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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고양 고양동 백제관터

by 구석구석 201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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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기도 고양시 벽제(현 高陽洞)에 있었던 역관(驛館)인 벽제관의 터.

 

조선시대에 중국으로 가는 관서로(의주로, 연행로)에 있던 10여개 역관 가운데 하나로, 사적 144호로 지정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관서이다. 1960년 경까지 객관문이 남아 있었으나 무너지고 현재는 객관의 윤곽과 터만 남아 있다.

고양 벽제관터 발굴조사에서 원형을 찾았다. 2021.8.5 /고양시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명나라군을 대파한 장소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절단이 숙박 휴식하였고 특히 벽제관은 때로 임금이 재릉 친제시에 숙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는 역관에 머물러 휴식하는 공용 숙박시설이라 하겠다. 더욱이 이들 역관은 역과 원, 주막 등을 동반하고 있어서 교통 통신의 편의를 최대한도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벽제관은 한성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이 역관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관복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가는 것이 정해진 관례법이었다. 
 

본래 고양시의 고읍치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지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이전되기 이전에는 남별관으로 불리었다. 이전 후 초기의 당시 규모는 면적이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이후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때 본관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그러나 1960년 경까지도 객관문은 남아 있었으나 퇴락해 무너져버려 현재에는 객사의 윤곽과 터, 그리고 7척 간격으로 원좌주초석의 장대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면적 4,175 ㎡  / 사적 제144호 (1965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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