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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김포 356번지방도-유리박물관 수안산성

by 구석구석 2008.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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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생리973-2 유리박물관 02-1588-0511

356번 지방도 따라 가다 대곶사거리에서 상마리 방면으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왼쪽으로 유리박물관이 있다. 

 

김포유리박물관은 영국에서 활동하던 유리공예가 정문건 관장과 송희 작가가 타지생활을 끝내고 국내로 돌아와 정착한 창작공간이다.

 

 

 

 

기념물 제159호(1996.1.18) 수안산성

수안산은 대곶면의 주산으로서 대곶시내에서 상미리방향으로 들어가며 율생3리에 위치한 수안산성은 표고143m의 정상에 고성으로 축조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통진읍지에 의하면 부남20리에 있으며 성주위는 2리(800m), 성높이는 십척(약 3m)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봉수대가 있다하였다. 유래에 의하면 부족 국가가 있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며, 주변에는 원수골, 재상골, 승지골 등의 마을이름이 많이 있어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성의 정상부에서는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외부에 돌을 쌓고있는 방식으로 한강유역 통일신라의 산성양식과 비슷한 축조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수안산의 정상부에 쌓은 테뫼식의 석축산성인 이 성은, 동서 방향을 장축 방향으로 하는 장타원형이다.
성내에는 수안산 봉수가 있었다. 이 봉수는 남쪽으로는 김포현 백석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강화부 대모성산과 응하였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85m이며 성 내부의 면적은 약 1,000㎡ 정도이다. 성벽과 내부는 1985년까지 군부대가 주둔하여 많은 부분이 인위적으로 파괴된 상태이지만 남쪽 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성벽이 잘 남아 있는 부분을 보면 성벽의 높이는 2∼3m 정도이다. 성돌은 크기가 일정치 않은 장방형의 할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현재 10단 정도가 남아 있다.


성내의 건물 터는 현재 4곳이 남아 있는데 주변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성내에서 우물 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고, 수안산에 발원하는 하천이 3개나 되는 만큼 물의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기 조각은 단각고배류, 인화문토기 합, 완, 등이 주류를 이루며, 단경호와 시루 등도 발견된다. 기와는 격자문, 어골문, 선문, 복합문의 순으로 수습되는데 대체로 신라 ∼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발견되는 유물이나 쌓는 방법으로 보아 이 성은 신라 진흥왕 대 한강 하류지역을 장악하고 쌓은 성이라고 판단되며, 통일신라 시대까지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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