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울산광역시

울산 중구-북정동 울산동헌 해남사 울산향교

by 구석구석 2009. 12. 22.
728x90

 

북정동349 울산유형문화재1호 울산동헌및내아

울산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고, 내아는 수령이 살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년)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고, 1763년(영조 39년) 울산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다시 지어 반학헌(伴鶴軒)으로 불렀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회의실로 사용되었다가 1981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나 원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 겹처마 익공(翼工) 양식의 팔작지붕집으로 좌우에 2칸씩의 방을 두고,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두었다. 왼쪽방 주위에는 계자(鷄子) 난간을 둘렀다. 내아는 8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온돌방 3칸, 대청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두었다. 살림집인데도 마당도 없고, 동헌과 구분되는 담이 없어 어색하다.

 

북정동 118 해남사 052-211-3340

해남사는 1936년 근대의 고승인 통도사(通度寺)의 구하천보(九河天輔) 스님이 울산지역의 포교를 위해 세운 통도사 울산포교당이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일제치하에서 갖은 학대를 당하며 망국의 서러움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불법(佛法)으로써 민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誓願)하여 포교당을 열게 된 것이다. 
 

 

해남사의 창건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해남사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통도사의 구하천보(九河天輔, 1872~1965) 스님이, 망국의 서러움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을 불법으로 구제할 목적으로 세운 포교당이다. 처음 명칭은 통도사 울산포교당이었으며, 포교사로는 운송스님이 처음 부임한 후 영암ㆍ자운ㆍ홍법ㆍ성공ㆍ청하ㆍ홍언 등 여러 큰 스님들이 머물렀다. 창건 당시 건물은 법당ㆍ요사ㆍ유치원이었는데, 1970년에 홍언스님이 범종각을 보수하고 1972년에 법당을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지용스님이 범종을 조성하고 유치원 건물을 보수하였다. 이후 1999년에 지장전을 새로 건립하고 2003년에 오래된 법당을 보수하여, 지역사회의 많은 불자들을 교화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교동 171-1 시유형문화재7호 울산향교 052-243-0129

향교는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지방 교육기관이다. 향교 건물은 문묘와 학당으로 이루어진다. 문묘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사성이현과 우리나라 십팔현을 모신 대성전과 동, 서무가 있고, 학당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 서재가 있다.  

 창건 연대나 초기 연혁은 임진왜란에 의한 기록의 멸실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고을 한 향교 체제가 완성된 15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된다. 창건 당시에는 신학성 북쪽인 현 반구동 구교마을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탄 후 그곳에 다시 세워졌다가 1652년 (효종 3년)에 지금 장소로 옮겨 세웠다. 1800년 이후 26번 고쳤으나 배치의 기본틀은 변함이 없었다. 주요 건물들을 남북과 동서축으로 직각 교차하게 배치하여 전형적인 향교건축의 특성을 살렸다. 각 건물도 전통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데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홑처마 익공양식의 맞배지붕집이고, 명륜당은 정면5칸 측면2칸의 홑처마 익공 양식의 팔작지붕집이며, 정문인 청원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익공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