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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광주광역시

광주 양림동 근대역사100년 우일선

by 구석구석 200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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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라면 어디든 첩첩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래지 않은 과거인 근대의 흔적은 현대의 공간과 뒤섞여 녹아들면서 독특한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개화기 이후 100여 년의 시간이 한 동네에 모여 있다. 지은 지 100년이 가까워진 선교사 사택을 비롯한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고 개화기 양반 가옥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골목길 구석구석에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과 미술관이 숨어 있다.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이자 어두운 단면이기도 한 펭귄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재생의 빛과 그림자 펭귄마을

도시철도 남광주역에서 광주천을 건너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펭귄마을이다. 양림동커뮤니티센터 옆에 주 출입구가 있지만 거꾸로 되짚어가도 상관없다. 펭귄마을이란 이름이 처음 알려진 건 2014년께다. 오래된 주택가인 이 마을에서 빈집이 불탄 뒤 쓰레기장이 되자 한 주민이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가꾼 게 시작이었다. 이주하는 이들이 두고 떠난 옛 물건들을 골목에 하나둘 전시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펭귄이라는 이름도 다리가 불편한 연로한 주민들이 걷는 모습이 펭귄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골목을 돌고 돌면 멈춰버린 시계, 용도를 다한 모자, 신발 등 각종 생활용품, 잡동사니로 꾸며져 있다. 빙빙 돌고 돌아도 200m가 채 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추억 가득한 옛 물건들과 깡통이나 병뚜껑 등을 재활용해 만든 작품이 골목 좌우로 눈길을 사로잡아 쉽게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다. 휴일이면 골목길은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로 번잡해진다.

 

빈집에는 작가들이 입주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체험 활동도 이뤄진다. 얼핏 보면 마을의 탄생과 운영이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비슷하지만 실제는 서로 다르다. 이름이 알려지고 방문객이 늘자 광주 남구가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보고 입주작가와 청년창업자에게 빈집을 내주다 못해 주민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했단다. 주민이 만들고 가꿔온 펭귄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걱정스럽다.

 

■100년의 시간이 쌓인 양림역사문화마을

왁자지껄한 펭귄마을에서 고작 왕복 2차로 도로를 건넜을 뿐인데 양림역사문화마을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같은 골목길이지만 두 사람이 비껴가면 꽉 차는 펭귄마을과는 달리 길은 넓고 좌우의 집들도 차이 난다. 무엇보다 100년 안팎 된 기와지붕의 고가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는 마을 길은 지나다니는 이가 적고 고적한 분위기라 대화하는 목소리마저 낮아진다. 물론 이 골목에도 오토바이와 차가 다니고 멀리서는 다양한 소음이 들리지만 한옥들 사이를 거니는 느낌은 조금 조심스럽다.

 

펭귄마을 입구 앞 오거리 회전교차로에서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벽면 안내도 왼쪽 길로 들어서면 16세기 때 인물인 광주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이 있는 ‘효자정공엄지려’가 카페 옆에 숨어 있다. 왼쪽 골목길로 오르면 안내판을 따라 이장우 가옥에 이어 최승효 가옥이 나온다. 각각 광주시 민속자료 1, 2호로 지정된 두 가옥은 각각 1899년과 1920년대에 지어졌다. 아쉬운 것은 이장우 가옥은 평일에만 개방돼 주말에는 담장 밖 댓돌에 올라서 훔쳐볼 수밖에 없고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을 숨겼다는 최승효 가옥은 근래에는 아예 문을 걸어 잠가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양림마을에는 이 두 곳 외에도 골목 곳곳에 윤회매문화관, 한희원미술관 등 예술공간과 잘 꾸민 카페가 발길을 끈다.

 

양림동 166-19 최승효가옥 시민속자료 제2호

양림산 동남쪽 끝 부분에 있는 이 집은 원래 독립운동가 최상현(崔相鉉)의 집이다.

동향으로 지었으며, 정면 여덟간, 측면 네칸의 매우 큰 규모의 전통가옥이다. 일자형 평면의 팔작(八作)집이면서도 우측의 경사진 부지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1퇴(退) 공간의 반지하층을 구성하여 율동감을 주었다. 좌측으로도 1퇴(退)를 개방공간으로 주어 비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형성하여 단조롭지 않게 하였다.

 

서향인 뒤쪽은 너비 60m의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일단 차단시키고 있으며, 미닫이 창문 때문에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벽면 윗 부분에 띠판창을 두었다.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다락 외부벽에는 완공을 두어 다락안의 채광을 돕고 있다. 기단은 우측의 반 지하 부분을 제외하고는 1cm 정도 높인 뒤 2단 원형 주초석을 써서 모양을 살렸다.
1920년대의 가옥으로 한말 전통 가옥의 이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의의가 큰 집이다.

 

양림동 128 이장우가옥 시민속자료 제1호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배치된 기와집이다. 안채의 상량문에 광무(光武) 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기록되어 1899년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안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안채의 평면 형태는 정면 여섯칸에 좌우 퇴가 있으며, ㄱ자형으로 되어 우측면은 네 칸과 후퇴, 가구는 2고주 5량의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상류층 주택인 이장우가옥

세벌대의 다듬돌 기단 위에 원형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과 사각기둥을 세웠다. 보아지와 우미량이 있다. 대청은 2분합 겹문으로 안은 미닫이, 밖은 여닫이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의 문은 3분합 들어 열개문으로 되어 있다. 여닫이문을 고정시키기 위해 중앙에 문잡이 거북장식물을 두었으며 들어 열개문을 고정하기 위해서 참새 모양의 장식물을 장설에 두고 있다.

 

■양림산에 자리 잡은 호남 선교 역사

근대 양반 가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건 없다. 비슷한 시기의 기독교 선교의 자취를 좇아가는 길도 의미 있다. 펭귄마을 입구에서 남쪽에 있는 기독간호대학교 교내에 있는 오웬(오기원)기념각에서 시작한다. 오웬기념각은 광주에 첫 교회를 세운 선교사 오웬을 기려 1914년에 지은 건물이다. 바로 앞에는 농업기술을 전한 선교사 어비슨을 기린 어비슨기념관이 있다.

 

여기서 정면에 보이는 양림산 자락으로 오르는 길에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한 조아라 기념관과 이곳이 고향인 다형 김현승의 호를 딴 무인 다방인 다형다방을 지난다. 수피아여중·고와 호남신학대학이 의지한 양림산에 서면 정면 멀리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형 김현승의 모습을 딴 벤치가 놓인 언덕을 오르면 광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인 우일선선교사사택이 눈길을 끈다. 수령 400년의 호랑가시나무를 비롯해 흑호도나무 등 노거수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양림동 226-25  우일선선교사사택 광주기념물 제15호 

관리- 한광교회 062-672-1004

이 건물은 광주에 현존하는 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Wilson)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올 뿐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현재 내부를 개조하여 대한예수교 장로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양림산 기슭에 동향으로 세워진 2층 벽돌 건물이다. 평면 정사각형으로 1층은 거실, 가족실, 부엌, 욕실 등이 있고, 2층은 사생활공간으로 침실을 두었다. 지하층은 창고와 보일러실이다.

 

동향인 점은 한국의 전통적인 방위관을 받아들인 것이라 해석된다. 크기는 정면 10.6m이다. 구조는 벽이 두께 55mm의 회색벽돌로 네델란드식으로 쌓아져 있고 내부는 회반죽으로 마감했으며, 고막이부분은 화강석을 쌓아 처리했다. 개구부는 모두 반원형의 아치로 만들었다. 창문 외부는 열개창, 내부는 오르내리창의 이중창으로 되어 있다. 1층과 2층을 구별하기 위하여 벽돌로 돌림띠를 두어 외벽에 변화를 주었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시기념물17호 1989년 3월 20일지정

양림산 남쪽 기독교 장로교 선교부의 정원 옆에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전남 남해안과 제주 서해안에 주로 자생하는 상록활엽소 교목이다. 변산반도가 북쪽 한계선이며 중국에도 분포하나 특히 광주, 전남의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잎은 두꺼운 가죽질과 광택이 있으며 잎가에 가시모양의 톱니가 다섯개 있다. 꽃은 여름철에 흰 빛으로 잎겨드랑이에 모여서 가을에 핵과가 붉게 익는데, 겨울철 눈속에서도 붉은 빛을 띠어 관상수로도 제격이다.

 

양림동의 이 나무는 높이가 6m 정도이며 근원부의 간주가 115㎝로 이 수종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거목이다.

수관의 너비는 남북 7m, 동서 5m 이며 가슴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원래 야생식물로 자란 것을 관상용으로 보호해왔으며 주변에 어린 나 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나무가 있는 이곳은 1899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오웬 두 사람이 목포에서 광주로 이주하여 전도를 시작했던 본거지이다.

호랑이가시나무언덕의 벤치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는 허철선 선교사 사택을 지나 양림산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이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숨진 이들이 묻힌 선교사묘역을 만난다. 이곳으로 오르는 65개의 돌계단에는 선교사들의 이름과 출몰연도가 새겨져 있다. 호남신학대학 정문으로 내려가서 양림미술관과 유진벨선교기념관, 다형 김현승 시비를 본 뒤 사직공원의 사직전망타워에 올라 무등산을 비롯한 광주 시내 조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양림동 숨은 빵집&밥집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맛집이 빠질 수 없다. 부산의 떠오르는 카페거리인 온천천이나 전포동에 꾸준히 새로운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는 것처럼 광주 양림동에도 조금 오래된 맛집과 갓 문을 연 맛집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면제작소와 밥제작소처럼 독특한 이름을 붙인 곳이 있는가 하면 양림동이란 지명과 옛 지번을 조합한 ‘양림148’처럼 양림이란 이름이 들어간 곳도 제법 많다.

도로변 2층 ‘면제작소’는 이름처럼 짬뽕과 짜장 등 면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다. 깔끔한 음식에 더해 창문으로 보이는 무등산 조망이 좋다. 기독간호대학에서 양림산 오르는 길에는 디저트 카페인 ‘밀당’이 이름이 났다. 빵집인 ‘양인제과’도 빵집 순례자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유기농 밀가루와 천연 발효종으로 빵을 만드는데 버터와 단팥이 조화를 이룬 앙버터와 선교사오웬팥빵, 초코빵, 옥수수슈크림이 유명하다.

글·사진= 국제신문 이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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