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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신풍리 어멍아방잔치마을 오문복

by 구석구석 200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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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농촌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어멍아방잔치마을'

 

농촌 체험관광이 주목받고 있다. 도시민은 휴식과 활력 충전을 할 수 있어 좋고, 농어민들은 돈을 벌 수 있어 더욱 좋다. 제주도 서귀포시 신풍리에 자리 잡은 ‘어멍아방잔치마을’은 외부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닿을 것 같지 않은 곳이지만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탁 트인 쪽빛바다와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랑말이 뛰놀고 난대림이 빼곡한 곳, 성읍민속마을과 이웃한 곳이다.
‘어멍아방’이란 제주 사투리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뜻. 지난 2002년 농진청에서 지정하는 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된 뒤 만든 신풍리(新豊里)의 브랜드 이름이다. 제주의 전통문화와 농·어업을 관광과 연계시킨 그린투어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제주도에서 사라져가는 전통혼례의 원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신풍리는 제주도의 고(高), 양(梁), 부(夫)씨의 조상이 이곳에서 세 명의 공주와 혼인을 올렸다는 전설이 서린 혼인지에 인접해 있다. 부모님의 은혼식, 금혼식을 기념할 때 제주 전통혼례를 재현하는 이벤트를 이곳에서 만들 수 있다.

어망아방 마을 주민은 220여가구 570여명이며, 농촌체험관광에는 50여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대개의 농촌체험 마을이 기껏해야 20가구를 넘지 못하는 것에 비추어 대규모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주민의 사회적 이동이 적고 지역 폐쇄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어딘지 모르게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특히 어멍아방 마을은 제주관광에서 도시민이 바라는 틈새를 공략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제주권 관광은 ‘겉에서 보는 제주’만을 보여주지만 농촌관광 체험을 통해 ‘마을 사람과 호흡을 같이 하며 제주사람의 생활상을 경험한다’는 특징이 있다. 관광유형 중 제일 문화성이 높은 형태다. 마을사람과 대화하며 사투리를 배우고, 아침에 포구에 가서 방금 잡은 신선한 물고기와 한치로 비빔밥과 회를 같이 먹는 풍경은 신풍리만의 모습이다.
토종 제주사람들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농산품을 이용해 주민들과 함께 직접 만들어 보고, 맛도 보는 음식체험과정이 포함돼 있다. 양념이 적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 음식에서 나오는 담백함이 그만이다.

 

 신풍리 마을 신태범(41) 사무장은 오름과 쪽빛바다 등 천혜의 자연자원이 도시사람들을 부르는 자원이라는 것이다. 팜스테이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신 사무장은 육지사람들이 체험해 보지 못한 제주만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남제주군 농업기술센터의 기술지원을 받아 어멍아방 결혼 체험, 고망(구멍)낚시, 집줄놓기, 바닷물 손두부 만들기, 오름등반, 감귤수확, 감귤가공(즙, 잼), 염색체험, 사투리 게임 등을 만들어냈다. 제주도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년간 5천~1만명이 다녀가는 마을로 이끌어냈다.

어멍아방마을은 매년 계절별로 체험프로그램을 추가하면서 재방문율을 높였다. 10번을 다녀간 가족이 있을 정도다. 농특산물 직거래도 덩달아 증가했다. 성인 단체 방문객이 찾아오면 마을에서 생산하는 감귤을 비롯해 콩, 감자, 당근, 야생고사리, 성게, 소라 전복 등 모든 농특산품이 매물로 나온다.
농외소득이 가구당 300~400만원 정도지만 많은 농가는 1천만원에 이른다. 체험관광으로 소득이 늘어난 것보다 주민들은 마을이 생기를 되찾은 것에 더 기뻐하고 있다. 도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컴퓨터를 하게 됐고, 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도 즐기게 됐다. 충북일보 기획취재팀

 

한학자 오문복의 신풍리 서재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어귀를 지키고 서있는 당당한 풍채의 기와집. 살림채인 이 기와집을 오른편에 두고 살짝 뒤로 돌아가면 오도카니 앉아있는 작은 집이 한 채 보인다. 

 

잔디 마당은 그리 넓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사람의 부지런한 손길을 탄 듯 잡풀 하나 없어 마치 순정한 사람의 해맑은 얼굴을 보는 듯하다. 댓돌에 놓인 검정 고무신 한 켤레, 기둥에 기대어 놓은 몇 가지 조촐한 농기구, 막 캐어 널어놓은 붉은 빛 나는 고구마 한 소쿠리가 그 마당을 지키고 있다. 집채에 비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자리한 연못 가까이 선 두 그루의 키 낮은 나무에선 의외로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원숙함이 풍긴다.  

 

이 곳이 한학자요 향토사학자 소농(素農) 오문복 선생의 서재 경독재(耕讀齋)이다. 사전적으로만 풀이하자면 밭을 가는 틈틈이 글을 읽는 집이라는 뜻이다. 곰곰이 뜻을 되짚어보면 밭을 갈 듯 공부를 하고, 농사를 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농사나 공부나 본디 서로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속뜻이 읽혀진다.

 

오롯이 한문 번역과 후학 양성과 향토사학 연구에 바쳐진 素農 선생의 한평생이 드러난 서재 이름인지라 집은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한 치도 그르지 않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영주십경><근재북학일기><혁암산고><영주풍아><탐라시선><한시선> 등 수많은 번·편역서와 창작 한시집 <백록담>의 산실 경독재의 나이는 자그마치 일백이십구 살. 1879년에 상량한 집이니 素農 선생보다 갑절에 가까운 나이를 먹은 것이다.  서귀포신문 2008.12 프리랜서 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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