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밟으며 3시간30분 … 가족 가을산행 안성맞춤 국사봉(國師峰·943m)
문경새재IC에서 내려 901번 지방도를 타고 문경온천지구를 지나 갈평 방면으로 가면 여우목 고개에 다다른다. 여우목 고개에는 차량을 주차할 만한 넓은 공간이 있고 대미산과 운달산으로 이어지는 국사봉에 오를 수 있다.
여우의 목을 닮았다고 하기도 하고,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하기도 해서 이름이 붙은 여우목 고개에서 운달지맥을 오른다. 여우목 고개~전망대~879봉~국사봉~마전령~갈산교 7.2㎞를 3시간30분 가볍게 걸었다. 가족과 함께 가을 나들이 다녀오기에 딱 좋다.
▲ 여우목 고개에 있는 여우정. 음차를 해서 멋드러진 현판을 달아놓았다. 해발 620m인 이곳에서 국사봉 산행을 시작한다.
여우목 고개에는 제법 넓은 고랭지 배추밭이 있다. 작은 정자를 지어 놓았는데 현판이 여우정(與佑亭)이다. 음차를 해서 '더불어 사는 정자'로 멋지게 이름을 달아 놓았다. 산행 초입에 여우머리 모양의 샘이 있다.
여우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돼 있었으나 막혔는지 따로 호스를 마련해 맑은 물이 머리 위에서 콸콸 쏟아진다. 정수기 물을 미련 없이 쏟아버리고 물병을 다시 채웠다.
뚜렷하게 나 있는 산길에 접어들자 산불감시탑이 우뚝 솟아 있다. 약간 급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숲 속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등에 큼직한 배낭과 자루를 멘 버섯 채취꾼들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야생버섯 철이다.
인근 예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버섯 산행을 온 할아버지도 있다. 아직 식용 버섯과 독버섯을 완전하게 구분하지 못하는지 몇 개를 꺼내 전문가에게 보인다. 애써 채취해 온 탐스러운 버섯 몇 개가 길섶에 버려진다.
아무래도 산꾼들은 버섯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다. 주민이 아니라면 손을 대서도 안되지만, 워낙 모양과 형태가 비슷한 것들이 많아 자칫 큰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시장에 가면 식용 야생버섯이 널려 있다.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40분 정도 올랐다. 주변이 탁 트인 멋진 전망대다. 백두대간 대미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막상 그 산에 오르면 전체를 볼 수 없다. 오히려 국사봉 능선에 오르니 대미산의 위용이 느껴진다. 원래 대미산이라는 이름도 '멀리서 보면 크고 아름답다'는 뜻이 있다.
▲ 참나무 군락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능선길을 한적하게 걷는다. 전망대까지만 올라서면 길은 어려운 데 없이 무난하다.
전망대에서 국사봉을 향해 가는 길은 완만하다. 오르막길을 40분 오르는 것이 이번 산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비인 것이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하늘을 에워싸고 있다. 오래 쌓인 낙엽은 푹신하고 좋은 냄새를 선사한다. 가을의 맛일까. 가끔 불어주는 바람은 속 깊은 곳까지 씻어준다.
879봉까지는 25분이 더 걸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길이다.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니 이보다 더 걷기에 좋을 수가 없다. 이제 푸름은 제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짙은 녹색의 나뭇잎들은 가을을 알았는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 봄의 새싹을 위해 자리를 물려줄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혹독한 겨울을 날 수 있으니까.
잠시 안부를 내려섰다가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국사봉 정상이다. 25분이 걸렸다. 정상은 제법 넓지만 주변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조망은 별로이다. 누군가 집에서 프린트를 해서 정성껏 비닐 코팅을 한 정상 표지가 있었다. '운달지맥 국사봉'. 문경 사람들은 이 길을 '문경대간'이라고도 한다.
중평리 쪽으로 난 능선길이 있었지만, 초행이라 길이 어떨지 몰랐다. 그래서 마전령을 통해 갈산교로 하산하기로 했다. 운달지맥을 따르는 길이다.
정상에서 마전령까지도 25분이면 충분했다. 마전령에 가까워지자 성급하게 떨어진 밤송이가 길을 막는다. 이 시기 송이째 떨어지는 밤송이는 알이 제대로 차지 않았다. 밤은 익으면 껍질이 석류처럼 벌어지는데 살펴보니 껍질이 벌어지지 않았다. 보다 더 큰 결실을 맺기 위해 나무가 스스로 버린 것이었다.
마전령은 옛날 말이 지나다가 넘어질 정도로 가파르고 힘든 고갯길이었다는데 지금은 트럭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다. 시간 여유가 많거나 일찍 작정을 하고 왔다면 마전령을 지나 운달산까지 산행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만만찮다.
▲ 마전령에서 갈산 마을로 내려서는 길에 멀리 백두대간 하늘재가 보인다. 갈대도 이미 피어 가을이 왔음을 실감케 한다.
마전령으로 하산한다. 길가 습지에 핀 물봉선과 구절초가 가을임을 실감하게 한다. 멀리 바라보면 백두대간 하늘재로 오르는 길이 실오라기처럼 놓여 있다. 계곡엔 갈대도 이미 피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 몸을 비벼댄다. 가을은 만물이 서로에게 의지하기 좋은 계절이다.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내려가니 문경 사과가 탐스럽게 열린 과수원이 나온다. 붉은 사과를 보니 입에 침이 돌았다. 마침 사과를 수확하고 있는 농가가 있다. 가격을 물으니 먹어 보라며 선뜻 몇 개를 건넨다. 입 안 가득 달콤새콤한 과즙이 넘쳐난다. 짧은 산행의 피로까지 확 가신다.
문경은 고랭지를 활용한 사과와 다섯 가지 맛이 나는 오미자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물론 백두대간과 인근 산에서 나는 송이와 능이버섯도 특산물이다. 문경 시장에 가면 비교적 싼 가격에 이런 야생버섯들을 살 수 있단다.
농장 입구에서 갈산교까지는 또 30분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한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글·사진=이재희 기자
산행을 마친 후 문경읍 내 시골손두부식당(054-572-0011)에 가면 직접 만든 두부가 제맛이다. 두부김치(5천원)나 청국장(5천원), 순두부(5천원)가 한 끼 식사로 좋다. 산초열매 기름으로 구워 낸 산초두부김치(7천 원)가 독특하다. 올갱이순두부(6천 원)도 별미.
능이버섯 등 각종 야생버섯이 제철인 시기이니 문경새재 입구 상가 매표소 입구의 마당바위(054-571-6835) 식당에서 주인이 채취한 버섯을 넣고 끓인 버섯전골(4만 원)을 먹어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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