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 현내면의 통일전망대는 한때 분단의 상징이었다.
이곳에 서면 멀리 손에 잡힐 듯 체하봉·집선봉·세존봉·옥녀봉 등 금강산 봉우리에서 출발, 억겁의 세월을 관통해 아름다운 해금강을 만들며 동해 바다 수평선 아래로 모슴을 감추는 외금강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과 10년 전까지 민간인 신분으로 갈 수 있는 최북단의 땅이었으나 이젠 육로 통행이 가능해진 금강산에 그 자리를 내줬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작은 언덕으로 높이는 해발 80m에 불과하지만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경은 그 높이를 무색하게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영랑호를 지나 고성군을 남북으로 잇는 7번 국도를 따라 전망대 가는 길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오른쪽으로는 푸른빛이 아름다운 동해 바다가 숨바꼭질하고, 왼쪽으로는 흰 눈을 잔뜩 인 채 설악산과 금강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허리가 멋진 설경을 연출해 지루함을 달래 준다.
속초를 떠나 고성에 접어들면 송지호가 가장 먼저 반긴다. 오랜 세월 퇴적물이 쌓이면서 동해 바다로부터 떨어져 나와 호수가 된 송지호는 지금 겨울 손님으로 북적인다. 해뜰녘 또는 해질녘 호수에는 흰뺨검둥오리·고라니 등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오르면서 장관을 이룬다.
1997년 완공한 송지호 자연연출관 전망대에 오르면 호수의 전경이 잘 보인다.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 언덕 위에 세워진 송호정을 중심으로 신선봉·죽변산·제공산·순방산 등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에둘러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자연연출관 뒤로 돌아가면 호숫가로 이어지는 작은 산책로가 있다. 그 끝에는 새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관망대가 있다. 때마침 수백 마리의 흰뺨검둥오리들이 한가롭게 물 위를 떠다니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니 놈들은 오히려 그 거리의 몇 배만큼이나 멀찍이 달아나고 만다.
자신들의 영역에 무단 침입한 인간에 대한 서운함의 표시인 듯해 머쓱한 마음에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7번 국도 대신 항구 끝에서 대진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절벽을 깎아 수면과 비슷한 높이에 길을 낸 까닭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파도소리를 들으며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안도로는 작은 언덕을 넘어 화진포로 연결된다. 화진포는 한국전쟁 이전에는 김일성, 이후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이 별장을 뒀을 만큼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화진포해수욕장 바로 북쪽 초도항 앞바다에는 금구도라 불리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한 금구도는 옛 문헌(고구려 연대기)을 바탕으로 고구려 광개토대왕릉이란 주장이 제기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실제 섬에는 성을 축조한 듯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진항은 거진과 더불어 명태 산지다. 살짝 들어간 해안선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선과 이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하얀 등대가 어우러져 전형적 어촌의 풍경을 보여 준다.
고성 8경 으뜸 통일전망대
대진항에서 10여㎞ 더 북쪽으로 가면 군인들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명파리 초소에 이른다. 민간인 통제선으로 통일전망대 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초소의 군인은 사전에 통일안보공원에서 신고 후 구입한 입장권(3000원)을 제시하자 통행증을 내준다.
포항에서 출발한 7번 국도는 초소를 지나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는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갈라진다. 최근 육로 관광을 위해 마련한 출입사무소를 거치면 금강산으로 연결되고, 예전 사용하던 국도는 통일전망대까지만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100여 개에 이르는 계단을 이용해 가쁜 숨을 고르며 전망대에 다다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다. 오른쪽으로는 망망대해인데다 정면으로도 적당한 공간이 펼쳐지고, 그 뒤로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오는 해금강 등 외금강의 능선이 바다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고성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힐 만하다.
신록을 모두 걷고 흰 눈으로 채색한 외금강 자락은 맑은 날씨와 어울려 눈부실 만큼 아름답다. 최근 공사를 마친 도로와 철도의 모습도 선명하다. 남북 초소와 관측소가 있다는 안내판의 설명을 보지 않는다면 더없이 한가하고 평화스러운 바닷가 풍경으로 착각을 일을킬 지경이다.
전망대에 서면 바닷가에 서 있는 작은 섬에 가장 먼저 시선이 고정된다. 송도라 불리는 이 섬이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 동쪽 땅끝이다. 표고 50m쯤 되는 작은 섬은 바위 틈마다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채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그 뒤로 구선봉 아래 감호라 불리는 작은 석호가 있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의 무대가 된 곳이다.
그 오른쪽으로는 말무리반도·만물상·현종암·부처바위·사공바위 등이 이어지는 해금강이고,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서 있는 남북한 초소를 시작으로 능선을 따라 외금강 일출봉까지 바라볼 수 있다.
자료 - 일간스포츠 박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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