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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태백 31번국도-금천계곡 구문소

by 구석구석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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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계곡

태백산 동쪽에 위치한다. 잣나무골 안쪽에 아방골, 뼝깨골로 들어가면 기암괴석과 주위 경관이 원시림으로 우거져 있다.금천계곡을 계속올라가면 문수봉으로 올라 갈 수 있다.


청소년 수련장과 야영장을 조성할 예정이며 계곡의 맑은 물이 일품이다. 이 금천계곡은 태백에서 처음으로 석탄이 발견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계곡 안쪽에 금천관광농원과 낚시터가 있어 휴식터로 안성 맞춤이다.

 

산행코스 금천계곡▶문수봉부쇠봉천제단(7.8km,3시간 50분소요)

 

금천동 먹돌배기 근처에 「최초석탑발견지탑」이 있다. 지금부터 약 77년전 상장면(태백시의 옛 행정단위)의 소사로 일하던 장해룡이라는 사람이 이곳 먹돌배기 근처에서 노두에 나와있는 석탄덩어리를 주워다 면장 책상위에 놓아 둔 것이 일본인 기사 소목탁이의 눈에 띄어 태백지역이 탄광도시로 탈바꿈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 단기 4330년 태백문화원에서 최초로 석탄을 발견한 부근에 최초석탄발견지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탑은 수갱을 의미하는 탑신과 동발광차, 광원 등을 상징하는 4부분으로 이루어 졌다.  

31번 국도변에 있으며 당골과 구문소 중간쯤에 태백산등산로옆에 있다

 

금천동 129-1 금천관광농원 033-581-3898  

태백산 동쪽 금천계곡이 있는 곳에 위치하여 맑은 물과 우거진 숲으로 휴식하기 안성맞춤이다. 문수봉으로 산행하기도 좋다.

 

방2(44평),거실2가 있으며  44평규모의 식당이 있어 토종닭백숙, 유황오리, 감자옹심이, 감자전,야생산더덕, 옥수수등 을 먹을 수 있고 원두막 5동, 운동장, 눈썰매장, 농산물판매장 5개소를 갖추고 있다.


 

 

연중무휴 / 매주 1,3주 월요일 휴무 / 09:00~22:00 / 2인용 5만원, 10인용 10만원 

 

비와야폭포

태백시 하장성 재피골 아래쪽 양지마을 끝에 높이 약 40m의 석회암 절벽이 있다.

 

 평소에는 그냥 깍아지른 절벽이지만 비만오면 그 절벽은 멋진 폭포로 변한다. 장마때는 흰 비단폭을 늘어놓은 것 같은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비가 와야 폭포가 되므로 비와야폭포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약 30여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해학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이름이다. 그 전에는 그냥 보쿠라고 불렀다.  보쿠는 폭포의 이 지방 방언이다.

겨울이 되면 40여m의 거대한 빙폭이 형성되어 3∼4개월 유지되는데 가히 일품으로 인근에서는 비할 곳이 없다. 

 

장성동 산42-2번지 천연기념물 제416호 하부고생대화석산지 

이 지역은 약 4억 6천만년전에 형성된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 퇴적암층(직운산층)으로 당시 살았던 생물들이 화석으로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고생대 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 장소이다.

태백 장성의 하부고생대 화석 산지는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약 5억~4억4천만년)에 번성했던 바다 생물인 삼엽충 화석이 대량으로 산출되는 국내 삼엽충화석의 보고이며, 삼엽충 화석 이외에 완족류, 두족류, 복족류 등의 다양한 화석이 산출되고 있다.

 

삼엽충은 대부분 얕은 바다에 서식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약 3억 5천만년 동안 생존해왔던 생물로서 고생대의 대표적인 표준화석이다.

 

이곳은 1986년 11월 19일 강원도기념물 제57호로 지정 보호되어 왔으며 2000년 4월 24일 화석의 분포 가능지역을 추가로 포함하여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승격 지정한 것이다. 태백 장성의 하부고생대 화석산지는 하부 고생대 오르도비스기(5억∼4억 4천만년 전)의 조선누층군 중 직운산층에 해당하는 암석층이다. 하부고생대 지층임을 말하여 주는 삼엽충을 중심으로 완족류, 두족류, 복족류 등 매우 다양한 화석이 산출되는 곳이다.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출현한 절지동물인 삼엽충의 생존기간을 기준으로 고생대 캠브리아기를 30여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나온 삼엽충화석을 연구한 결과 현재 북위 38°부근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5억년 전에는 적도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태백 장성의 하부고생대 화석산지는 고생대 지구의 역사와 한반도의 자연 역사를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화석산지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전하고 있다.

 

 

금천동 12번지 청뜨리민박 033-581-5371

방이 넓어 단체숙박이 가능하며, 건물을 우리만이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깨끗하고 조용하며 아기자기한 분위기에서 조용한 여행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제격이다.

 

 

 

 식당과 야간풍경

큰방1, 중간방 2, 작은방 2개가 있어 적은 인원부터 40인 이상까지 숙박가능

  

 

신비스런 전설을 간직한 태백8경의 하나인 구문소

태백에서 장성을 거쳐 봉화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높지도 않은 산자락에 일방통행의 짧은 굴이 양쪽으로 뚤려 있고 그 옆으로 기암괴봉을 뚫고 지나가는 물길을 보게 된다. 그곳이 천연기념물 417호로 지정된 구문소이다.

 

구문소 절벽위에 팔작지붕에 3칸 겹집 형태의 자개루가 있다. 동점 구문소의 거대한 석굴을 자개문이라 하는데 자개문 꼭대기에 세운 누각이라 자개루라고 한 것이다. 자개문은 낙동강의 상류지대로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에서 흘러온 하천물이 이곳에 이르러 산을 뚫고 흐르면서 깊은 소와 거대한 석굴을 이루어 놓았는데 그것은 거대한 석문처럼 생겨 천하에 기이한 절경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정감록 비결에 밤 자시가 되면 이 석문이 열리고 축시가 되면 닫히는데 자시에 석문이 열릴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전쟁과 굶주림이 없는 오복동이라는 이상향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석굴을 다시 말해 석문을 자시에 열린다고 자개문이라고 부른다. 자개루에 올라서면 삼형제폭포, 용소, 용천, 닭벼슬바위 등 구문팔경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경상북도 땅도 바라 보이는 태백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다. 단기 4328년에 건립하였다.  

 
평평하다 싶을 만큼 완만한 물길이 갑자기 바위들이 즐비한 암석지대를 만나고 곧바로 30미터 높이의 커다란 굴속에서 소를 이룬다. 태백 쪽의 안에서 보면 커다랗게 뚫린 구멍 속으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것만 보이고, 밖에서 보면 여러 겹의 암석사이로 큰 굴이 뚫려있고 그 아래로 푸른 소가 만들어지 형국이다. 또한 굴 위에는 제법 큰 정자까지 올라 앉아 있다. 황지에서 시작된 물길이 낙동강으로 흘러들기 직전에 이곳에서 한 바퀴 쉬었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구문소는 구멍 굴의 고어인 구무의 한자 표기에 물이 고이는 소가 합쳐진 말이다. 즉 구멍 속에 고인 물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말로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도 한다. 구문소 주변은 모두가 석회암반으로 되었으며 높이 20~30여m, 넓이 30m정도로 동양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환선굴 입구보다 몇배나 더 크다. 

 

형성 시기는 5억년 전후쯤으로 알려져 있고, 당시에는 이곳이 적도주변의 바다였을 것이라 한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삼엽층과 소금 흔적, 물결흔적등이 구문소 바위에서 나오고 있으며, 또 스트로마톨라이트와 필석류 등 5억년전의 고생대 화석이 검출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구문소 일대의 천변 4km구간은 우리나라 하부고생대의 표준 층서를 연구하기에 가장 중요한 지형이라 한다.

 

구문소는 그 모습만큼이나 신비스런 전설을 가지고 있다. 구문소가 생긴 기원에 얽힌 전설로 중국 하 나라의 우왕이 단군에게 치수를 배울 때 칼로 뚫었다는 이야기와 황지천 백룡과 철암천 청룡이 낙동강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다가 백룡이 청룡을 기습하기 위해 뚫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외 정감록에도 구문소를 지칭한 구전 기록이 적혀 있는데, 자시에 문이 열렸다가 축시에 문이 닫히는 석문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짠물이 나오는 샘이 있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천재지변이 없고, 흉년과 질병, 병화가 없으며, 산수가 수려해 천하명당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지금처럼 차로 다닐 수 없어 물길을 따라 주로 다녔던 옛날에는 구문소가 신비의 문이었고 구문소안의 땅은 무릉도원의 신선들이 사는 땅으로 여겨졌다.
구문소 터널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동점터널을 지나 바로 좌회전해 구문소 앞에서 오른쪽 통리방향의 다리를 넘으면 바로 왼쪽에 하나의 주차장이 있고, 구문소를 오른쪽에 끼고 상행방향의 동점터널을 다시 지나면 오른쪽에 또 하나의 큰 주차장과 쉼터가 있다.

 

 용소

삼형제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아래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소(沼)가 있는데 용소라 한다. 용이 살고 있다고 하여 용소라 하며 옛날 나라에서 가물 때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곳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황지의 물이 남쪽으로 30여리를 흘러가서 작은 산을 뚫고 남으로 나오니 뚜루내(穿川)라고 한다. 뚜루내는 경상도 낙동강의 근원으로 관(官)에서 제전(祭田)을 두고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낸다.」(黃池水南流至三十餘里穿小山南出謂之穿川郞慶尙道洛東江之源官置祭田天旱禱雨) 라고 한 것이 바로 이 곳이다.

 

지금부터 30여년전 마지막 기우제를 지냈는데 그때도 기우제를 지내자마자 비가 내린 바 있다. 용소위의 삼형제 폭포 가운데 바위 위에 소를 세워놓고 도끼로 머리를 쳐서 죽인 다음 목을 잘라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돌을 달아 용소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와서 바위에 묻은 피를 씻어 버리자 모여섰던 사람들이 두려워 하며 용소의 영험함에 탄복을 하였다.

 

그때 마침 농림부 차관이 장성읍에 시찰을 왔다가 기우제에 참석하였는데 초헌관은 당시 이희준 장성읍장이었고 아헌관에 농림부차관, 종헌관에 삼척군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당시 소나기는 장성읍 일원에만 내렸고 다른곳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옛날에는 한발(旱魃)이 들면 삼척부사가 올라와 기우제(용신제)를 지내는데 얼마나 영험한지 느릅령을 지날 때는 꼭 우장을 준비한다고 한다.

 

경상도의 관헌들도 가물면 기우제를 지내러 오는데 올 때는 우장(雨裝)을 준비해서 왔다고 한다.

 

퉁소

여울목과 마당소(廣場沼)사이에 위치한 깊은 소(沼)로 깊이 5~6m 넓이 4~5m 되는 암벽(岩壁)이 흡사 소여물통(구유)처럼 생겼는데 그리로 물이 흐른다. 
 물표면에 나타난 암벽의 높이가 5~6m이지 물속의 깊이는 알수 없다. 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통소(桶沼)인데 통소에는 지금도 1m가 넘는 뱀장어가 살고있고, 엄청나게 큰 메기도 살고 있다.통소의 물밑 한가운데에는 촛대바우라는 바위가 물속에 솟아 있는데 아주 가물면 나타나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40여년 전 어떤 여인이 비관자살을 하려고 통소에 뛰어 들었으나 촛대바우에 걸려 살아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몹시 가물어 촛대바우가 물위에 살짝 나왔는데 물에 뛰어든 여인이 본능적으로 촛대바우를 붙잡고 그 위에 올라앉아 울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구해 내었던 것이다.

 20여년 전모 신문사에서 통소에 철제(鐵製) 구름다리를 가로 놓았는데 장마에 유실되었다.20여년 전만해도 낙동강에는 은어떼가 이곳까지 올라왔고 통소에서 여울목으로 뛰어 오르는 은린옥척(銀隣玉尺)의 비약은 가히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자연학습장

황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석문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구문소라 한다. 구문소(求門沼)는 구무소의 한자 표기로 구무는 구멍·굴의 고어이다 또다른 말로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도 한다. 주위가 모두 석회암반으로 되었으며 높이 20~30여m, 넓이 30m정도로 동양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환선굴입구보다 몇배나 크다. 이 특이한 도강산맥(渡江山脈)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5천만년에서 3억년전 사이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형을 찾기 힘든 기이한 곳이다.

 

낙락장송, 기암절벽이 어울러져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고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 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바위, 용천 등으로 불리우는 구문팔경등이 있으며 특히 구문소일대의 천변 4km구간은 우리나라 하부고생대의 표준 층서를 보여주는 지질시대별 암상을 비교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이 지역 일대는 구문소 고환경 및 침식지형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곳에 구문소 자연학습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지질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도 약간의 호기심만 있다면 1시간동안 고생대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용우이산

남쪽 수지골로 올라 북쪽 승지미골로 하산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이치를 어긴 지형이 태백땅에 있다. 그것이 천년병화불입지지(千年兵禍不入之地)로 드는 뚜루내(穿川)인데, 산줄기가 도강을 하고 물이 석벽을 뚫어 수능천석(水能穿石)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까마득한 옛날 구문소(구멍소)의 석벽이 뚫리기 전 황지천에는 백룡이 살았었고, 철암천의 깊은 소에는 청룡이 살았었다. 이 두 마리 용은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석벽 위에서 용쟁하기를 거듭하였는데,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자 백룡이 꾀를 내어 싸우는 척하며 석벽 아래를 뚫어 공격하여 청룡을 물리치고 여의주를 물고 남쪽에 있는 산 위로 등공하였다 하여 그 이름을 용우이산(900.4m)이라 하였고, 석벽이 뚫린 구멍으로 낙동강 원류가 지나는 곳을 구멍소라 했다.

일천삼백 리 낙동강이 석벽을 휘저으며 35번 국도를 끼고 태백에서 경북땅에 막 발을 들이려는 어름에 강 건너에 수지골이 있다. 사방이 깎아세운 뼝대인데, 여기에 살던 매를 잡아 길들인 수진매가 있다고 하여 수지니골이 줄인 말로 수지골이 되었다.

▲ 가랑잎이 쌓여 발목을 덮는 터뒷골.

 

제법 경사가 있는 시멘트길을 따라 7~8분쯤 오르자 10여 호의 화전민들이 살던 합수터에는 농산물저장 저온창고 건물이 들어서있다. 창고 마당을 곧장 지나자 터뒷골, 살구나무골, 동수골, 고무덫골에서 발원한 물들이 합수하는 곳이다.

 

움푹 빠진 계곡에는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만 햇살이 들겠다. 어수선한 식수파이프를 따라 곧장 들어가 왼편 터뒷골로 방향을 잡아 오른다. 계곡에는  아름드리 일본잎갈나무들이 빼곡히 하늘을 찌르고 솟았다. 담쟁이덩굴, 다래나무, 등칡은 일본잎갈나무 등걸을 서리서리 감고 등천하고 있는 식생이 용우이산 이름에 걸맞다.

 

터뒷골을 따른 지 40분쯤 소요에 턱진 곳에서 휴식을 한다. 하늘의 바람소리와 태백산에서 훈련하는 제트기 엔진폭음이 시끄럽다. 휴식도 잠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연이은 일본잎갈나무 아래를 기어가듯 오른다. 옛날 화전을 일궈먹던 계단식 지형들이 계속 나타난다. 화전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땅에 모두 일본잎갈나무를 심었었다. 그때의 나무들이 지금 흉고직경 40cm쯤 자랐다.

땅이 콧등에 닿는 막바지 된비알을 올려치자 해발 835m쯤 되는 안부다. 서북쪽은 발아래 칼바람이 쏴아 몰아치는 뼝대다. 그 아래 동점아파트가 자리하고 시루처럼 생긴 소복산(821.9m)을 에도는 철암천과 423번 지방도가 실랑이질을 쳤다.


 

진달래, 소나무, 신갈나무,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굴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왼편 칼등능선을 따라간다. 서서히 오름짓하는 좁은 능선에는 낙엽이 덮여 미끄럽고 특히 오른편의 절벽을 조심해야겠다. 물박달나무가 있는 853m의 작은 봉과 891.9m의 바위봉우리를 지나자 깃대를 꽂아 놓았던 흔적이 있는 용우이산 정상이다(835m 안부에서 30분 소요).


 

정상 오른쪽 절벽을 뼝때깐이라 하여 이곳에서 돌이 구르면 마을에 초상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작은 돌 하나라도 구르게 해서는 안 되겠다. 조망은 북으로 철암천과 황지천이 합수하는 구문소 위로는 소복산, 우금산, 피난산, 두골산, 연화산이 있고, 그 뒤로는 태백산의 문수봉, 함백산이 잘 보인다. 동쪽은 삼방산이 건너편에 있고, 낙동정맥이 시야를 가렸다. 남쪽은 바위첩첩 연화봉이 힘이 있고, 서쪽도 박월산, 문암산, 멀리 백두대간이 웅숭깊다. 월간산 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고문


 

숙식 태백 시내에 도시락 주문 가능한 맛나분식(033-552-2806), 화영휴게소(033-581-8005), 연화식당(033-581-8897) 등이 있고, 동점 부근에 동점슈퍼(033-582-9886), 구문소식당(033-582-4581), 동영식당(033-581-4570), 건널목식당(033-581-2667) 등이 있다.
숙박은 태백 시내의 잉카모텔(033-582-7800), 동경장여관(033-552-6624)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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