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37번 국지도→인월면 소재지→60번 국지도→일성콘도진입로를 지나 대정삼거리→ 마천에서 오른쪽으로 삼정산방향으로 들어온다. 삼정리 영원사를지나 화개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지리산자연휴양림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있으며 고속버스는 하루에 여섯 번 운행한다. 마지막 차편은 심야버스로 자정에 출발한다. 무박2일이거나 1박 3일의 여행을 할 작정이라면 편리할 것 같다. 단, 심야할증요금을 받는다.
함양까지는 고속인데 함양을 벗어나서는 완행으로 둔갑한다. 인월에서 한 번 쉬고, 지리산 실상사 앞에서 한 번 쉬고, 마천에서 쉰다. 최종목적지는 지리산 백무동. 마천에서 내릴 때 기사아저씨는 택시를 타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알았다고, 고맙다고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서울에서 3시간 30분소요되었다.
지리산자연휴양림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서울로 돌아가는 차편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버스시간표가 붙어 있는 작은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간이매표소였다. 나이든 슈퍼의 쥔아저씨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표가 없을 수 있으므로 사야한다고 알려준다.
지리산자연휴양림을 향해서 힘차게 출발. 조금 걷다보니 표지판이 나온다. 자연휴양림까지 7km. 그 정도라면 아무리 오르막길이라고 하더라도 2시간이면 넉넉잡고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한다.
거창소방서 산악구조대를 지나 천천히 걷다보니 퇴락한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담 위로 보이는 화림재(華林齋)라는 현판이 눈길을 끈다. 파란색 기와는 니스 칠이라도 한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지붕만 살아서 퍼덕이는 것 같다. 대문의 기와 위에는 잡풀이 나 있다. 호기심이 생긴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에도 잡풀이 가득하다. 사람의 흔적이 끊긴 지 오래라는 느낌이 온다.
화림재/유혜준
보통 현판은 건물의 가운데에 걸려 있는데 이 집은 한쪽 끝에 붙어 있다. 마당에 서서 집을 둘러보려니 대낮인데도 스산한 한기가 느껴진다.
마천중학교를 지나 선유정과 문바위, 표지판이 서 있는 곳을 지난다. 선유정의 유래를 읽어보니 선녀와 나무꾼이야기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벗어놓은 옷을 나무꾼이 숨겼고, 둘은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단다. 하지만 날개옷을 다시 찾은 선녀는 아이들과 나무꾼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남겨진 아이들과 나무꾼은 선녀를 그리워하다가 그만 바위가 되었단다. 선녀는 비정한 어미였나 보다. 자식들을 버리고 혼자 하늘나라로 돌아가 버렸으니. 하늘나라에서 바위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선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원사루트 안내도가 보인다. 만든 지 오래인 듯 지도가 빛바래 있다. 빨치산들이 토벌대의 추적을 피해 은신해 있던 비밀루트가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설명 양 옆에 기관총과 완전군장을 한 군인이 그려져 있다.
삼정음정마을 표지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에 삼정음정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나무로 깎은 작은 장승들이 그 옆에 같이 있다. 장승들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음정마을 쪽이 지리산자연휴양림 가는 길이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단다.
고속버스 기사아저씨는 오르막길이라 걷기 힘들다고 했지만 별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걷고 있다.
오르막길 위로 '반갑습니다. 지리산자연휴양림입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인다.
관리사무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쓰레기봉지 2개와 함양군 안내지도, 휴양림 안내도를 건네받으니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자동차를 타고 힘 안들이고 온 것보다 뿌듯하다.
지리산자연휴양림에는 '출렁다리'가 3개 있다. 휴양림 안내도에서 출렁다리가 표시된 것을 봤을 때 호기심이 생겼다. 어째서 출렁다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숲속의집-토끼봉
지리산자연휴양림에서 내가 예약한 곳은 숲속의 집 <토끼봉>이었다. 단독 통나무집인데 집집이 지리산 봉우리 이름이 붙여져 있다. 천왕봉도 있고, 형제봉도 있고, 촛대봉도 있다. 특별히 토끼봉에 끌려서 예약한 것은 아니고, 그냥 빈집을 찾다 보니 토끼봉이 걸렸다.
토끼봉은 4인실로 단칸방에 부엌이 있고, 화장실이 따로 달려 있다. 다락방도 있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다락방에 올라갈 수 있는데 문이 너무 무거워 그것을 밀치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얼굴만 삐죽이 내밀고 내부만 대충 둘러보았다.
휴양림에 있는 숲속의 집은 대부분 시설이 비슷하다. 고급스럽지 않으나, 내부가 나무로 되어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싱크대는 좀 낡았더라. 하긴 1996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어차피 하룻밤만 묵어갈 것이니 그런 것에는 그다지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그릇이나 냄비, 전기밥솥도 죄다 낡긴 했으나 여행길에 조리기구를 안 챙겨가는 것이 어딘가. 휴양림 이용가격이 저렴한 것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한 요인이 되기는 한다.
그런데 휴양림에 가면 꼭 있는 게 있다. 텔레비전. 아,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이 없는 휴양림에 딱 한번 간 적이 있다. 남해편백휴양림이다. 상당히 오래전에 갔기에 지금은 텔레비전을 들여놨을지도 모르겠다. 저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비치물품에 텔레비전 그림이 들어 있네. 없어도 괜찮은데….
그때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밤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숲속의 집 문 앞에 나와 앉아 별구경을 했다. 별이 어찌나 총총하던지 정말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한여름인데도 밤바람이 서늘해 담요를 덮고 앉아 하늘의 별을 보고 또 봤던 기억이 지금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휴양림까지 와서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 건 솔직히 '불상사'가 아닐까.
이런 통나무집 한 채를 별장으로 갖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론 욕심이다. 이렇게 예약을 해서 하룻밤 편하게 묵어가는 것으로 족하지 않나. 그리고 또 가고 싶으면 예약해서 하룻밤 지내고….
짐을 내려놓고 집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출렁다리가 너무 궁금했다. 길이는 6~7미터가 되려나. 아니면 조금 더 긴가? 계곡을 건너갈 수 있게 나무를 이어서 만든 다리였다. 다리에 들어서니 흔들거린다. 가운데로 갈수록 심하게 흔들린다. 출렁거린다. 아하, 이래서 출렁다리구나.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 매달린 다리였으나 다리가 흔들리니 왈칵 무서워진다. 그 와중에 색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아이디어가 참 좋다.
일찌감치 저녁을 해먹고 다시 휴양림 산책에 나섰다. 오랜만에 별구경을 나선 것이다. 하지만 별이 그다지 총총하지 않아 실망했다. 휴양림 내에 조명을 너무 밝게 밝힌 때문일까? 별은 흐릿했다. 그래도 서울보다는 많이 보였다.
아, 저기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을 보니 서울에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않고 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집을 떠나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나 보다.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편안하게 자고, 다음날 아침 휴양림의 산책로를 거닐어 보기로 했다. 휴양림의 산책로는 느릿한 걸음으로 걷기에 적당하다. 더불어 삼림욕도 할 수 있다.
산림욕을 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침엽수를 제외한 활엽수들은 지난가을에 잎을 버린 뒤 새 잎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씩 물이 오르고 있을 뿐이다.
숲 해설가가 있으면 숲과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함께 산책하면 좋은데 이 또한 계절이 일러 아직 운영하지 않았다. 5월부터 11월까지 한단다. 사람의 흔적이 드문 산길을 걷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발밑에서 지난가을에 쌓인 낙엽들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지 아니면 겨울 끝이라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의외로 산책로가 험하다. 가벼운 산책으로 생각했는데 이건 거의 등산 수준이다. 그렇다고 힘들어서 못 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기운을 써야 했다.
삼정리에서 올라오는 길에 '고로쇠 수액'을 파는 집을 자주 봤는데 여기에서 수액을 채취하는가 보다. 링거 같은 관을 꽂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검은 관으로 연결되고, 또 연결된 나무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사람들이 나무를 착취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제, 관리사무소에서 고로쇠 수액을 얻어 마셨을 때는 잘도 마셔놓고, 딴소리 한다. 대여섯 개의 관을 연결한 큰 나무를 보고 사진을 찍어두려고 했는데 그만 사진기 배터리가 나가 버렸다.
숲 속에서 엄청난 아름드리 나무를 보았다. 양팔을 벌려 나무를 껴안으니 절반도 채 끌어안지 못한다. 나무의 몸체에 얼굴을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다. 나무가 뭐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편안하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야영을 할 수 있는 캠핑용 데크가 상당히 많았다. 숲속의 집이 예약이 다 찼다면 야영을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취사장이나 화장실 시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산책로 탐방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시간 반가량 걸렸다. 내려올 때 또 출렁다리를 건넜다. 출렁출렁 출렁대는 출렁다리….
마천에서 지리산자연휴양림까지 걸어서 온 길을 다시 걸어갈 예정이었다. 올 때는 오르막길이었으니 갈 때는 내리막길이 더 많으리라.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짐을 꾸리고 집을 비워줘야 하는 1시 정각에 토끼봉을 나섰다. 아쉽다. 다시 이 집에 묵을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한번 다녀온 휴양림을 다시 간 적이 없으니까. 떠나올 때는 다시 한번 꼭 와야지, 마음먹지만 다음에 휴양림에 갈 기회가 생기면 가보지 않은 곳을 택하게 된다. 새로운 곳이 꼭 더 좋은 게 아닌 줄 알면서도 가지 않은 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지리산자연휴양림에서 다시 마천으로 타박타박 걷기 시작한다. 햇볕이 참 따뜻하다. 걷기 좋은 날이다. 봄이 산 아래서 산 위로 달려가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얼른 봄이 와라. 그래야, 산에 들에 꽃이 피지.
자료 - ⓒ 2008 OhmyNews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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