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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파주 덕은리선사유적 월롱산 용상사

by 구석구석 200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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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48호 덕은리 선사유적

임진강의 지류인 문산천의 서안(西岸)에 이어진 높이 82m의 구릉위에 분포하고 있는 소규모 탁자형태(북방식·北方式)의 지석묘이다.

 
구릉의 하단부분에서 서북쪽으로 구릉 최고점에 이르기까지 능선마다 1∼2개씩의 소형 지석묘들이 흩어져 있으며 가장 꼭대기에서 서쪽으로 30m 되는 지점에 가장 큰 규모의 지석묘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남쪽사면에 걸쳐 약 10여기의 지석묘들이 분포하고 있어 이 유적의 중심지역을 이루고 있다. 약 20여기가 넘는 이곳의 지석묘들은 발견당시 대부분이 무너져 땅에 묻혀 있던 것을 학술조사 실시 이후 그 중 몇 기를 제 모습으로 복원하여 보존하게 되었다.

 
수도권 인근에서 발견된 지석묘군으로는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삼거리 유적 다음가는 큰 규모이다. 지석묘의 집단유적은 남쪽지역으로 갈수록 주로 바둑판 형태(남방식·南方式)의 지석묘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이곳은 모두가 북방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


1965년 봄에 국립박물관 조사단이 이곳 지석묘를 발굴하다가 청동기 시대의 대형 움집터(수혈식주거지·竪穴式住居址)를 발견했는데 그 규모가 동서길이 15.7m, 남북너비 3.7m, 깊이 40∼90㎝의 길쭉한 평면을 이루고 있었다. 벽면에는 붉게탄 흔적이 남아있으며 4면의 벽선을 따라 바닥에 기둥을 세웠던 흔적과 중앙에서 동편으로 치우친 곳에 2개의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다.


당시 이처럼 크고 완벽에 가까운 수혈식주거지가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움집내부에서는 무문토기의 한 형식으로 분류되는 공열토기(孔列土器) 파편과 간돌화살촉(마제석촉·磨製石鏃), 간돌검(마제석검·磨製石劍)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과 함께 출토된 숯조각(목탄편·木炭片)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이 주거지의 연대는 기원전 7세기(B.P 2,950 ±195)유적으로 밝혀졌다. 

[자료 - 경기관광공사]

 

 

월롱면  덕은리에 높이 229m인 “월롱산”이 있는데 정상까지 차량이 올라갈수 있는 장점이 있어 수많은 시산제를 치르는 명당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월롱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용이하고,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30분 이내면 충분하다. 작은 산이라고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평야지대에 위치한 산이기에 올라가 보면 그 어떤 산에서 느낄수 있는 감동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일부 흔적만 남아 있지만 ‘월롱산성’은 임진강과 한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축조한 옛 산성으로 시야가 막힌 곳 없이 탁 트여 멀리까지 아주 잘 보이기 때문에 자연지형을 이용한 뛰어난 요새로서 평가받고 있다.

 

 

▲ 월롱산의 북쪽 부분은 절 벽이다

 

경기도박물관의 정밀 학술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성에서 주로 회청색격자문토기가 출토되었으며, 백제의 전성기인 3~4세기 근초고왕 때 백제의 주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곽의 길이는 약 1,315m이고 면적은 33,232㎡에 달한다. 전형적인 퇴뫼식 산성이며 월롱산 꼭대기의 내성과 동쪽 능선을 따라 자리 잡은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4년 5월 6일 경기도기념물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덕은리 산137-1 전통사찰 제88호 용상사(龍床寺)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 한다. 고려 성종 12년(993)과 현종 1년(1010)에 이어 1018년에 소배압이 거느린 1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 오게 되자 현종은 민복차림으로 이 곳 월롱산까지 피신하게 되었고 다행히 강감찬이 귀주에서 승리하면서 나라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절을 짓게 하고는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덕은화주가 세종 27년(1445)에 사찰을 중건 하였으며 이때 소불석상을 조성해 봉안 하였다.

 
임진왜란때에는 승병의 도량이 되었는데 왜군의 시체가 근처 골짜기에 가득하여 한때는 ‘무덤골’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하며 용상사고지를 현 행정구역명을 따라 ‘덕은리사지’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 터에서 약간 아래쪽에 터를 닦아 해방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게 되었다. 1967년에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면서 서쪽에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소속은 대한불교 일승종이다.

 
정통십년명석불좌상은 높이 61cm에 폭이 50cm 정도인 소형 불좌상 이다. 석불의 전면에는 회칠이 되어 있어 세부적인 특징을 자세히 관찰하기는 어려우나 목이 짧고 직사각형의 모난 얼굴에 육계가 두툼하다. 바닥에는 “正統十年乙丑五月○○德隱”이 새겨져 있어 덕은에 의해 용상사가 중창될 때에 같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 조성연대는 1445년으로 조선초기의 불상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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