설량에 따라 산행시간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
직지사 정문 현액에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이라고 씌어 있다. 절은 신라 눌지왕 2년(서기 418년)에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마음을 바르게 볼 때,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임을 깨닫게 된다)'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따왔다. 또 다른 설로는 아도 화상이 경북 구미시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한 손으로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길지가 있다'고 해서 직지로 불렀다고도 한다.
전설 하나를 더 보태면 고려 때 능여 화상이 절을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측지하였기에 직지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능여 화상은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을 도왔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도 이 절에서 출가했다. 제일가람으로 불리는 데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나야 하는 만세루. 2014.5 부산여행
1천 년 넘은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 일주문은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천왕문을 지나 만세루를 통과하면 보물 670호인 후불탱화가 있는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 왼쪽으로 가면 천불전을 모신 비로전이 나온다. 이 전각은 임진왜란 때 이 절에서 유일하게 병화를 모면했다. 비로전 안을 봤을 때 처음 마주친 불상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성보박물관이 있는 청풍료 처마 끝 멀리 눈에 쌓인 황악산 능선이 보인다.
서둘러 절을 빠져나와 황악교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3분쯤 가면 은선암 방향 이정표가 나온다. 우회전해서 부도를 지나 입산통제소까지 8분 정도 걸린다. 통제소를 지나면 황악산 3대 계곡인 능여계곡을 발아래로 두고 포장 임도를 걷는다. 날씨가 차지만 물소리를 들으니 노곤한 몸에 생기가 돋는 것 같다.
▲ 직지사 출신 승려들의 부도. 갯수나 사이즈가 굉장하다. 그만큼 절의 세를 말해주는 법.
내원교에서 화장암, 백련암 입구를 지나 운수암 앞 이정표까지는 15분 남짓 오르막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참나무 군락이 길 주변에 있다.
운수암 입구부터 시멘트 길을 버리고 흙길로 접어든다. 참나무 군락 사이로 서어나무, 왕벚나무, 당단풍나무가 앙상하게 서 있다. 발밑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산새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정겹다.
소방구조판을 지나면 첫 번째 안부에 닿는다(운수암 이정표에서 30분 소요). 안부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간다. 오른쪽으로 가면 운수봉, 여시골산이 나온다.
안부에서 좌회전한다. 산 아래에서 보이던 눈들이 햇볕에 녹았는지 맨흙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능선 좌우에서 찬바람이 볼을 때린다. 진달래, 철쭉 군락 사이로 미끈한 길이 정상 쪽으로 나 있다. 해발이 500m대에서 700m대로 오를 즈음에 쉼터가 나온다. 쉼터부터 눈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올해 첫눈을 황악산에서 만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눈이 녹은 데는 길이 질퍽하다. 쉼터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조망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황악산 꼭대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산마루 주변은 눈으로 물들었다. 눈밭을 비집고 나온 키 큰 나무의 가지마다 눈송이가 푹푹하게 걸려있다.
정상 부근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온통 눈 세상이다. 등로 주변에 20㎝ 이상 쌓인 곳도 있다. 길이 꽤 미끄럽다. 나무에 핀 상고대가 아침 햇발에 눈에 부시다.
정상인 비로봉 조망은 김천시 방향인 서쪽은 여유롭지만 다른 쪽은 인색하다. 차라리 비로봉에 조금 못 가서 만나는 돌탑 주변이 좋다. 주변을 둘러보자. 산자를 뽐내는 가야산과 덕유산의 산줄기가 남쪽을 긋고 있다. 첩첩 산들이 그윽한 산그리메를 빚어낸다. 서쪽을 보면 발아래 직지사를 시작으로 김천들과 시내가 보이고, 그 뒤로 안개에 젖어 정수리만 드러낸 구미 금오산이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15분 정도면 쌍봉이 우애 좋게 서 있다는 형제봉이다. 이 봉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 '지통마 마을'이 보인다. 영화 '집으로'를 촬영한 오지마을이다.
▲ 영화 '집으로' 촬영지 충북 영동군 지통마 마을.
형제봉에서 10분 정도 평평한 능선을 걸으면 바람재로 가는 이정표 삼거리가 나온다. 남서쪽으로 700여m 떨어진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통신사들이 교신 성능을 시험하러 자주 찾는 고개다.
이정표에서 918봉을 지나 신선봉까지는 30분 남짓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신선봉과 망월봉 사이 안부(30분 소요)까지 계단 형태로 내리막길이 연결된다. 급한 경사가 많아 걸음을 뗄 때 주의해야 한다. 망월봉에서 뒤로 돌아서서 마지막으로 황악산을 눈에 담은 뒤 다시 산길을 내려선다. 345봉을 지나 8분가량 내려가면 은선암으로 가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직지사 방향으로 가다 절 우측의 우회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직지사 정문이 나온다.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전대식 기자
직지사 주차장에서 1㎞쯤 걸어서 직지사 우체국 방향으로 내려오면 음식점 상가가 나온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과 산채정식을 파는데 이 중 '울산식당'(054-436-3193)이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통음식보존협의회가 선정한 맛집으로 주인 권상희 씨는 전통문화 보존 명인장이다. 산채비빔밥(7천원), 산채한정식(1만3천원), 산채불고기백반(2만원)을 판다. 한정식을 시키면 두릅나물, 콩비지 된장국, 더덕구이 등 30여 가지의 정갈한 반찬과 연탄 화덕에서 갓 구운 멧돼지 고기와 쇠고기 불고기도 맛볼 수 있다.
김천시 대항면 황학동길 32 / 산채한정식전문점 청산고을 054-436-8030 cheongsan.modoo.at
모듬산채한정식 23,000원에 반찬이 20여가지나오며 좀 심심한 편으로 더덕과 소고기는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구워서 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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