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백반
전주에 가서 전주음식문화의 푸짐함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백반이다. 6000원씩 하는 백반의 평균 반찬가지수가 무려 30여종류. 더 놀라운 것은 음식 하나하나가 한결 같이 맛있다는 점이다. 예전 전주 도청 인근에만도 10여 곳의 백반집이 성업했다. 하지만 박리다매 영업이 만만치 않아 하나 둘 문을 닫은 상태. 지금은 중앙동 전북소방본부옆의 한국식당(063-284-6932)을 비롯해 완산구청 인근, 서노송동, 전북대 주변 등지에서 여나믄 집이 맥을 잇고 있다.
34년 전통의 한국식당은 이춘근사장(여ㆍ49)이 26년째 어머니의 손맛을 잇고 있다. 한사람이 찾으면 찌개가 둘, 세사람이면 셋, 넷이 오면 김치찌개, 청국장, 민물새우국, 계란탕 등 네 종류의 찌개가 상에 오른다. 이밖에도 고등어조림, 오징어데침, 제육볶음, 두부부침, 도토리묵, 장조림, 콩자반, 오징어채볶음, 김구이, 잡채, 미역무침, 고사리무침, 어리굴젓, 조개젓, 파김치, 오이선, 배추김치, 브로콜리데침 등 맛깔스런 음식이 한상가득 오른다.
이 집은 한 번 조리한 음식이 다시 냉장고에 들어가는 법이 결코 없단다. 하루 고객을 가늠 해 정확한 분량의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점심 준비는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30분이면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전주시, 도청, 기업 등에서 소개 받은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데, 특히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다.
전주의 대표음식은 '비빔밥'이다. 그 모토는 '하모니'. 고추장 등의 장맛뿐만 아니라 고명으로 얹는 20여 가지 개별 재료의 개성이 어우러져 맛깔스럽고도 독특한 전주비빔밥만의 맛을 이뤄낸다. 전주에는 성미당, 가족회관, 한국관, 풍남정, 종로회관 등 비빔밥의 명소들이 즐비하다.
중앙동3가 80 고명 하나에도 정성 가득'가족회관'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은 조선조 3대 음식 중 하나로도 꼽혔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음식으로도 대접받고 있다. 국내 항공사의 국제선 항공편에 기내식으로도 내놓고 있는데, 외국인에게도 대단한 인기란다. 시내 전주비빔밥의 명소로는 완산구 중앙동에 있는 '가족회관‘(063-284-0982)이 단연 돋보인다.1980년 전주비빔밥 전문업소로 문을 연 가족회관은 향토전통음식 지정업소 1-1호다. 다른 음식을 병행하지 않는 전문업소의 시초이기도 한 가족회관의 업주 김년임 할머니는 전주비빔밥의 명인으로 통하며, 도지정 향토전통음식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회관식 전주비빔밥이 조리백서의 표준이 되고 있고, 항공기 기내식과 세계시장으로 수출되는 편의화된 전주비빔밥을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서울에서는 '전주식당'이라는 옥호가 전화번호부에 90여 곳 등재되어 있는데, 전주비빔밥을 전문으로 차려내는 명동의 '전주중앙회관‘(02-776-3525)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필수로 들리는 유명업소가 되어 있다.
비빔밥의 맛 또한 일품이다. 고사리, 취나물, 호박, 시금치, 콩나물 등 갖가지 야채와 은행, 지단, 당근 등 다채로운 고명이 맛깔스럽게 담겨져 나온다. 고추장 양념에 골고루 비벼 맛을 보면 밥알이 고슬고슬하면서 엉겨 붙지 않고 씹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골국물로 밥을 지었기 때문이다.
●063-284-2884 ●09:00∼21:30, 연중무휴(명절 제외) ●특미비빔밥 1만원, 비빔밥정식 8000원, 백반정식 8만원(4인, 예약 필수)/전주 우체국 맞은 편, 주차는 외환은행 주차장 이용 월간산
전주 토박이들이 선뜻 맛집으로 권하는 곳은 중앙동 성미당 063-284-6595
43년 전통으로 주인 정영자씨(61)가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 집의 비빔밥은 좀 색다르다. 우선 밥을 육수로 짓는다. 하지만 육수는 진하지 않는 것을 사용한다. 비빔밥 고유의 맛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또 흰밥을 상에 올리기 전 초벌 볶음으로 비빈밥을 육회, 표고버섯, 고사리 등 20여 가지의 고명등과 함께 올린다. 초벌 볶음은 갓 지은 밥에 찹쌀고추장과 콩나물, 참기름 등을 넣고 살짝 비벼 볶는다.
정영자씨는 "비빔밥은 재료를 대충 섞어 먹는 음식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고명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담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것. 음식 맛은 식재료가 우선이다. 이 집은 취나물 등은 진안에서 구하고, 한우 육회는 당일 잡은 신선한 것만 가져다 쓴다. 자료-스포츠조선 김형우기자
전주전통육회비빔밥 1만원, 전주비빔밥 8000원, 40년전통떡국 6000원.
전주우체국에서 동부시장과 중간쯤에 위치한 전주왱이콩나물국밥집 (경원동2가 12-1/063-287-6979)
콩나물국밥은 육수에 콩나물과 밥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내지만 전주 남부시장이 원조인 콩나물국밥은 순서가 좀 다르다. 바쁜 시장사람들이 뜨거운 국밥을 먹기 번거로워 찬밥에 뜨끈한 콩나물국을 말아줬던 데서 비롯됐다.
특이한 이름의 '왱이'는 '왱 왱' 벌 소리에서 착안했다. 벌떼처럼 손님들이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붙였다. 왱이집의 국밥은 뚝배기에 밥을 넣고 맑은 콩나물국을 말아 내오는데, 일단 너무 뜨겁지 않아 부담없다.
시원한 국밥과 함께 날계란 하나를 밥그릇에 담아오는 것도 특징. 뜨거운 국물을 몇 숟가락 부어 겉이 살짝 익은 계란에 김가루를 넣고 훌훌 마시는 맛이 고소하다. 밤새 술에 시달린 위장을 부드럽게 다독여 주는 역할을 한다. 콩나물을 무제한 리필 해주며, 김치, 깍두기, 오징어젓갈, 새우젓 등이 함께 상에 오른다. 뜨뜻하고 감칠맛 나는 모주도 맛볼 수 있다. 콩나물국밥 5000원. 스포츠조선 김형우기자
1954년 개업한 | 남문별미집
콩나물은 전주팔미(八味) 전주십미(十味)에도 들어 있고, 시내 중심가 풍남문에서 멀지 않은 남부시장 안에는 콩나물해장국 골목도 형성되어 있다. 이 골목에 있는 '남문별미집‘(063-288-1621)은 24시간 영업한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숙박료를 절약하기 위해 심야에 들러 모주 한 잔에 콩나물해장국을 즐기고는 목욕탕이나 찜질방으로 직행한다고도 했다.
1954년에 창업한 전주콩나물국밥 원조집 중의 한 곳인 한일관의 창업주 박강임 할머니는 지금 서울 강남구 특허청 뒤쪽에 '전주한일관‘(02-69-0571)을 열어 놓고 50년 전통의 그 맛 그대로를 서울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월간산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
동부시장 근처 복개도로 ‘한울집’ 063-287-2787
막걸리 한 주전자(9000원)를 주문하면 안주가 열 가지 넘게 나온다. 전주의 여느 막걸리집과 달라지는 건 이집 ‘임플로이’(종업원) 김형남(53·여)씨가 안주를 손님상에 내려놓으면서부터다.
전주사람들은 김형남씨를 “콩글리시의 대가”라고 부른다. 김씨는 자신을 “영어 아줌마”라고 부른다.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시작했다”는 콩글리시는 김씨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전국구 스타’다. 서울, 부산, 대전 손님들이 김씨의 콩글리시를 들으러 한울집을 찾는다. 외국인들도 종종 온다. 김씨는 “콩글리시를 쓰면 외국 손님들과도 의사소통이 웬만큼은 된다”고 했다.
손님들은 ‘쓰리걸리 원스타’(1만원)를 주문한다. 막걸리 세 병에 사이다 1병을 섞은 일종의 칵테일. 이름은 김씨의 작품이다. 막걸리는 한 병(750㎖)에 3000원.
전주IC에서 팔달로를 따라 도심으로 오다 고속버스터미널쪽으로 우회전한 뒤 서쪽 천변길을 15분쯤 남하, 다가교에서 좌회전해 오른쪽 '전주 차이나거리' 문 들어서면 오른쪽 첫골목에 위치한 다가동 만성한정식
전주 음식 명소 중엔 외지에는 덜 알려졌어도 전주 사람들이 더 높게 치는 곳들이 있다. '만성한정식'(063-232-4141)은 '전주 3대 한정식집'에 들진 않지만 지역 인사들이 으뜸으로 꼽는다. 구색만 맞추는 접시 하나 없이 정말 맛깔진 것들로만 딱 한 상을 차린다. 그래서 덜 화려해 보여도 하나하나 맛볼 때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4인상 12만원짜리를 시켰더니 요리와 탕 15개, 반찬 15개쯤이 올랐다. 동치미 국물부터 한 숟가락 뜨니 입에 찰싹 붙는다. 간이 딱 맞다.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키거나 탄산음료를 넣어 급조한 게 아니라 장독대에서 자연스레 익은 듯 맛이 깊다. 육회는 생고기를 버무려 부드럽고 양념이 잘 배 있다. 뚝배기 가득 푸짐한 갈비찜은 달착지근하지 않고 집에서 해먹듯 절제된 맛이다. 신선로도 국물이 탁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깨끗하다.
다진 산 낙지, 전복회, 새조개회, 생굴, 소라무침, 낙지볶음, 간장게장, 마른 굴비, 홍어찜, 더덕구이도 건성 아니다. 다슬기탕은 초록빛이 진하다. 국산 중에서도 좋은 다슬기를 써야 그렇단다. 흙냄새 물씬한 민물새우 토하탕에 생대구 맑은탕, 소금 간만 한 콩나물 냉국도 깔끔하다.
반찬에선 진석화젓이 돋보인다. 굴을 독에 염장해 서늘한 곳에 3~4년 두면 잘 녹아 검은 빛을 띤다. 굴은 삭아서 보이지 않고 굴 향기만 남아 입맛을 돋운다. 생조기도 2년쯤 소금에 절여 두면 곰삭아 불그스레해진다. 이날 상에 오른 것은 1년 돼 덜 삭은 조기젓갈이라 조기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짭짤고소한 게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정갑순(59)씨는 한정식 명가 '백번집'에서 20년 일하다 이 집을 사들여 꾸린 지 13년 됐다. 매일 아침 남부시장에서 장봐 온 물좋은 재료들로 가족 밥상 보듯 차린다. 그러니 늦어도 하루 전 예약하는 게 좋다. 4인 기준 12만·14만·16만원 상. 점심에 두어 사람이 오면 양을 조금 줄여 10만원 상도 낸다. 상 여덟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큰방을 비롯해 방 5개. 한복차림 종업원이 상머리 시중을 드는 게 조금 거북할 사람도 있겠다.
경원동3가 13-12 전일슈퍼 063-284-0793
낮에는 슈퍼마켓인데 저녁이면 술을 파는 주점이 된다. 전주동부시장과 평생교육원사이에 있다.
전주 술꾼들이 줄창 막걸리만 마시는 건 물론 아니다. ‘가맥’도 많이 찾는다. 가맥이란 가게에서 파는 맥주를 말한다. 옛날 주점 영업시간을 새벽 2시로 제한하던 때, 슈퍼마켓 간이의자에 앉아 차수를 늘이며 병맥주를 마시던 관습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수로 따진다면 막걸리집보다도 ‘가맥’이 훨씬 많다. 전주의 거의 모든 슈퍼마켓 간판에 가맥 또는 휴게실이란 글자가 따라붙는다. 가게 안팎에 탁자·의자를 마련해 두고 맥주와 갑오징어구이·황태구이·계란말이·북어국 등 안주를 독특한 양념장과 함께 낸다. 갑오징어구이로 잘 알려진 전일수퍼, 명태국으로 소문난 임실슈퍼, 튀김닭발을 잘 하는 영동슈퍼 등 이름난 가맥집들이 즐비하다.
왁자지껄하고 정겨운 분위기는 막걸리집과 다름없으니, 막걸리 전문점과 가맥집이라는 독특한 두 주점 양태가 전주의 음식문화·여가문화·밤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저렴한 술값과 황태-갑오징어 등 안주가 특징. 맥주 500ml 한 병에 2000원. 10병을 마셔도 2만원이다. 황태는 부드럽게 손질해서 통구이(6000원)로 낸다. 갑오징어(1만5000원)는 쇠망치로 두드려 잘게 뜯어낸다.
전주 삼양다방 TV엔 뉴스, 테이블엔 신문… 노인들의 사랑방
콩나물국밥으로 이름난 전주 경원동 '왱이집' 근처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찻집 삼양다방이 있다. 왱이집이 다 수용 못하는 손님들을 차지하려는 콩나물국밥 집들이 다방을 에워싸듯 포진해 있었다. 이 다방은 1952년 이 자리에서 개업해 현존 국내 최고(最古)의 다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다방은 현재 이춘자(62)씨가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종업원 없이 이씨 혼자 모든 일을 한다. 아침 8시30분이면 문을 열고 오후 6시엔 문을 닫는다. 주로 마실 나온 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다보니 저녁엔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레지'도 없고 배달도 안 하지만 동네 다방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씨 이전에 40년가량 한 사람이 운영했다고도 하지만 정확히 몇명의 주인이 이 다방을 거쳐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수십년 단골손님들은 이곳이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던 전주의 문화공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주인 이씨는 아침에 나오면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구독하는 신문 네 가지를 스테이플러로 고정해 단골들이 주로 앉는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김장 담글 때 쓰는 스테인리스 함지에 물을 넣어 가스불 위에 올려놓고 흰색 사기 커피잔을 그 안에서 데운다. 다방 중앙에 있는 브라운관 TV는 뉴스 채널을 틀어놓는다.
오전 9시쯤이면 첫 손님이 온다. 매일 오는 사람들이다. 커피값 2000원을 이들에게는 1000원만 받는다. 이씨는 "팔십 넘은 분들께 어떻게 커피값을 다 받겠느냐"고 했다. 11시쯤엔 제법 동네 어른들이 모이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간간이 문을 밀고 들어선다.
쌍화차를 주문하니 잣이며 호두, 대추를 듬뿍 넣은 차가 나왔다. 마시기 전에 사진을 찍자 이씨가 "옛날에는 거기에 달걀노른자를 넣어 마셨다"며 달걀을 깨 넣어주었다. 1960년대부터 이 다방을 다녔다는 김동만(75)씨는 "이곳 단골은 아침 먹고 나와 점심시간까지 앉아 있는 부류와 점심 먹고 차 마시러 나오는 부류로 나뉜다"며 "나이 먹은 사람들이 시내에서 갈 데가 별로 없어 7~8년 전부터 매일 나오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삼양다방도 예전에는 전주의 화가와 문인들이 모여 차를 마시던 곳이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지역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서예가들이 쓴 글씨가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최근에도 지역 화가들이 이곳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 만큼 지역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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