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원리 258-9 한국등잔박물관 031-334-0797 http://www.deungjan.or.kr
등잔은 과거 전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수 천년 동안 우리 생활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해왔던 문화의 소산이자 역사의 증인이다. 분당 신시가지에서 수원과 광주를 연결하는 43번 국도가 이어지는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등잔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어두운 밤 불을 밝혔던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딱딱한 지식보다는 느낌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이곳에는, 고대로부터 전기 불이 보급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불을 밝히는데 사용했던 5백여 점의 등잔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9월 28일이면 개관 7주년을 맞는 등잔박물관은 김동휘 관장이 지난 40년간 의료인으로 봉직해 오면서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30여 년간 수집해온 등잔류를 집대성한 곳이다.
대지 7백80평에, 연건평 2백80평인 박물관 건물의 형태는 김 관장이 자라나서 뿌리를 내렸던 수원의 성곽을 본 따서, 흙으로 구운 벽돌을 직접 주문하여 성을 쌓아 올리듯 건축한 것이다.
은입사 '무쇠촛대'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등잔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면, 박물관이란 곳이 생각처럼 그리 딱딱하고 어려운 곳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언뜻 보아 할머니가 마당에서 붉은 고추를 널고 있고, 처마에는 옥수수가 한철 매달려 있는 시골집 마당에 들어선 기분도 든다.
정문을 들어서면 서민생활에 쓰였던 뒤주와 절구․화로․맷돌․다듬이 돌 같은 생활용품들과 먼저 만나게 된다. 우리네 사랑방에서 쓰이던 이런 물품들 사이에서 등잔은 눈에 띨 듯 말듯 다소곳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층 전시실은 모두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생활 속의 등잔’이라는 공간은 테마 그대로, 실제 생활에서 등잔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쓰여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생활공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18세기까지에 이르는 조상들의 부엌 모습도 재현하고 있다.
이밖에 안방과 마루방, 그리고 중류 양반 남자주인이 거처했던 사랑방에는, 각 방마다 3~4개씩의 등잔이, 놓여져 있던 모습들 그대로 재현돼 있어, 옛날의 생활 모습들을 자연스레 보고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에 전시된 유품들에는 어렵고 잡다한 일체의 설명이 붙어있지 않아 그저 편안하게 감상만 하면 된다.
상류사회에서 사용되던 '좌등'
2층 전시실은 '역사속의 등잔'이라는 테마아래 갖가지 등기(燈器)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등잔 하면 보통 단순하게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등잔만을 말하지만, 등기는 등잔을 얹어 사용하는 등경·등가,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 걸어놓는 괘등, 바닥에 놓는 좌등과 같이 쓰임새에 따라 종류도 많이 있다.
기름을 담는 등잔의 종류로는 토기는 물론, 도기·자기·옥석으로 된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2층 한켠에 자리한 토기등잔은 신라시대의 귀한 등잔으로 눈여겨볼 만 하다.
서민들 사이에서 '광명주'라고 불리는 등경과 함께 등잔을 올려놓도록 만들어진 등가 역시 정교하고 아름답다. 촛대 중에는 고려시대에 귀하게 쓰이던 청동촛대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촛대에는 나비나 부채 모양의 광배가 달려 있어 바람도 막고 은은하게 빛을 조절하기도 하는 등 옛사람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역사속의 등잔' 전시실 내부
3층은 전통 휴식공간으로 꾸며져 있으며, 김 관장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 지하공간 '상우당'은 무대공연과 미술전시, 심포지엄 등 다양한 문화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이 들어선 나머지 약 6백여 평은 푸른 초원광장으로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과 여러 가지 조형물들로 장식된 소공원으로 자리잡아 관람객들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껏 쉴 수 있는 쾌적한 휴식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조상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곳 등잔박물관에서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옛님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자. 그러면 아마도 넉넉한 숨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하다. 잔잔한 추억과 감동에 호젓이 젖는 것은 오직 보는 이들의 몫이다.
한지호(자동차여행가)
031-334-0797 / 오전 10시∼오후 5시 / 월요일~수요일휴관 / 대인 3천5백원, 소인 1천5백원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판교 TG를 벗어나 분당 신시가지를 관통, 열병합발전소 앞을 지난다. 능골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백미터 정도 가다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조그만 영모교를 건너면, 오솔길로 약 5백 미터 지점.
능원리264 유프로네 031-339-9180
고기구이집의 관건은 품질이 뛰어난 최상등품 고기에 있다. 유프로네는 전라도 지방에서 직송으로 들여오는 최상품 한우만을 고집하는 집이라 한다. 빨간 살코기에 실처럼 펼쳐진 꽃등심은 '마블'의 느낌 그대로다. 고기는 제쳐두더라도 뒷산 약수로 지은 영양밥은 그 자체만으로 보양식이 된다. 놋그릇에 담긴 반찬도 정갈하다. 두 그릇이 기본인 물김치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총각김치와 열무김치, 정성스럽게 다가오는 볶음 김치, 머리와 내장을 발라내 한 번 튀긴 뒤 다시 조린 멸치볶음 등은 밑반찬이란 표현보다 '밥도둑'이 어울린다. 1인분에 꽃등심은 3만7000원, 안창살.갈빗살.특꽃살은 각각 3만2000원, 생등심.차돌박이는 2만8000원. 등잔박물관 초입에 위치한다.
능원3리 호박등불마을 031-334-4883
호박등불마을은 용인시청을 중심으로 약 25km떨어진 용인 수지지구 및 분당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전원형 농촌마을로, 비교적 넉넉한 생활속에 살아가고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다른 농촌마을에 비해, 농토가 넓지 않아 특용작물이나 신지식 농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마을의 미래가 밝은 곳이다. 또한 수도권 중소도시와 인접해 있으며 교통의 요충지로 주위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능원리 118-1 유형문화재 제9호 충렬서원
동방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숭된 포은정몽주(鄭夢周)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조선 선조 9년(1576) 이계·이지를 비롯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와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처음에는 이 서원을 정몽주와 조광조의 묘소 중간 지역인 지금의 죽전리에 세웠었다. 서원 이름도 「죽전서원(竹田書院)」이었다.
임진왜란때 서원 건물이 회진되어 선조 38년(1605)에 이정구가 경기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현감 정종선, 이시윤 등과 함께 논의하여 정몽주의 묘소 아래에 중건하였다. 3년여의 공사 끝에 사우 3칸, 동 서재 각 2칸, 문루 3칸을 지었다. 문루 윗층은 강당이며, 아래는 문주방과 고사 등을 갖추었다. 이 때 조광조의 위패는 심곡서원으로 옮겨 배향 하였다. 중창과 함께 「충렬」이라 사액되었으며, 설곡 정보와 죽창 이시직을 추가 배향 하였다.
숙종 32년(1706)에 다시 후손 정제두·정찬조를 비롯한 여러 유림의 공의로 옛터 서쪽 가까운 곳에 이건하였다. 그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다. 1911년에 유림에서 사우(祠宇)를 중건하였고, 1956년에 강당을 복원하였으며, 1972년 전체를 보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6칸의 사우, 내신문 외신문, 동서 협문,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8칸의 강당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을 세워 신성시하였다. 사우에는 정몽주를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보와 이시직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충렬서원의 건물 구조는 단순한 모습을 띠고 있다. 경사지에 사당과 강당을 중심으로 재실이나 장경각, 교직사 등이 배제된 변형된 구조이다. 특히 충렬서원은 일정한 중심 축이 없어 외삼문에 들어서면 강당과 사당이 동시에 보인다. 한때 용인의 대학자 도암 이재선생이 여러 유림과 학문을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나, 그 이후 교육공간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5변 5두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호(1972.5.4) 정몽주묘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등의 여러 벼슬에 올랐다.
5부 학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일본에 가서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성계의 세력이 날로 커지면서 정도전 등이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끝까지 고려 왕실을 지키려다가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선생이 순절한 후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경상북도 영일과 영천) 중 한곳인 영천으로 이장할 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앞의 명정(銘旌: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의 묘소에 떨어져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묘비에는 고려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쓰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묘역 입구에는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능원리374 소우리산장 031-334-0632
레이크사이드CC 정문 옆에서 15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 믿고 찾을 수 있는 한우고기 전문점 소우리 산장. 음식 맛과 분위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소우리 산장은 용인시 모현면에 있는 정산 자락 초입에 있으면서, 12개의 방갈로로 각각 독립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방갈로 또한 합판이나 각목 등으로 대충 지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구청에 정식 가옥으로 등록된 원목과 통나무 주택이다. 방갈로에 앉아 있으면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 심심이 저절로 편안해 진다.
소우리산장의 고기 맛은 발길을 끊지 않는 무수한 15년 단골들이 말해주듯 믿고 찾을 수 있다.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한우 암소 +2급만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 집은 계절에 맞는 숙성기간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고기 맛을 더욱 높이고 있다. 숙성을 위해 진공시설을 따로 갖추고 있을 만큼, 이 집에서는 숙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는 도살 당시 놀란 조직들이 제자리를 찾지 않으면 한우 본래의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우 서너 마리 분량의 고기가 숙성실에서 항상 재워져 있다. 한편 소우리산장의 된장찌개 또한 고기만큼 유명하다. 이는 멸치를 주원료로 24시간 따로 끓이는 육수 맛을 다른 곳에서는 여간해서는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은 후 참숯불에 올려놓고 먹는 뚝배기 된장찌개 맛이 일품이다.
능원리376 옛터 031-339-6630
용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인근의 옛터는 기묘한 곳이다. 이름 그래도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하면, 한편으론 이국의 정취가 풍기기도 한다. 또 넓게 트인 열린 공간이 있는 가하면 움집과도 같은 골방이 함께 공존하기도 한다.
중앙에 참나무 페치카가 있는 열린 공간에서는 대학 사은회나 각종 동호회 모임을 밤새며 할 수 있다. 또 안쪽에 있는 골방에는 조용한 접대나 회동을 원하는 고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옛터의 영업시간은 철저하게 고객의 입장에 맞춰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선 영업시간이 예약손님의 사정에 따라 정해진다. 손님의 요구가 있으면 새벽이건 밤이건 그 시간에 맞춰 문을 여는 것은 기본이다. 메뉴 또한 메뉴판에 없는 것이라도 구해서 제공한다는 게 이 집의 방침이다. 특히 자주 찾는 외국 손님들에게는 그 나라 입맛에 맞는 소스를 제공함으로써 재방문율이 아주 높다.
한편 음식점 바로 옆에 2000여 평의 밭을 현지인을 고용해 직접 경작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채소나 양념류는 이 밭에서 나오고 있다. 주요 메뉴로는 최고급 한우 고기인 설화, 꽃등심, 생등심 등으로 가격대는 비싼 편이다. 이밖에 영양밥, 도토리묵밥, 보리냉면, 한정식, 소고기버섯탕 등 식사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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