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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태안 동문리 백화산 상옥리

by 구석구석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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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1리 573 충청남도지정문화재123호 경이정

 

 경이정 / 태안군청

경이정은 태안읍 동문리 57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조(朝鮮朝)의 정종(定宗) 원년 (1399)에 창건된 누각형(樓閣形)의 목조 와즙 건물이다. 그 동안 수차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크기는 14평(47㎡)이다. 이 경이정은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어 현재 태안군이 관리하고 있다.

 백화산

 

문화재자료212호(75.2.5) 백화산성

백화산성은 태안읍 동문리에 자리한 백화산의 정상에 축조된 석성(石城)인데, 이는 고려(高麗)의 충렬왕(忠烈王) 13년(1287)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성의 크기는 둘레 619미터에 높이 3.3미터로 되어 있는데, 언제 폐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는 일부 지역에 성벽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백화산성 / 태안군청

성내에는 2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또한 봉수대(烽燧臺)가 설치되어 있어 동쪽으로는 서산의 북주산(北主山), 남쭉으로는 부석면의 도비산(島飛山)과 연락을 취했다. 현재 태을암의 동쪽 약 100미터 지점에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태안읍지(泰安邑誌)에 따르면, 축성한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퇴락(頹落)되어 있으나, 지세(地勢)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사람이 발붙이기 어려운 곳이라 했다. 이와 같이 백화산성을 험난한 지세를 잘 이용하여 축성하였으므로 외적(外敵)이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지(要塞地)였다.
그리고 이 백화산성은 소성현(蘇城縣) 때의 태안읍성(泰安邑城)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또한 태안군내 성곽중에서 제일 먼저 축성된 것이다.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태을암

창건연대(創建 年代)는 알려져 있지 않다. 태을암이란 명칭은 국조(國祖)인 단군영정(檀君 影幀)을 안치(安置)시켰던 태일전(太一殿)에서 연유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를 실증(實證)할 수 있는 문헌이 없으니 신빙성이 희박하다.

 

 태일전은 태안마애3불이 있는 위쪽 약 200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전하나 건물은 이미 없어지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또한 이 태을암의 대웅전(大雄殿)에 안치된 불상은 중앙에 석가여래(釋迦如來)·좌측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우측에 석가여래(소형)를 배열해 놓았는데, 이는 석가삼존(釋迦三尊)의 형식도 아니고 또한 협시불(脇侍佛)로 석가여래를 배열해 놓은 것도 매우 이례적(異例的)인 보기 드문 일이다. 이 태을암은 지난 1962년 10월 1일에 전통사찰(傳統寺刹)제40호로 등록되어 현재 관리 중에 있다. 
 

태안마애삼존불은 백화산(白畢山) 중턱에 세워진 태을암(太乙庵)의 동쪽 약 5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난 1966년 2월 28일 보물 제43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다 2004년 8월 31일 국보 307호로 지정되었다. 이 태안마애삼존불은 거암(巨岩)의 자연석에 좌우로 여래입상(如來立像)과 중앙에 보살입상(菩薩立像)을 조각한 것인데, 그 크기는 여래상이 각각 255.240센티미터이고, 중앙의 보살상은 181쎈티미터이다. 

 

 

이 마애삼존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노라면, 미소를 자아내며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두 어깨에 걸쳐진 옷자락은 두팔에 걸쳐 평행호선(平行弧線)으로 길게 주름져 있는데, 그 첨단(尖端)이 3각형으로 변형된 것은 중국 6조(中國六朝) 양식의 수법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서 이는 고대(古代)에 흔히 사용된 것이다.

이같은 조각 양상으로 미루어 보아 이 마애삼존불의 조각 연대를 6새기 초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애삼존불은 우리 나라 석불상의 시초이며, 따라서 이 고장이 우리나라 불교 조상미술(佛敎彫像美術)의 선구 지역(先驅地域)이고, 백제 조상술(百濟彫像術)의 발상지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이 마애삼존불은 우리나라 석굴사원(石窟寺院) 경영의 최초 작품이기도 하다.

백제(百濟)의 조상술이 여기서 진일보(進一步) 발전하여 서산군 운산면(瑞山郡 雪山面)에서 아름다운 예술의 극치(極致)라고 일컫는 국보(國寶) 제84호로 지정된 서산마애3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을 이룩하여 놓고, 다시 내륙(內陸) 깊숙히 파급되어 갔다.

 

동문4리 880-2번지 정가네해물손칼국수 041-675-8001~2

 

 

 정가네 박속 낙지탕 집은 음식에 이용하는 낙지를 태안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뻘낙지만 사용하여 삶아도 질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화학조미료 무첨가도 자랑삼을만 하다. 또한 칼국수는 국산 우리밀만을 사용하므로 방부제와 표백제가 들어가지 않는다.
* KBS1 6시 내고향('2005년), MBC생방송 전국시대('2006년), SBS생방송 잘먹고 잘사는법('2006년)방영
* (주)태평양화학, (주)대우자동차, 월간여행가이드 등 사내홍보책자에 태안군 맛집으로 추천된 바 있다.

언론이나 홍보책자에 소개내용이 과장되었을 시에는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상옥리 1154 흥주사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상량문(上樑文)의 내용을 살펴볼 때, 대략 고려말렵(高麗末葉)으로 추정(推定)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지난 1983년에 흥주사의 원통전(圓通殿)을 개축(改築)하기 위해 해체(解體)했을 때 상량보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가로55㎝,세로 81㎝크기의 창호지(窓戶紙)에 상량문이 쓰여져 있다.

 

 

 

재중수가 영락19년(1421)에 실시되었고, 3중수가 강희29년(1690)에 이루어 졌으니, 재중수에서 3중수까지 무려 269년이 지났으며, 4중수가 도광11년 (1831)이니, 3중수에서 4중수까지 141년, 그리고 5중수가 대한 광무10년(1906)에 실시되었으므로, 4중수에서 5중수(重修)까지 75년이 걸린 셈이다.

 

또한 지난 1983년에 개축하였으므로 이를 제6중수로 본다면, 5중수에서 6중수까지 모두 562년이 되므로 이를 평균해 보면 약 112년 간격으로 한 번씩 중수한 셈이다.

 

만세루는 건축의 형태를 보면 중도리 상량문 대공이 우담바라형 무늬(연꽃무늬)로 고려시대에 건축된 평야의 보통문 양식과 동일하며 건물 내부의 출모와 외부 소서 등이 조화 있게 조각되었으며 대량(보)이 웅장하여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큼. 이 건물은 1527년 (이조 중종 22년)에 건축하고 1691년 (숙종 17년)에 중창하였으며 1751년 (영조 27년 )에 3중창 1798년 (정조 22년)에 4중창 1957년 5중창 1994년에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충청남도지정문화재133호 흥주사 만세루/태안군청

 

흥주사3층석탑은 언제 조성(造成)된 것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흥주사의 창건 시기(創建時期)가 고려 말엽(高麗末葉)이므로, 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석탑은 상층 부분이 파손된 것을 다른 잡석(雜石)으로 무리하게 보완(補 完)하였기 때문에 미관상 볼품이 없다. 
탑은 지난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28호로 지정을 받아 현재 관리중에 있는데, 높이는 약 3미터로서 화강석(花崗石)으로 되어 있다. 

 

흥주사 신령한 천년의 은행나무(충남도기념물 제156호)

 

태안읍 상옥리의 백화산 천을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흥주사에 가보면 절 입구에 약 1000년 정도 되는 은행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옛날부터 풍파에 시달린 탓인지 바람부는 날이면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하며 아들이 없는 아낙들이 200일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신령의 나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아낙네들이 은행나무를 찾아왔는데 이곳에 기도를 드리려 올때에 아내가 먼저 나무를 발견하면 아들이 얻고 남편이 먼저 나무를 발견하면 딸을 얻는다고 전해온다.

최근에는 동쪽으로 뻗은 큰 가지에 남근모양의 곁가지가 돌출해 자라고 있는데 이 가지가 자손의 번성에 영험한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마을주민들이 수호신처럼 보호하고 있으며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는다는 전설에 따라 불교신도와 주민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잇다.

특히 결혼 10년이 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한 아낙네가 이 은행나무에 기도를 한 뒤 쌍둥이를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과 아낙네들이 몰려들고 있다. 

충청일보 김수경기자

  

 

일명 ‘남근(男根) 은행나무’로 불리는 흥주사 은행나무에서 이색제사가 열렸다.

 

21일 태안군에 따르면 지난 19일 이 은행나무가 있는 흥주사(興住寺)에서 신도,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은행나무에 막걸리 등을 올리며 주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매년 이 맘때 올려지는 이 제사는 은행나무가 건강해야 마을이 평안하고 후손이 번창한다는 주민들의 믿음에서 비롯됐다.

특히 이 은행나무에는 남근 모양의 가지가 자라고 있는데, “10여년 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아낙이 이 은행나무 남근가지 아래에서 기도를 한 뒤 쌍둥이를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있다.

흥주사 주지 현 우 스님은 “은행나무가 신물처럼 여겨지면서 호기심으로 연중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수령이 오래돼 관리에 더욱 신경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둘레 8.4m, 높이 22m의 이 은행나무는 현재 수령 9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지난 1982년 충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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