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엔 변강쇠·흥부 이야기, 산허리엔 지리산 제1 둘레길
함양 삼봉산(三峰山·1187m)을 찾아가는 길은 지리산의 내밀한 속살로 들어가는 것이다. 변강쇠와 옹녀의 설화가 가까이 있으며, 흥부마을이 있는 곳 또한 이 산 자락이다. 지리산 조망이 너무 좋아 산꾼들은 아예 '지리 삼봉산'이라고 부른다.
전북 남원시 인월에서 첫발을 내디딘 지리산 둘레길의 1코스가 삼봉산 산허리를 지나 등구재로 넘어간다. 이번 삼봉산 산행은 둘레길의 아름다운 정취도 함께 맛볼 수 있는 '보너스 산행'이다. 지리산을 끼고 사는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웃을 수 있는 즐거움도 덤이다.
▲ 산행 들머리인 중황마을 회관이다. 마을유래비가 서 있고, 왼쪽에 400년 된 정자나무가 있다.
실상사휴게소에서 실상사 반대방향으로 들어간다. 산행 들머리인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상황마을 주변은 역사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고 남도에 이름을 떨친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왜장 아지발도의 투구와 관련이 있을 투구봉, 아지발도가 흘린 피바위, 왜구와 격전을 벌인 황산벌, 달빛을 당겨 활을 쏘았다는 인월 등 이성계와 관련한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 마을에 호두나무가 많다. 벌써 알이 굵은 호두 열매가 많이 열려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길을 올라간다.
상황마을 회관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상황마을~지리산 둘레길~등구재~1044봉~삼봉산~1071봉~팔령 갈림길~투구봉~서룡산~백장암 갈림길~삼봉산허리길~매동마을~지리산 둘레길~상황쉼터~상황마을로 이어지는 16.1㎞를 7시간 50분 동안 넉넉하게 걸었다.
상황마을에는 유독 호두나무가 많았다. 호두 열매는 파란색이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벌어져 떨어지는 데 어릴 적 풋 호두를 따서 껍질을 갈아내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손에 까만 물이 들어도 오밀조밀한 호두 열매를 얻을 욕심에 갈고 씻고를 얼마나 반복했던지.
마을이 생긴 지 4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가던 파평 윤씨 일가가 정착했다고 한다. 원래는 황치로 불렀으나 마을이 커져 상·중·하황 마을로 나뉘었고, 이후 중황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지리산 둘레길답게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각종 카페나 쉼터도 많다.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등구재로 가는 길이다.
마을 가운뎃길을 따라 오른다. 둘레길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많은지 찻집과 쉼터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등구재로 가는 길은 완만한 오름길이다.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다. 모를 일찍 냈는지 벼가 제법 자라 산 밑에까지 녹색 융단을 펼친 것 같다.
마을에서 등구재까지 40분이 걸렸다. 이곳에서 둘레길과 헤어지고 삼봉산 능선을 따라 오른다. 등구재는 거북 등을 닮아 이름이 붙었다. 경남 함양 창원마을과 전북 남원 상황마을의 경계이자, 함양 사람들이 인월장을 보러 가던 고개라고 한다.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에는 달이 떠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고개라고 한다. 석양이 질 때 걸어 보고 싶은 길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삼봉산 3㎞'라는 이정표를 뒤로 하고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오른다. 습도가 높아서 숨이 빨리 차오른다. 장마철 산행은 조망도 시원찮고, 무덥지만 온몸의 노폐물을 쫙 뺄 수 있어 오히려 기분은 더 상쾌해지는 것 같다. 됫박이나 되는 땀방울을 쏟아낸다.
산나리꽃이 저만치부터 얼굴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산꾼을 반긴다. 부끄러운 듯 싸리꽃도 작은 몸을 숨기려고 했지만 고운 보라색은 어쩔 수 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철 따라 고운 꽃들을 볼 수 있으니 산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다.
▲ 삼봉산 정상석이다. 함양쪽에서 세워 놓았다.
1시간을 올라 934봉에 도착했다. 삼봉산은 아직 1.8㎞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오르막인 데다가 무더우니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능선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이미 900고지를 올랐으니 어느 정도 고도는 확보한 셈이다. 40분을 더 걸어 1044봉에 도착했다. 창원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산길 곳곳에 멧돼지의 배설물이 즐비하다. 야생동물이 밤새 누비고 다니던 길을 사람들이 또 다닌다. 야생동물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배설을 한다고 한다. 멧돼지가 기분 좋게 배설을 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편안한 길인가 보다.
삼봉산에 도착했다. 갈림길에서 30분이 더 걸렸다. 정상석은 함양군에서 설치해 놓았다. 삼봉산은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산이라고 이름이 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온통 구름에 싸여 코앞도 분간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대가 곁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삼봉산 정상은 오도재에서 오를 수도 있다. 오도재는 고승이 오도재를 오르다가 득도를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남해와 하동 지방의 해산물이 내륙으로 이동하던 고갯길이다. 인산죽염으로 유명한 김일훈 선생이 삼봉산 자락에 기거했다고 알림판에 자세히 써 놓았다. 이제 팔령재 방면으로 향한다.
불과 5분이나 걸었을까. 뱀사골 동동주 빈병이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다. 이곳 계곡으로 내려서면 상황마을로 바로 내려설 수 있다. 중간탈출로인 셈이다. 뱀사골 동동주가 급한 분들은 하산하면 되겠다.
1071봉으로 가는 길은 그리 힘들 것이 없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1108봉을 지나 35분쯤 걸었을까. 인산농장으로 내려서는 길과 투구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투구봉으로 향한다.
1071봉은 우회하여 팔령재와 갈라지는 이정표에 도착했다. 투구봉은 불과 50m만 더 가면 된다. 인산농장 갈림길에서 1시간이 더 걸렸다. 푸른 녹음이 쏟아내는 방향물질과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시며 온몸을 정화하는 산길이었다.
투구봉에서 팔령재로 이어지는 길은 경남과 전북의 도경계이다. 도계를 따라 내려가면 전북 남원시 인월면 서무리에 흥부전의 배경인 '성산(흥부)마을'이 있다. 팔령재에 있는 팔령산성은 옛날부터 신라와 백제의 경계였는데, 이성계가 왜구를 대파한 황산벌 전투의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투구봉에 올라서니 현대 전자장비로 치장한 산불감시탑이 있다. 폐쇄회로 TV로 사람을 대신하는 모양이다. 투구봉에서 인월과 백장암·서진암 가는 길을 따라 가는데 20분쯤 걸으니 서룡산이 나온다. 인월면의 산악회에서 정상비를 설치해 놓았다.
서룡산에서 7분을 걸으면 이정표가 하나 나온다. 인월 방면과 지나온 서룡산 방면은 팻말이 있는데 서진암 방면은 떨어졌는지 누가 뗐는지 팻말이 없다. 원점회귀를 하기 위해 애초 계획했던 인월 방면 백장암 하산로를 포기하고 서진암 하산로를 택했는데 능선에서 서진암으로 내려서는 길은 좀체 찾기가 힘들다. 능선길은 잘 나 있고 누군가 최근에 정비를 했는지 잔 나뭇가지도 정리를 해 놓아 걷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계속 걷다 보니 50분 만에 능선에서 계곡으로 떨어져 산 아래까지 와 버렸다. 고로쇠 물을 받던 자리가 있고,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나무다리가 있다. 처음 만난 나무다리는 건너지 않고 왼편 서쪽 방향의 산허리길을 택한다. 상황마을로 회귀해야 하기 때문이다.
▲좌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걷는다. 길은 한적하다. 지리산은 오른쪽 저쪽에 멀리 떨어져 있다.
송이밭 사이를 가로질러 완만한 산허리길을 25분 정도 걸으면 사과 과수원을 조성하는 넓은 공지가 나온다. 산길은 여기서 끝이다. 임도를 따라 5분을 내려서면 매동마을 뒤편의 지리산 둘레길과 만난다. 둘레길을 1시간 20분 정도 느긋하게 걸어 상황마을로 원점회귀한다.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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