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경상남도

산청 산청읍-내리 웅석봉 심적사 지곡사

by 구석구석 2009. 1. 13.
728x90

 수도권에서는 경부나 중부 고속도로를 이용해 대전으로 온 다음 비룡 분기점에서 대전~통영 간 35번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산청까지 간다. 산청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산청읍내를 거쳐 웅석산 군립공원쪽으로 진입한다(서울서 약 3시간30분 소요).

 

 

곰 추락설에 어울리는 산행 코스. 내리저수지~지곡사~선녀탕~왕재~웅석봉~900봉~암릉~내리저수지 코스. 휴식 포함해 5시간가량 걸린다.

 

웅석봉
경남 산청의 웅석봉(熊石峰·1,099m)은 이름 그대로 ‘곰바위산’으로 불린다. 정상부에서 놀던 곰이 가파른 북사면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실제로 웅석봉 정상에서 보면 북쪽에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있어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굳이 곰의 전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청읍에서 본 웅석봉은 곰처럼 둔중하고 뚝심있게 솟아 있다.

 

▲ 밤머리재~웅석봉 중간의 전망바위. 산청일대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보통 웅석봉은 지리산 자락의 한 봉우리로 분류된다. 천왕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백두대간 줄기는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에 이른 다음 방향을 동으로 틀어 왕등재와 깃대봉을 거쳐 경호강으로 잦아들기 직전에다 웅석봉을 솟구쳤다.

 

웅석봉은 이렇게 지리산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도 남북으로 제법 큰 산괴를 형성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는 경호강으로 이어지지만, 남릉은 수양산(首陽山 · 502m)을 거쳐 덕천강으로 뻗어나가면서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룬다.
산세가 웅장한 만큼 수려한 계곡도 많다. 정상을 중심으로 뻗어 내린 곰골과 어천계곡, 청계계곡, 닥밭실골 외에도 남릉에서 발원하는 백운동과 실골 같은 골짜기는 경관이 뛰어나고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웅석봉은 이렇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음에도 지리산에 비하면 한적한 편이다. 지척에 위치한 지리산 천왕봉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남 지역 산악인들은 웅석봉에도 지리산 못지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천왕봉의 모습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 웅석봉 만한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곰도 떨어져 죽었다는 험준한 산세

최근 들어 웅석봉은 백두대간의 시작 또는 끝머리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종주를 시작하거나 마치던 백두대간 종주팀들도 이 웅석봉을 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 웅석봉은 지리산의 한 자락 일뿐 아니라 백두대간의 일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웅석봉 산행은 산청읍에서 접근해 지곡사쪽에서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산청읍과 시천면을 잇는 59번 국도가 포장되면서부터 등산방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동안 웅석봉은 험준한 산세 탓에 천왕봉보다 오르기 힘든 산으로 인식되어 왔다. 산청읍쪽에서 접근할 경우 1,000m 고도차의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발 570m의 밤머리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운치 있는 능선길을 따라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능선에서 보는 천왕봉 동쪽 사면의 조망도 뛰어나 인기 있다.

 

웅석봉 등산로는 밤머리재 기점 코스 외에도 지곡사에서 출발해 계곡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 새로운 백두대간 종주 기점으로 조명되고 있는 어천계곡 코스, 닥밭실골을 통해 웅석봉 남릉으로 이어지는 코스 등이 있다. 청계계곡과 아랫바람재 등에서도 웅석봉을 오를 수 있었으나 임도 개설과 댐 조성 등으로 지형이 변하며 등산로 초입부가 희미해져버렸다.

 

산청읍 내리 772-5 지곡사 055-972-2954

 

지곡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이다.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고,고려 광종 대에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다. 최근 지곡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8~9세기 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위와 같은 이야기를 뒷받침하였다. 지곡사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 되었다가, 근래 옛 지곡사 산신각 자리에 중창하여 옛 지곡사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등을 밝히고 있다.

 

옛날의 지곡사는 인근인 내리 772-4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라 하였다고 조선시대 후기에 기록된 『지곡사용화당기』에 전한다. 또 진관선사오공탑비에는 고려 광종(光宗) 대에 고승인 진관 석초스님을 지곡사의 주지로 임명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선종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으나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 되었다.

 

 

대간 시발점 캠프로 떠오른 웅석관광농원

 

▲ 웅석봉을 병풍삼아 과수원에 차린 웅석관광농원의 흑염소·흑돼지구이 상차림.

 

웅석봉 자락 산청읍 내리에 있는 ‘웅석관광농원’(055-973-8565)은 백두대간 종주의 시발캠프로 이용하기에 적합한 집이다. 실제로 많은 종주대가 이용하고 있기도 했다. 웅석관광농원은 유유히 흐르는 경호강변, 확 트인 넓은 공간에다가 숙박시설과 식당을 차려 놓아 주변의 자연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농원을 조성하고 손님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인데, 워낙 잘 가꾸어 놓은 집이라 금방 명소가 됐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방갈로를 갖춘 숙박시설은 200명까지 동시에 수용할 수 있고, 깨끗하게 꾸며 놓은 식당에서는 식사뿐만 아니라 흑염소와 흑돼지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으며, 단체인 경우에는 바비큐를 주문할 수도 있다.

산이 좋아 산자락 사과과수원에다가 관광농원을 조성했다는 박정호(朴正鎬·50)-우병숙(禹秉淑·48)씨 내외는 산사람들의 멋진 캠프로 가꾸어 나가겠다는 강한 의욕으로 캠프 운영에 대한 산사람들의 자문을 구한다고도 했다. 산사람들만이 아니고 사람과바다(대표 김승식·055-973-9977)를 위시해 경호강 래프팅업체들의 캠프로도 떠오르고 있다.

월간산 /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

 

 

지리 170 심적사 055-973-1388

심적사는 산청읍 내리 웅석봉 아래 위치하고 있다. 지곡사에서 계속오르면 심적사에 닿는다.

 

산청 경호강에서 시원하게 래프팅을 즐기는 풍경을 따라 웅석봉 심적사에 갈 수 있다. 백두산이 뻗어 내린 산줄기가 우리나라 남단에 와서 또 한 번 큰 산으로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산청 지리산 웅석봉 기슭에 서부경남지역의 최고 나한도량 심적사가 중생들의 원을 듣고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 고요히 숨 쉬고 있다. 황매산과 가야산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심적사와 나한님과의 인연은 특별하고 끈질기다.

 

 

나한암에 있던 나한님을 한때 심적사에 모셨던 인연으로 긴 세월동안 모진 풍파에 절이 폐사가 되다시피 하고도 지금껏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강원도 어디에서 모셔왔다는 전설의 나한님은 6.25 동란을 피해 한 때 절이 산청읍내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심적정사가 되었다. 이때 모셔진 22나한님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심적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심적정사에 그대로 봉안되어 있다.

 

서계서원(西溪書院)
산청읍 지리에 있는 서계서원은 산청읍으로 들어서기 전에 만날 수 있다. 남명 선생의 제자 덕계 오건을 모신 서원이다. 덕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606년(선조 39년)에 사림들이 세워 1677년(숙종3년)에 사액을 받았다. 건물로는 덕양당 창덕사 입덕루 덕천재 동재 서재 고사가 있고 유물로는 덕계선생과 사호선생의 문집 목판이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