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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용인 역북동-채제공묘

by 구석구석 200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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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때의 재상 채제공의 묘소는 경기도 기념물 제17호로 역북동 낙은마을에 있다.
그의 묘역에는 봉분, 상석, 망주석이 있고, 석양(石羊)이 각각 한 쌍씩 배열되어 있다. 봉분앞에 묘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묘소에서 약 80cm 앞 쪽, 2.5평 남짓한 비가가 안에 어제 뢰문비가 있기 때문이다.

 

채제공(1720~1799)은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본광은 평강(平康)이다. 영조 19년(1743)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재임중 호서암행어사가 되어 균역과 감세의 실시에 대한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올렸고, [열성지장][국조보감]을 편찬하였다. 정조가 즉위 후 임금을 살해하려는 사건이 일어나자, 자진하여 창경궁의 수궁대장을 겸임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벽파의 음모를 적발하여 난국을 타파하였다.

 
채제공은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화성유수로 있으면서 수원성을 축성할 때 모든 설계 및 경영을 지휘하였던 경륜은 지금까지 높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천주교도들에 대하여 온건 정책을 유지하였는데, 그가 10여년간 재상으로 있는 동안에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확대되지 않았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있으며, 용주사에 있는 [부모은중경]경판은 그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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