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지역의 최고봉 보현산(普賢山·1,124m)
꼬불꼬불 구절양장으로 이어진 포장도로에 가슴 한편을 통째로 내주었지만, 또 다른 한 가슴은 풋풋한 나무와 풀 그리고 야생동물들을 보듬고 있었다. 용소리에서 법룡사 코스로 보현산을 오르는 내내 즐거웠고, 하산을 하면서도 고마웠다.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육산이었다.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에서 출발하여 상수리나무~법룡사 입구~임도~법룡사~부약산~822봉~보현지맥~보현산 시루봉~119 표지목(보현산 가-22)~무덤 2기~전망대~갈림길~전원주택~용소리 10㎞에 이르는 산길을 5시간 동안 걸었다.
정부가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낙동강 지류인 이곳에 다목적댐을 건설하고 있다. 어떤 자료에서는 댐이 완공되면 안개나 가로등 불빛으로 보현산 천문 관측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단다.
2014년에 댐이 완공된다고 하니 용소리의 이 가을 풍경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 하나 얼씬 하지 않는 길을 따라 법룡사로 간다. 절까지 2.2㎞라고 이정표에 나와 있다. 절이 산 중턱에 있다면 찻길이 있을 테고,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추수가 끝난 다락논과, 묵은 밭을 지나는데 넓은 길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들국화가 논둑에서 한껏 고개를 내민다. 포장된 도로는 이내 끝이 나고 숲 사이로 난 임도는 이미 자연과 동화된 좀 넓은 산길일 뿐이었다.
임도를 걸은 지 20분 만에 노란 단풍이 절정에 오른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언제 봤을까.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무 6형제'들은 누런 단풍이 드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색깔은 처음이다. 발길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굽이를 돌자 '부약산 법룡사 가는 길'이라는 하얀 표지석이 나온다. 차량 교행이 안 되니 진입하지 말라는 안내문도 있다. 걷는 사람은 구애받을 일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친절하게 지름길이라고 써 놓은 곳으로 간다. 차는 힘들게 S자를 그리며 올라야 하지만, 사람의 길은 따로 있다.
절 입구에 있는 커다란 식수통에 맑은 물이 철철 넘친다. 상수리나무에서 40분이 걸렸다.
100여년이 된 법룡사는 작지만 꽤 깊이가 있다. 요사채는 민가의 그것과 다름없는데, 대웅전 옆의 건물은 제법 기둥이 우람하다. 스님은 잠시 출타 중인지 절은 고즈넉하다. 코스모스며 들국화가 절집을 감싸고 있다.
절 뒤로 올라서니 작은 체육공원이 있고, 큰 바위가 하늘을 이고 섰다. 부약산 석이덤 바위가 늠름하다. 바위를 에둘러 능선에 올라 큰 바위 위에 섰다. 발아래 세계가 한껏 넓어졌다. 바위 위에 올라서니 북서풍이 맵다. 범용사에서 15분이 더 걸렸다.
▲ 부약산 석이덤 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산꾼.
보현산 시루봉이 가까이 보인다. 이미 주능선은 겨울 채비를 끝냈다. 나목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난다.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이다 보니 겨울이 빠르다. 완만한 능선을 구수한 낙엽 냄새에 파묻혀 사각사각 걷는다. 귀마개 모자를 꺼내 왼쪽 귀를 가렸다.
▲ 부약산 석이덤 전망대에서 가을빛으로 물든 산하를 굽어보는 산꾼. 단풍이 절정을 이룬 골짜기는 붉고 노란 비단을 펼쳐놓은 듯하다. 뒤로 보이는 온화한 산이 보현산이다.
능선을 기분 좋게 1시간을 걸었다. 보현지맥과 만나는 봉우리에 다다랐을 즈음 앞을 가로막는 철망이 나왔다. '야생동물 보호' 명목으로 사유지 주인이 만든 것이다. 군데군데 야생동물이 철망을 뚫고 필사의 탈출, 혹은 진입을 한 흔적이 보인다. 밀렵꾼이나 무단 입산자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겠지만, 결과는 또 다른 생태계의 단절이다.
철망과 나란한 보현지맥을 걸은 지 10분 만에 보현산 시루봉 정상에 섰다. 비로소 상봉에 자리 잡은 보현산천문대가 뚜렷이 보인다. 한 15분 정도 발품을 팔면 천문대 구경을 할 수도 있겠다. 급하면 중간 하산로로 손색이 없다. 정상 아래엔 2층 팔각정이 있다. 정상에서 천문대를 바라보면 왼편이 북쪽인 청송, 오른편이 영천이다. 사방이 막힘이 없다.
정각마을로 내려서는 능선을 택해 하산을 한다. 등산로는 잘 정비돼 있지만, 원점회귀를 위해서는 입석리로 내려서는 능선길을 잘 찾아야 한다. 20분 정도 능선을 내려서면 '보현산 가-22'라는 119 표지목이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 능선을 택한다. 최근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벤 나무를 정리해 놓지 않아 길이 희미하지만 잃을 염려는 없다. 2개의 잘 손질된 무덤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낙엽이 길을 덮어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길을 확인하기보다는 능선을 계속 걷는다는 감으로 내려가야 한다.
무덤을 지나면서 길은 뚜렷해진다. 소나무가 울창하다. 그렇게 솔숲을 17분 정도 내려서니 앞이 확 트인다. 계곡 아래 마을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가 나온다. 남쪽이라 그런지 기습한파의 습격을 피한 나뭇잎들이 화려하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10분을 더 내려서면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왼쪽이나 오른쪽 어디로 내려서더라도 하산이 쉽다. 왼쪽길을 택해 전원주택이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대구에서 귀농한 이가 집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사과가 발갛게 익어가는 과수원 도로를 따라 30분을 더 내려오면 35번 국도와 만난다.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글·사진=부산일보 이재희 기자
상송 방면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닭개장으로 유명한 심가네식당(054-335-1544)이 있다. 닭고기를 쭉쭉 찢어 벌겋게 양념을 해서 얼큰한 맛을 자랑하는 닭개장(6천원)은 먹어 본 사람들만 안다는 별미이다.
느긋하게 즐길 사람들은 오리백숙(3만8천원)이나 닭백숙(3만5천원)을 시키면 된다. 추어탕(6천원)과 고디탕(6천원)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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