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경호강변에 웬 기품 있는 한옥 한 채가 동떨어져 그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가 했더니 바로 그것이 읍청정이라는 것이다. 산청에 내려올 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 하긴 산청하면 지리산만 떠올리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었겠는가.
안동 권씨 33세손 권두희 선생이 지은 정자로, 조상의 얼을 받들고 고을의 번영과 화목을 기원하며 각지의 유학자와 학문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지었다.
산청의 읍청정/이희동
안내판에는 각지의 ‘유학자’라고 표현했지만, 신사상이 물밀처럼 들어오던 당시 결국 유학자란 각 지방의 토호세력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전국적인 독립운동이 벌어질 만큼 아직 완벽하게 조선을 접수하지 못한 일제는 이들을 통해 전국 구석구석 그들의 세력을 뻗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밤낮없이 술판이 벌어졌을 이 읍청정을 보면서 읍소할 곳을 찾았을 것이며, 나라 잃은 이들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읍청정 이락문/이희동
이런 생각과 함께 읍청정 위에 올라 주위 경관을 바라보니 그 풍경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읍청정 밑으로 휘감아 도는 경호강과 그 옆으로 병풍같이 서 있는 절벽에 많은 이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듯 했다. 특히 저 너머 산에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기거했다는 전설을 듣고 나니 기분이 더 착잡해졌다. 아마도 100년 전의 선인들은 300년 전의 전설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최근 래프팅 관광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산청 경호강. 지자체에서는 안 그래도 이 읍청정에 대해서 이전이나 정비를 고려하고 있다던데, 그 일환으로서 읍청정이 지역사회에서 가졌던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세력들 간의 권력구조가 좀 더 명확하게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 2008 OhmyNews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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