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의 최고봉 백병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맥에 솟은 학아산(鶴雅山·790.3m)은 아직까지 산악인들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전인미답의 산이다. 이름 그대로 십장생에 등장하는 학이 둥지를 틀고 살던 곳이다. 풍수로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비학포란 형국이라 하며 ‘학알산’이라고도 하여 죽계8경에서도 노래하고 있다.
죽계8경은 청평들에 나는 두루미(청전운학 靑田雲鶴), 비비골의 제비떼(연동취송 燕洞翠松), 죽기 마을 대숲에 뜬 달(죽림명월 竹林明月), 학아산의 폭포(학애폭포 鶴涯瀑布), 가곡천에 노니는 물고기(연지은린 硯池銀鱗), 갈전 마을의 버드나무(장포세류 長浦細柳), 강물에 흘러가는 오동잎(동강기암 桐江奇岩), 치바위의 저녁노을(기암낙조 箕岩落照)이 그것이다.
백병산, 면산, 육백산, 매봉산들에서 시원한 물들이 모여 동해에 이르는 가곡천에는 산천어, 갈겨니, 퉁가리, 은어, 메기, 뱀장어, 돌고기, 피라미, 민물참게까지 서식하고 있으며, 숲에는 각종 포유동물도 많고 말벌과 독사가 유난히 우글거린다.
416번 지방도가 지나는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오저리 2반 갈전과 오밑마을 중간쯤에 있는 거리광대곡이 산행들머리다. 크고 넓은 골짜기라는 광대곡(廣大谷)은 계곡분지 위의 ‘넓은터’에서 유래된 말이고, ‘거리광대곡’은 길거리 초입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부터 13년 전 만 해도 넓은터에는 6가구가 살갑게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칡넝쿨이 발목을 잡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곳으로 변했고, 계곡에는 달랑 보림사만 들어앉아 있다.
조망 좋은 아찔한 암릉길
김장래(태백시청), 백금석(대한생명), 태백여성산악회의 권영희, 안순란, 이영숙씨는 보림사 표석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거리광대곡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물고기가 노니는 계곡에 난데없이 레미콘차가 소음을 내며 오른쪽 산비탈에서 불쑥 나타난다. 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 신가평까지 가는 765kv의 철탑을 세우느라 다니는 차다.
거리광대곡 시멘트길은 5분쯤에 보림사 앞에서 끝난다. 보림사는 조계종 사찰로 1996년에 여기에 터를 잡았다. 주인은 출타했는지 인기척이 없다. 넓었던 길이 사라져버려 숲이 빼곡한 계곡으로 내려와 물을 건너자 희미한 옛길이 얼굴을 빼꼼이 내민다. 얼기설기 칡덩굴이 한창 꽃을 피웠고 이끼 낀 바위들은 미끄럽다. 잎과 줄기에서 누린내를 풍기는 누리장나무, 간드러지게 꽃이 매달려있는 수까치깨, 키가 껑충 자란 염아자의 보라색 꽃이 계곡을 덮었다.
조름조개풀을 밟으며 숲을 헤치자 입석이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바위 뒤로 돌아들자 석굴에 기도터가 있다. 기도터 바로 전에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난다. 이제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구불구불 고도를 높여나가는 옛길이다. 바위절벽 아래 벌통도 보인다. 사람의 왕래가 끊긴 지 오래된 길은 6가구가 있었다는 넓은터로 이어지는 것 같다.
평탄해진 소나무 아래에서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들이며 휴식을 하는 사이 안순란씨가 배낭에서 강낭콩이 박힌 감자 ‘번드레기’를 꺼내 놓는다. 토속음식이다. 옛날 이 마을 사람들은 귀리로 번드레기를 해 먹었다. 콩잎이나 수수 잎을 싸서 쪄 놓으면 불쭉불쭉 색이 들어 맛나 보였던 구황음식이다.
5분쯤 사면을 돌아들자 부처손이 바위 위에 곱게 자란, 묘지에 이르기 전 삼거리다. 여기서 그대로 직진하면 묘를 지나 계곡을 건너 넓은터로 가게 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길로 180도 꺾어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가자 의외로 산비탈 길이 점점 넓어진다. 바위를 깎아 길을 만들었다. 뒤틀린 노송 사이로 보림사와 거리광대곡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조망이 대단히 좋다. 아까 보림사 앞에서 올려다보던 주왕산의 기암처럼 생긴 곳에 이른 것이다. 절벽 위에서 범이 뛰어내려 금시 덮칠 것만 같다. 여기가 범바위인가. 바위틈 사방으로 짐승 배설물이 널렸다. 윤기가 반지르르한 것은 방금 싸고 간 것이다. 산양 똥인가? 주인 잃은 염소 똥인가?
절벽 아래로 기가 막히게 길을 묘하게 내었다. 원을 그리며 갈전 마을 방향으로 이어져 간다. 갑자기 철탑을 세우느라 자재를 운반하는 길이 나타난다. 초장에 거리광대곡에서 레미콘 차와 만났던 그 길이다. 이제 왼쪽으로 흙먼지 펄펄 나는 찻길을 따라 올라가다 지능선 말랑에서 찻길을 버리고 오른쪽 숲속으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길이라고는 없다. 잔솔밭에 산도라지가 한창 꽃을 피웠다. 묘도 나타난다.
능선을 곧장 치고 오르다가 앞장선 김장래씨가 힘들었는지 슬그머니 오른쪽 사면으로 방향을 돌려 건너편 지능선으로 올라간다. 학애폭포 위의 능선쯤 되겠다.
농구공만한 말벌집과 독사에 식은땀
황소도 한방 쏘이면 나가 떨어진다는 농구공만한 말벌집이 공포를 조성한다. 바람 한 점 없는 된비알 가풀막에 숨은 하늘까지 찬다. 비죽비죽 솟은 바위들은 에굽은 노송들을 품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 바위채송화, 꼬리진달래나무가 빼곡한 능선 마루금을 놓치지 않으며 바위틈새로 세미 클라이밍을 하여 죽을동 살동 무조건 치고 오른다.
힘은 들어도 경치가 좋다. 정상에 이르자면 아직 멀었는데 허기가 진다. 칼등능선에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푼다. 백금석씨 배낭이 절벽 아래로 굴러간다. 가슴이 철렁-. 그러나 다행이다. 나뭇가지에 걸렸다.
속을 채우고 길을 나선다. 울퉁불퉁 구불구불 휘기는 예사다. 능선을 경계삼아 오른쪽은 굴참나무들이 자리를 잡았고 왼편은 두어 아름이 넘는 금강송이 하늘을 찌르며 솟았다. 장관이다. 지형이 험하니 매정한 인간 손에서 벗어나 저토록 옹골차게 자랄 수 있었구나! 이 일대가 조선시대 황장봉산이었다는 설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들머리를 출발한 지 5시간만에 삼각점(장성 22. 1995 재설)이 있는 정상이다. 겨우 북쪽만 조망이 트인 신갈나무 사이로 더께더께한 봉들이 사금산, 대치산, 가부산으로 울골질치며 모여들고 있다.
하산은 북북동릉이다. 이제부터는 그 지겹던 오름 한번 없이 오목골 삼거리까지 가게 될 것이다. 독사 새끼가 길을 막는다. 증명사진 한 장 찍어주고 희미한 능선을 찾아 한참을 내려가자 이번에는 아주 큰 놈이 나선다. 뱃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게 새끼를 밴 것 같다. 등줄기에 흐르던 땀도 식었다.
하산 1시간30분쯤 지나 시야가 확 트이는 인간 세상이다. 오목천에서 세수를 하고 툇마루에서 감자껍질을 까고 있는 황순봉(80세) 할머니께 마을 이야기를 듣는다. 비가 올 것만 같아 꾸물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에는 산머루를 들고 오목골을 빠져나온다.
월간산 글·사진 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산행안내 오지산행은 개척산행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항상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하며 해충에 대한 경계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보림사 뒤 입석에서 계곡을 버리고 오른쪽 숲속에 숨어있는 길과 묘를 만나기 전 180도 꺾이는 삼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1:50,000 지형도 장성).
교통 태백 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07:10(포항), 08:30(호산), 10:00(포항), 13:00(호산), 16:00(호산), 19:00(호산)에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해 광대곡 입구에서 하차한다. 50분 소요, 요금 3,700원.
호산 시외버스터미널(033-572-6045)에서 1일 6회(07:00~19:20) 운행하는 태백행 직행버스 이용. 풍곡행 시내버스도 6회 운행.
숙박 오밑마을 가곡천 건너 경치 좋은 터에 ‘이곳에 오면’(033-572-8816)이라는 이름의 민박집이 있다. 옻닭, 백숙, 전계탕을 주메뉴로 하고, 차와 식사도 된다. 전계탕은 전복과 닭이 만난 음식이다. 방은 30,000~50,000원, 황토찜질방과 텃밭에 재배한 무공해 농산물도 무료다. 윤석종-권계순 부부의 친절도 좋지만 산행 후 연락하면 자동차로 데리러 온다.
부근에 큰나무쉼터(572-1222), 논골식당(572-7140), 날머리 청평에 삼풍기사식당(573-4255), 가곡식당(573-4733) 등이 있다.
오밑마을
외밑을 옻나무골, 오동나무골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옻나무골 밑에 있다하여 옻밑이라고 불리다가 세월이 흘러 오밑으로 바뀌었다.
마을 뒷산에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나무밑마을로 불리었으며 지금도 마을에는 오동나무가 많으며 오동나무집이라는 택호를 가진 터도 있고 행정구역은 오저2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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