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곡서원지
청평리 안전유원지 안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터. 잠곡(潛谷) 김육(金堉·1580-1658)은 광해군 때 성균관에 있을 당시 정인홍 등이 이황을 극렬하게 비난하며 문묘배향(文廟配享)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자, 정인홍을 유생들의 명단인 청금록에서 삭제해 하옥됐다. 방면된 김육은 이곳 청평리로 들어와 10여 년간 은둔하면서 몸소 농사를 짓고 숯을 구워 팔며 백성의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생전에 대동법 확대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잠곡서원은 잠곡의 학덕과 유풍을 기르기 위해 1705년(숙종 31년)에 창건됐고, 1707년에 사액됐으나, 1871년(고종 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폐지됐다. 1983년에 가평군 유림들의 발의로 서원터에 위패와 추모비를 세웠다. 안전유원지 안에 자리하고 있다(가평군 향토유적 제7호).
장지방 031-581-0457
전남 장성과 전북 전주·임실 등지에서 조부 장경순씨, 부친 장세권씨에 이어 3대에 걸쳐 한지를 만들던 장용훈 장인은 1977년 4월 가평으로 옮겨와 지금까지 전통한지만을 전업으로 제작해 왔다. 작업공방인 장지방(張紙房)은 ‘장씨 가문이 한지를 만드는 공방’이란 뜻이다.
닥종이로도 불리는 한지는 닥나무를 베고, 찌고, 말리고, 벗기고,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다시 뜨는 등 아흔아홉 번의 정성스러운 손질을 거쳐서 완성된다. 장인도 이러한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 손길로 천 년의 전통을 잇는 것과 동시에 천 년의 종이도 만드는 것이다. 장용훈 장인은 96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됐다.
한편, 장지방에서는 한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청소년들을 위한 한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종이 뜨는 과정을 간략히 체험하고 완성된 한지는 직접 가져간다.
국도변에 이정표가 있지만 이후로는 세세하지 않아 찾기가 조금 어렵고, 군에서 제작한 관광안내도에도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에덴휴게소와 주유소 사이로 들어가면 마을길이 나온다. 철교 굴다리를 지나 30m쯤 간 뒤 새로 난 매골교를 건너 600m 들어가면 장지방이다.
청평에서 자라섬방향으로가다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청평리13-7 벽오동 031-585-5002
서울-춘천 46번 국도 청평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2킬로미터 직진하면 한적한 도로변에 작은 기와집 형태의 벽오동 외관이 보인다. 청평호와 청평댐이 마주보이는 곳이어서 전망이 좋다. 아담하고 작지만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어 석양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기에도 좋은 위치다.
토속음식전문점을 표방하고 있는 벽오동은 전골류와 파전, 감자전, 도토리묵 등 흔히 동동주 과에 속하는 음식을 취급하고 있다. 벽오동은 청평댐을 바로 지나는 지리적 입지에 따라 우연히 꺾어든 골목에서 잠깐 들러 휴식을 취하는 휴게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표메뉴 중 하나인 버섯전골은 느타리, 새송이, 양송이, 표고, 팽이버섯 등 구색을 갖추고 있어 기본적으로 고소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마련된 육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으므로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볼 수는 없다. 그저 민속주점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밑반찬은 정갈하고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채소와 나물은 전부 이 근방에서 재배한 것으로 쓴다. 회전율을 의식한 때문인지 음식 자체가 단순하고 넉넉히 음미할 것은 못된다. 하지만 야외 테이블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이를 외호하는 산자락을 바라보는 낭만이 있다.
도로변이라 약간 시끄러울 수 있고, 주차 공간도 갓길과 안쪽 협소한 공간이 전부여서 자칫 위험할 수 있게 보인다. 아울러 규모가 작다보니 손님이 몰릴 경우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꽤 걸린다.
'방방곡곡 > 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 기흥구-신갈동 원저캐슬 (0) | 2009.01.13 |
---|---|
수원 영통-영통동 양대창구이 새벽집 봉주루 (0) | 2009.01.13 |
안성 봉산동-극적루 안성공원 성신식당 영동식당 (0) | 2009.01.05 |
의정부 용현동-조개와해물세상 (0) | 2009.01.05 |
양주 덕정사거리-다래현 (0) | 200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