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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강릉 중앙로-중앙시장 관음사 임영관지

by 구석구석 2008.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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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동 50 중앙시장 033-648-2285

성남동 일대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1980년 1월 18일부로 등록개설된 강릉시내 재래식 공설시장으로서 동쪽으로 동부시장, 서쪽으로 서부시장 다음으로 세 번째 개장되어 핵심 유통시장기능을 100% 발휘하며 성업 중에 있다.  

 

 

시장의 구성은 종합 공설 시장상가, 축협, 농협 마트, 개별상가, 점포, 유흥점 등이 밀집해 있고, 노점상들이 골목길, 도로변에 형성되어 사계절 지역특산물이 거래되는 등 유통기능이 활성화 되어 있으며 중앙시장의 주요 고유특성은 지역 향토성을 띄고 특산물의 거래가 활발 하며 강릉 도심 내 인구는 물론 동해안 농어촌지역 인구도 중앙시장을 많이 찾고 있다.

 

그리고 1년에 한번 강릉 단오제 행사가 중앙시장주변 남대천 일대 단오장에서 약 1주일정도 거행될 경우 전국에서 각종 품목이 모여드는 영동중심의 전통 재래시장이다.

 

지하1층(어판장) - 수산물직판장(오징어, 고등어, 문어, 가재미등)
지상1층 - 제수용품, 식품, 포목, 주단, 건어물, 의류, 귀금속등
지상2층 - 식당, 이불, 한복, 수선등
지상3층 - 번영회사무실, 회의실 등

 

금학동 29  관음사  033-640-5580 

관음사는 월정사의 말사로 1923년에 강릉의 유지, 건봉사, 월정사 에서 공동으로 자금을 추렴하여 포교당으로 건립되었다.



경내에는 신축 당시에 지었다는 요사채와 1977년에 신축한 대웅전, 1987년에 조성한 대종 및 범종각이 있다. 관음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대웅전 내에 봉안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소형 범종이다. 목조관음 보살좌상은 중앙에 두광과 신광을 구비한 아미타여래입상이 있는 화려한 관을 쓰고 있다. 

 

풍만한 상호에는 이마에 백호가 있고, 수평으로 반개한 양눈은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오똑한 코와 미소를 머금은 입이 묘사되어 있다. 긴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귓볼이 길게 늘어져 있고, 양뺨과 귀 사이로 흐르는 보발은 양 어깨와 팔뚝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살상의 하면에는 원형의 구멍이 있는 점으로 보아 복장을 납입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 부의 실측치는 전고 49cm, 두고 22cm, 두폭 10cm, 견폭 23cm, 흉폭 33cm, 슬고 17cm 이다.

  

범종은 법당 내 동종 용뉴와 음관 및 종신을 구비한 전형적 인 조선시대의 동종으로, 용뉴의 용은 각각 3조의 발가락이 있는 4발로 종신을 움켜쥐고 있다. 용의 얼굴은 눈, 눈썹, 코, 양 귀 등이 사실적인데, 특히 신체의 비늘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용의 꼬리는 음관을 휘감고 있는데, 음관에 용의 엉덩이부를 물리고 뒷발을 수평으로 벌린 상태이다. 이 종은 정조 18년(1794)에 주조된 강릉 보현사의 종으로, 비록 소형이지만 조선시대의 양식을 잘 구비하고 있는 동종이다. 각 부의 실측치는 전고 90cm, 윗지름 37cm, 아랫지름 56cm, 보살상 고 26.5cm이다.

 

 

용강동 58-1 사적 제388호(94.7.11) 강릉 임영관지(江陵臨瀛館址)

강릉부의 객사(客舍 - 중앙의 관리들이 지방에 내려오면 유숙하던 곳)건물인 임영관(臨瀛館)으로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客舍門 - 보물 제51호)만 남아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 후 수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1929년에 완전히 철거 되었다. 이후 당시 건물로는 임영관의 정문인 객사문(국보 제51호)만이 남아 있으며 그 터에는 1957년 경찰서가 건립되었으나 1993년에 헐리면서 한동안 빈터로 남아 왔다.

1993년 강릉대학교 발굴조사를 하여 고려전기에서 조선후기에 이르는 시기의 전대청(殿大廳), 중대청(中大廳), 동대청(東大廳), 낭청방(郎廳旁), 서헌(西軒), 월랑(月廊), 삼문(三門) 등 많은 수의 건물터와 이 시기의 청자와 분청사기(粉靑沙器), 백자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암·수막새, 기와 등이 발견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기록인 임영지(臨瀛誌)의 내용과도 같다.



현재 강릉부 객사인 임영관은 지난 2000년부터 전통문화도시 도심관아유적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임영관지내에 전대청, 중대청, 동대청, 서헌 등 4개 건물이 복원되었다.

임영관지는 인접한 곳에 위치한 객사문 및 부사(府使)가 업무를 보던 칠사당(七事堂)과 함께 옛 강릉의 고려시대 이후 관아 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국보 제51호 객사문은 앞쪽이 비교적 높은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옆면과 뒷면에는 둥근 자연석을 배열(配列)하였으며 기초석(基礎石)은 같은 형태를 가지지 않고 몇 가지 다른 모양의 것을 이용하고 있다. 앞뒷줄 기둥은 배흘림(기둥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고 위쪽과 아래쪽이 중간 부분 보다 가는 기둥형태)이 뚜렷한 원주(圓柱 - 둥근 기둥) 를 사용하였고, 중간 줄의 기둥은 방주(方柱 - 네모난 기둥)를 사용하여 문을 달았다.

 

 

 

기둥의 배흘림은 그 어느 건물보다 심하며 전체적으로 볼 때 현재 남아있는 목조건축 문화재 중 가장 크고 장식화 경향이 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수덕사 대웅전(修德寺大雄殿 - 國寶 第49號, 1308년에 건립)보다 건축연대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내 건축물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간결하고 소박한 주심포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맞배지붕의 삼문(三門)이다.

출처 - 강릉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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