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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대구광역시

대구 남산동 인쇄골목 명덕역주변 대구향교

by 구석구석 200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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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명륜로 112(남산동) / 대구향교 053-422-8700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신라 이래의 불교 정책을 억제하고 일상 생활 예절의 근본이 되는 유학을 널리 펴고 백성들을 무지로부터 해방하여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하고자 전국 234개 군현에 향교를 세웠다. 이때가 1398년 (단기 3731년) 태조 7년이었다.

외삼문

향교의 기능으로서는 첫째, 교육을 통해 백성을 문맹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큰 목적과 둘째, 지역전통문화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선도역할과 셋째, 공자님을 위시한 여러 성현 군자와 큰 스승을 모셔 제례를 올림으로서 예절의식을 널리 확산하고, 도덕적 인간상 구현과 각인의 자아성취와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다.

대구향교도 위 목표를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이전, 중건하는 변천의 과정을 겪었다.

은행나무와 양사재(우) 낙육재(좌)

1398년 교동에 세워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599년 달성공원에 재건되었 다가 위치가 불길하여 1605년 교동으로 옮겼고 1932년 일제침략기 유림집회로 인한 항 일운동 봉쇄를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대성전에서는 유교문화의 중흥을 위해 영남각지에서 유림등이 모여들어 연2회 춘추중 월(2.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 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로 짜올린 다포식건축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 다.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앙의 명륜당과 동재서재

대성전에는 공자를 정위에 모시고 사성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을 배향하고 동종과 서종에는 송조이현,신라조이현, 고려조이현, 조선조십사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월 삭망과 내빈객은 분향례를 올리고 입교학생들은 고유를 하고 있다.

명륜당은 대구지역 유림들이 모여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던 곳으로 이지역의 많은 인재(人材)를 육성 배출하였다. 대성전 앞뜰에는 옛경상도 관찰사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즐비하게 서 있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공자상이 서있는 고요한 앞뜰은 도심내의 명상공간을 연출한다. 현재에도 명륜당과 유림회관에서는 사서경전 강의, 충효교실, 전통혼례 등이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현대의 향교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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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대 인쇄거리 '대전 인쇄골목'

'칙칙 폭폭' 하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느껴진다. 창고 같은 인쇄소 안에 있는 커다란 기계에 종이가 들어갔다가 기계 안에서 돌돌 말리다가 나와서 차곡차곡 쌓인다. 인쇄 기계 오른쪽에는 포장을 덜 뜯은 백지가 한 뭉텅이, 맞은편에는 참고서 표지처럼 보이는 하늘색 인쇄물이 한 뭉텅이가 있다. 학교 앞 제본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왼쪽에는 환한 책상에서 누군가가 인쇄된 종이를 보고 있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이곳은 색상을 확인하는 곳이라고 한다. 사장님이 운영하는 인쇄소는 화보처럼 화질이 좋고 색상이 선명한 인쇄를 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 골목의 인쇄소들은 겉으론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인쇄를 한다. 처음 방문했던 인쇄소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1인 출판을 할 수 있는 인쇄소도 나온다.

인쇄물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필요한 설비가 제각각인데 설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인쇄업은 협업이 필수다.

대전 인쇄골목은 100년이 넘었다.서울, 대구와 함께 3대 인쇄거리로 손꼽힌다. 대전 인쇄골목은 삼성동과 정동, 중동에 인쇄특화거리로 조성돼있다. '대전충남 인쇄40년사'에 따르면, 대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는 자넌 1910년 문을 연 '유신당인쇄(주)'다. 

대전 인쇄골목이 가장 호황을 누렸던 것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다. 대전역에서 목척교를 따라 조성된 상권으로 한 때 이 곳은 대전의 중심지, 일명 '시내'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적한 골목이 됐다.

인쇄거리 원천의 태동이었던 충남도청과 대전지방법원, 대전시청이 둔산과 내포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그 기반을 상실한데다 재개발 이슈와 엮이며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기대를 모았던 세종시 출범도 인쇄골목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역 인쇄업은 설비가 노후한 데다, 서울에서 이전한 부처들은 기존에 거래를 해왔던 서울 업체와 계약을 유지하면서 크게 이전 효과를 보지도 못했다. 지역 인쇄업체들이 세종 근처에 첨단설비를 갖춘 인쇄산업단지를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세상에 인쇄업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인쇄는 우리 일상에 공기처럼 존재한다. 사물에 붙어있는 스티커, 안내서, 책자, 그리고 공문, 책은 물론 모두 인쇄소에서 나온 '인쇄물'이다. QR코드가 개발되면서 인쇄물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해졌다.

수학 교과서에 수학 개념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QR코드로 연결하는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쇄업도 코로나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동구 인쇄골목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구자빈씨는 "코로나로 여러 행사가 없어지면서 관련 인쇄물 수요도 적어져 타격이 크다"고 답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출처 - 중도일보 이유나 기자

 

 중구 명덕로 93/ 미성당 053-255-0742

대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미성당 납작만두는 평범한 만두와 달리 만두 모양이 납작한 전과 같은 모양이라 납작만두라 불리며 유명해졌다. 대구 납작만두는 미성당 만두와 남문시장이 유명한데 언제나 손님들이 북적이지만 회전율이 빨라 금방 맛볼 수 있다. 

납작만두는 보통 만두와 확연히 다르다. 위에 파가 올라가 아삭함을 살려주고, 주문과 동시에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에 촉촉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만두피의 식감은 메밀전과 비슷한데 기호에 따라 무언가를 싸먹어도 상당히 맛있다. 

만두의 짝꿍으로 많이 팔리는 쫄면은 투박한 모습 뒤에 숨겨진 맛이 만두와 함께 입안을 즐겁게 해준다. 기본 재료로 맛을 냈지만 맵지 않은 새콤달콤한 양념이 만두와 함께 먹어도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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