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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홍성 결성면-96번지방도-고산사 한용운생가

by 구석구석 2008.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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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에서 40번국도를 타고 서부면직전에 좌측으로 만해생가-고산사-결성성지로 이어지는 2번군도

 

 

결성면 성곡리에 만해 한용운선사의 사상과 얼을 기리고 체험하는 ‘만해 체험관’ 
토굴새우젓으로 소문난 홍성군 광천읍 외곽도로 사거리에서 우회전, 천수만 방면으로 향해 가다보면 결성면 소재지가 나온다. 결성우체국 앞에 이르러 우측으로 심하게 굽은 도로를 따라가면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에 닿게 된다. 양옆으로 과수원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한가로운 길에다가 안내판도 잘 되어 있어, 생가를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초가집 두어 채가 보이는데 바로 한용운 생가이다.


만해체험관은 2천803㎡의 터에 지상 2층(연건평 1천90㎡) 규모로 3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층에 전시실, 어린이 체험실 등을, 2층에 세미나실, 조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는 만해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60여점의 유품과 작품 등이 전시되며 시청각 영상시설에서는 7종류의 영상도 상영된다. 세미나실과 창작실에서는 만해의 사상을 연구하고 창작활동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이밖에 어린이 체험실은 만해 흔적체험용 탁본 5종, 만해 관련 도서 300여권, 정보검색용 컴퓨터 4대, 퀴즈코너 등이 구비돼 어린이들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체험의 장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민족시비공원이 있다. 만해 한용운을 비롯한 민족시인 20명의 시와 어록을 자연석에 새겨 소나무 숲길을 따라 배치해 놓은 공간이다. 천천히 시를 읽으며 산길을 걷다보면 아담한 초가집 앞으로 길이 이어진다.

그곳이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이다.

 

성곡리 492 만해한용운선생 생가터 충청남도기념물 제75호 (1989년 12월 29일 지정) 관리소 041-642-6716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오른편에는 생가터 안내문, 왼편에는 초가로 지어진 관리사무소가 있다. 싸릿대 울타리로 복원된 만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어, 생전의 만해선생이 마치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듯한 감상에 빠져든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슬쩍 방 안을 기웃거리자니 만해의 영정과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쓸쓸히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마당을 둘러보면 작은 연못과 정자가 들어 서 있다. 오석에 새겨진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은 방문자들의 발걸음을 잠시 그 자리에 묶어둔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조국광복에 대한 치열한 시인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시편이다.

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어,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 저항 문학에 앞장섰는가 하면,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월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만해의 동상은 홍성읍내에서 보령으로 내려가는 21번 국도변에 있는데, 생가 방문 후 들러보길 권한다.

 


무량리 492 고산사 041-642-8254

고산사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전하지만 건물의 위치와 앞 마당에 있는 석탑들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절로 짐작된다.

보물 399호(1963.09.02) 대웅전은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절의 중심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대광보전(大光寶殿)’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지붕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가 주심포 양식의 초기 수법을 띠고 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과 천장과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을 혼합하여 꾸몄다. 불단 위에는 불상이 앉은 자리를 장식하기 위해 지붕 모형의 닫집을 정교하게 만들어 놓아 법당 안의 엄숙함을 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팔작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가진 아담한 건물로 그 구성방법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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