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 명성에 곳곳 소나무 숲 … 천태만상 바위산의 매력 '허굴산'
인근 황매산(1,108m)이 철쭉으로 유명하다지만 아우 격인 허굴산(682m)도 황매산 못지 않았다.
그러나 허굴산의 가장 큰 매력은 철쭉이 아니라 천태만상으로 솟은 바위들에 있다. 베틀바위, 촛대바위, 송곳바위, 맷돌바위, 마당바위, 장군바위, 피난바위, 새바위, 용바위 등등…. 헉헉, 일일이 말하려면 산을 오르기도 전에 먼저 숨이 차 쓰러질 정도다. 땅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할 바위가 전부 튀어올라 나온 형상이다.
경남 합천군 대병면 송정마을 버스정류소~안동 권씨 묘역~용바위(인근 664m봉)~허굴산 정상~성터~안부~움막~허굴산 농장~청강사 표지판~합천 자연학교에 이르는 6.9㎞ 구간을 3시간 동안 걸었다. 아니, 일부 구간은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고 해야 될 듯. 들머리인 송정마을 버스정류소와 날머리인 합천 자연학교에서 이어진 길이 모두 1026번 지방도와 맞닿아 있어 거의 원점 회귀 코스와 다를 바 없다.
정류소 뒤로 난 길을 따라 송정마을 쪽으로 내려온다. 10시 방향의 낮은 구릉 위로 밤나무 밭이 보이고 밤나무 사이로 묘들이 모여 있다. 그 곳으로 방향을 정하고 논길을 건넌다. 처음 마주치는 묘들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밤나무 밭을 10m 정도 걷다 보면 제법 가파른 경사길이 나온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다시 묘가 2기 보인다. 전부 안동 권씨네 묘역이라고. 묘를 지나간다.
지금부터는 길 설명이 쉽지 않다. 여느 산행길처럼 길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질 않는다. 바위산의 특징이랄까? 바위와 바위 사이에 틈이 있으면 그게 길이요, 때로는 바위 중 낮은 바위 쪽이 길이 되기도 한다. 앞의 경우엔 바위가 길가의 벽이 되고, 뒤의 경우엔 바위가 발아래 도로가 된다. 동아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바위도 있다. 새로운 바위가 나타나면 그 곳이 모두 갈림길처럼 보인다. 결국 리본을 잘 확인하는 것이 가장 수월한 길 찾기 방법이다. 생각보다 리본이 산행길에 촘촘히 잘 매어져 있다. 부족한 곳은 이번 산행에서 보충했다.
바위 만큼이나 소나무숲이 많다. 산행대장에게 물었더니 유독 바위가 많은 산에 소나무가 많단다. 바위를 넘다가, 소나무숲을 걷다가, 그러기를 반복한다. 평소 산행길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지도상 거리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밤나무 밭을 지나 15분쯤 후에 교실 크기 만한 바위 위에 도착하면 길을 제대로 들어선 것. 정말 마당 같다. 그 끝머리에 소형차보다 약간 큰 바위 하나가 더 서 있다. 전망이 끝내준다. 사실 바위산이 길은 험해도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길목 곳곳에 전망 좋은 곳이 많기 때문.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 않아서다. 20분쯤을 더 올라가면 바위로 된 능선이 나온다. 세 방향의 전망이 트였다. 내려다보이는 5월의 들판이 정겹다.
해발 664m의 봉우리에 올랐다. 흔히들 그냥 '664봉'이라 불렀다. 바로 옆에 용바위가 있다. 용(龍)이 승천한 바위가 아니라 '올라가려면 용을 써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664봉에 허굴산의 정상석이 서 있다는 점. 분명 해발 682m 높이의 정상은 따로 있는 데도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후 해발 682m의 정상보다 이곳의 전망이 훨씬 훌륭하다. 아마도 정상석이 여기에 있는 이유 또한 그것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664봉을 내려와 정상으로 가는 길. 얼마 못 가 양쪽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을 선택한다. 이 때부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점점 바위가 줄어든다. 어쩌면 허굴산 바위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들머리로부터 664봉까지일지도. 드디어 정상.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30분 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664봉보다 전망이 좋지 않다. 나무들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시야를 가려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세 갈래다. 664봉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청강사에서 올라오는 길, 그리고 성터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올라오는 길이 세 갈래라면 내려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 664봉에서 올라왔으니 청강사 쪽이나 성터 방향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아무래도 성터 쪽이 좀 더 산행을 할 수 있을 듯하여 그 쪽으로 정한다.
올라온 길에서 볼 때 1시 방향으로 난 길. 방위로는 남동쪽으로 향한 소로다. 발아래 솔잎이 많이 쌓여 있고,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뻗어 나와 길 정리가 안 된 것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 듯하다. 내려가다 다시 조금 올라가니 또 하나의 봉우리. 오른쪽으로 성터 흔적으로 여겨지는 돌너덜이 보인다. 직진.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바위를 뛰어 건너면 다시 돌너덜이 나온다. 이번엔 돌너덜 위를 걸어 건너면 숲길을 따라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소나무, 참나무, 철쭉이 많다. 키보다 큰 철쭉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아서 가위로 끊고 나아가야 했다. 굳이 얼굴을 내밀어 철쭉 향을 맡지 않아도 걷는 동안 철쭉 꽃이 얼굴을 스치며 향을 뿌린다.
무성한 철쭉 사이를 지나오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돌너덜을 건너 내려온 지 15분 정도 흐른 시간. 산꾼들이 '안부(鞍部·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라 부르는 그런 지형이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골짜기 정도라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듯. 다시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왼쪽 샛길로 빠져 나와 산을 내려간다. 길이 보일 듯 말 듯하니, 리본을 확인하자.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빗물 따위에 휩쓸려 산이 깎인 지점이 나온다. 깎여 내려간 그 위를 가로질러 건넌 후 다시 왼쪽으로 돌아 아래로 향한다. 조금만 내려오다 보면 물소리가 들린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듣는 물소리. 그러나 바위 아래로 흐르는 탓에 물 구경은 할 수 없다. 다시 철쭉 숲. 그리고 작은 계곡 바위…, 그러다 보면 어느새 숲을 빠져 나와 움막을 만난다. 이제 사실상의 산행은 끝났다.
움막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는 계곡, 왼쪽으로는 밤나무 밭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정한 후 50m도 채 못 가 다시 오른쪽으로 향한다. 길 양쪽으로 심어놓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사유지임을 직감할 수 있다. 허굴산 농장. 10분쯤 걸었을까 녹슨 문이 잠긴 채 서 있다. 문 옆길로 빠져 나오면 상봉기마을이다. 문을 나와 좌회전. 시멘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좌측으로 상봉기 마을회관이 보인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 나오면 청강사 입구, 다시 합천 자연학교를 지나 바로 날머리로 이어진다.
/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허굴산 인근에서 식사를 하려면 합천호 회양관광단지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들머리, 날머리에서 차로 불과 5분 거리. 게다가 목욕탕도 있어 몸을 씻은 후 상쾌한 기분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식당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육류와 민물고기, 한식 등을 골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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