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강원도

원주 단구동-박경리문학공원

by 구석구석 2009. 2. 3.
728x90

 

반체제 저항시인이자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하 시인이 목포에서 이사 와 원주중학교를 졸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원주를 빛낸 분은 박경리(朴景利·1927-2008) 선생이다. 선생이 여기 계시는 것만으로도 원주는 돋보였다. 섬강은 맑았고, 치악은 높았다. 선생의 문학적 성과는 세계 문학사에도 길이 빛날 것이지만, 여기서는 원주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짚어보자.

▲ (좌)단구동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옛집. 저 멀리 치악산 줄기가 보인다.(우)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완간한 날(8월15일)을 기리기 위해 매년 8월14일이면‘소설 토지의 날’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토지’로 널리 알려진 박경리 선생은, 1980년 김지하 시인의 부인이자 딸인 김영주씨가 시댁인 원주에서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남편의 옥바라지에 고생하자 이를 도와주기 위해 원주로 내려오게 된다. 이때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동쪽으로 치악산이 바라보이는 단구동 언덕이었다.

 

이곳에 집과 텃밭을 마련한 선생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토지’ 4부와 5부 집필에 몰두했다. 결국 1994년 8월15일 이곳에서 토지 전 5부 16권을 탈고하는 26년에 걸친 집필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다 이태 뒤 이곳이 재개발대상지에 포함되자 시내를 벗어나 흥업면 매지리의 양지 바른 산기슭에 토지문화관을 건립해 옮겨가게 되는데, 원주시가 1999년에 이곳을 인수해 박경리문학공원을 조성했다.

 

치악산 하늘금이 통째로 올려다보이는 단구동 저택의 조망은 좋다.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와 교회 등의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예전보다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내에서 이 정도면 치악산 조망엔 나무람이 없는 수준이다. 지난 5월5일 박경리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한 마지막 시는 이곳 단구동 시절을 노래하고 있다.

 

▲ (좌)박경리 선생의 옛집에 조성한 박경리 문학공원엔 전시실도 갖춰져 있다. (우)박경리 선생 옛집 대문. 창작을 위해 고민하던 선생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듯하다.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 뜰은 넓어서 /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 정붙이고 살았다 /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중략)…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 모진 세월은 가고 아아 편안하다 //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의 시 ‘옛날의 그 집’ 중에서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성과는 두말이 필요 없거니와 선생의 체취는 통영에서, 하동에서, 그리고 이곳 원주에서 느끼게 된다. 선생께서 작품에 몰두하시다 거닐던 그 뜰엔 따가운지 뜨거운지 모를 늦여름 햇살이 쏟아진다. ‘홍이동산’이라 이름 지은 집 옆의 언덕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니 치악이 싱긋 미소를 보낸다.

 

 

원주 로스터리숍 '준과랑

 

커피의 깊고 진한 맛과 향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원두의 섬세한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며 같은 원두라도 로스팅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숍별로 각각의 색깔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준과랑(763-5588)은 ‘평생 이 자리에서 행복하게 커피를 만들자’는 심의준(50) 김영랑(44) 대표의 생각이 편안한 분위기에 그대로 묻어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