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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고양 행주동 덕양산 행주산성 장어마을 서화촌 먹거리촌

by 구석구석 202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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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자유로를 이용해 문산 방향으로 달리다 행주대교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덕양산이다. 산의 정상에 무슨 탑 같은 것이 솟아 있는 평범한 산이지만 조금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유난히 숲이 울창한 것을 알 수 있다. 여름 한철 동안은 울창한 숲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삼림욕을 겸한 산행에 나서는 등산코스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위한 나들이 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그 울창한 숲 속에 그 이름난 행주산성이 있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과 선조들이 왜군을 상대로 싸워 크게 이겼던 행주대첩으로 유명하다.  ⓒ 경기도청

서울 근교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자칫 잊혀져 왔던 곳. 화사한 햇살아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행주산성 만한 곳도 드물다. 고양시 행주산성관리사무소는 최근 1978년 포장된 콘크리트 관람로를 일반 아스콘과 컬러 무늬 콘크리트 공법을 혼용, 딱딱한 사적지의 이미지를 벗고 가볍게 산책할 수 있도록 관람로를 새롭게 단장하였다.

 

더욱이 관람로 바닥에는 당시 사용하였던 다양한 무기 그림을 삽입하여 자연스럽게 교육의 장이 되도록 조성하였고 새롭게 제작한 팜플렛에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무기명칭을 일목요연하게 구성하여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행주산성관리사무소에서는 산성의 특성상 경사면이 급하여 그동안 오르지 못하였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에게는 평일 예약 신청자에 한하여 시범적으로 관용차를 이용한 맞춤형 관람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이번 관람로 개선 공사로 휠체어는 물론 유모차를 동반한 관람도 한결 쉬워졌다는 평가를 받은 가운데 관리사무소 측은 매년 감소하고 있는 관람객이 금년도를 정점으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상에 우뚝 선 '행주대첩비' 

 

행주산성 하면 한강가의 덕양산 정상부근에 있는 토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왜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당시 전라도순찰사이던 권율장군이 한성을 탈환하기 위해 충청, 전라, 경상도의 근왕병과 승병을 포함하여 2,300여 명을 이끌고 행주산성에 주둔하였다.

 

한성의 왜군 3만 명이 행주산성을 포위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격을 해왔으나 이를 모두 물리치고 결국 왜군은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였다. 이 싸움을 행주대첩이라고 한다.

행주대첩은 당시 조선군의 최신 무기인 신기전과 신기총통 등의 화약무기가 사용된 전투로 마지막 전투에서는 아낙네들이 치마를 짧게 잘라 덧 치마를 해 입고 치마폭에 돌을 날라 싸움을 도와 승리할 수 있었기에 이후 짧은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권율장군은 이 싸움의 전공을 인정받아 도원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이 싸움을 기념하기 위해 덕양산 정상에 대첩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이후 우리정부에서는 70년대에 주변을 정비하고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덕양전, 대첩비각과 대첩문 등을 건립하였다.

 

덕양정에서 보는 방화대교

권율장군의 사당인 '충장사' 

 

산성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권율장군의 동상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동상 오른쪽 언덕아래에는 활터를 겸한 충훈정이 서 있고, 장군 동상을 지나 산책로를 오르면 중간에 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권율장군의 사당인 충장사가 있고, 왼쪽 길은 지금도 남아있는 토성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또한 중간 길은 행주대첩기념관을 지나 대첩비로 바로 오르는 길이다. 보통은 충장사를 들러 참배를 하고 되돌아 나와 산성의 정상인 대첩비에 올랐다가 교육관 앞으로 해서 토성길로 내려오는 순환로를 이용한다. 이 코스는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꽤 좋은 산책로이기도 하다.   

 

전사청은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 바로 앞 숲속에 있다. 전사청은 종묘,서원, 향교 등에서 향사 전날 미리 제사상을 진설하는 건물로서, 평소에는 제기와 제례 용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제향을 드리는 공간에 가까이 있어서 제기고라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제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충장사의 전사청은 중건비 바로 앞 숲속에 있으며 평상시에는 출입할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행주산성에는 대첩비가 3개 있다. 가장 오래된 첫째는 1603년에 세워진 최초의 비로 정상에 높이 솟아 있다. 

▲행주산성 충장사에 앞에 있는 중건비는 조선후기에 새로 세운 행주대첩비이다. 헌종 11년에 세워진 이 비석에는 종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놓으면서 규모를 훨씬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문의 뒤에는 추기를 다시 새겨 넣었다. 이 추기는 조인영이 짓고 이유원이 썼다.


중건비의 내용은 기존의 행주대첩비 구비의 기록에서 누락된 권율장군의 역사적 행적과 행주 기공사 중창기를 기록하였다. 본래 중건비는 행주산성의 서쪽 행주서원 내에 있었으나 1970년 충장사가 기공사를 대신하여 행주산성 내에 세워지자 충장사 앞으로 옮겨졌다. 비의 윗부분에는 도원수 권공 행주대첩비명이란 전자가 새겨져 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충장사에서 울창한 솔숲사이로 조금만 오르면 오른쪽에 부지 108,097평,연건평 1,500 ㎡,전시실 130 ㎡의 행주대첩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활과, 총, 대포 등 33종의 무기들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고 기록화 3폭 (행주, 이치, 독산성) 대첩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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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덕양정이 서 있다. 이곳에 서면 뒤로는 행주대첩비가 파란 하늘사이로 높다랗게 솟아있고, 아래로 한강이 발에 채일 듯 가깝게 와 닿는다. 대첩비 왼쪽에는 교육관으로 사용되는 충의정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큰 규모로 서 있고, 옆으로 돌아나가면 토성길을 따라 충장사 앞의 갈림길로 내려가게 된다. 

△ 행주 산성 정상 부근에 오래된 살구나무 한그루가 있다. 행주의 행주는 행주대첩으로 인하여 행주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곳에 살구나무가 많아서 살구행자를 써서 행주였다는 설도 있다.

 

행주산서위의 살구나무는 이곳이 살구나무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처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살구나무를 배경으로 내려다 보이는 한강의 전망과 행주대첩비가 잘 어울린다.

 

서울근교에 있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멀어져 버린 곳 중 하나가 행주산성이다. 아마도 좀더 멀리 위치하고 있었다면 권율장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서울에서 서쪽 김포 가기 직전의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행주산성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지척의 거리다. 산성 바로 아래로 인천공항 가는 제2 성산대교가 한강을 가로질러 놓여있고, 아래로는 행주대교가 또 그렇게 서 있다.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 길을 따라 산성꼭대기에 서면 날씨가 화창한 날은 위로 여의도 63빌딩과 그 너머로 반포일대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아래로는 김포평야의 넓은 들이 함께 펼쳐진다. 행주산성은 얼핏 규모가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바퀴를 돌아보는데 1시간이 더 걸릴 정도로 제법 크고 곳곳에 쉼터와 산책길이 잘 짜여져 있다. 

/ 글 한지호(자동차여행가)

 

문화재자료 제71호 행주서원지

 

 행주서원은 원래 기공사로 불리던 곳이다. 본 서원은 행주산성의 서쪽 200m 지점 한강가에 세워져 있는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의 큰 공을 세운 권율장군의 충절을 기려 장군을 제향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 헌종(憲宗)때 왕이 고양 서삼릉에 거동할 때마다 임진왜란 당시 공적이 높은 권률 장군의 제향을 지낼 건물이 없음을 아타깝게 여겨 특별히 왕명을 내려 헌종 7년(1841) 10월에 행주대첩이 있던 산성의 아래쪽 한강가에 사당(祠堂)을 짓도록 하고 이름을 기공사로 하였던 것이다. 기공사는 그후 행주서원(幸州書院)으로 이름을 고치고서 권률 장군을 제향한는 사당을 두고 또한 이곳에서 후학들의 교육을 담당케 되었는데 읍지(邑誌)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는 약 20명 정도의 원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행주산성에서 아름다운 밤 풍경을 선사하는 '문화재 야행'을 진행한다. 2021.9.27 /고양시 제공

현재는 가로 18m, 세로 20m의 담장 터가 남아 있고 그 안 뒷편으로는 약간 높은 대지에 사당이 있던 자리가 남아 있는데 건물터는 정면 8.4m, 측면 6.5m이며 주춧돌 6개가 남아 있다. 주춧돌 중 아래로는 장대석의 석축이 남아 있으며, 석축 아래로 강당으로 쓰이던 건물이 남아 있다. 건물은 정면 5간측면 1간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1고주(高柱) 2량(梁)의 간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강당의 앞에는 좁은 석축 위에 세운 대문과 좌우 행각이 있고 그 앞으로 한강을 향하여 삼문(三門)이 세워져 있다.

 

한편 1970년 주추만 남아 있는 기공사를 대신하여 충장사(忠莊祠)라 개칭하여 권률 장군의 사당을 행주산성내에 이전 복원하였다. 본래 행주서원 내에는 조선조 후기 신헌(申櫶)이 쓴 예서체(隸書體)의 현판(懸板)이 걸려 있었다. 한편 이곳에서는 매년 권율 도원수 추모제례가 치루어지고 있다.  경기관광공사 

행주산성과 행주커뮤니티센터에서 수문장 교대식 및 취타대 공연(둘째, 넷째주 토요일 오전 11시, 오후 1시)을 관람하거나, 행주치마 만들기·쪽염색 프로그램(둘째, 넷째주 토요일 2시)을 할 수 있다. 출처 : 투어코리아 - No.1 여행·축제 뉴스(http://www.tournews21.com)

 

행주산성먹거리촌 / 서화촌먹거리촌 / 장어마을

 

인근의 경치가 아름다운 한강이 흐르고 있어 행주산성을 끼고 한강을 내려다보며 여러 가지 먹거리를 음미해볼 수 있다. 이곳에는 1970년대에 주로 장어구이와 매운탕이 주 메뉴였으나 지금은 수십 곳의 음식점들이 다양한 음식을 먹거리로 자랑하고 있다.

 

행주내동과 외동에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그 후, 86년 아시안게임을 전후로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오늘날 무려 100여 곳의 식당, 카페들이 성업중이다. 예로부터 행주산성에 가까운 쪽으로 서화촌이라는 마을이 있어 서화촌 먹거리촌 또는 행주산성 먹거리촌으로 흔히 부르고 있다.

장어마을 / 한국관광공사

특히 이곳의 장어구이는 고양시는 물론 전국적으로 매우 유명한데 숯불에 구워진 장어는 이곳에서 키워진 깨끗한 상품으로 유명하다. 주말에 행주산성을 둘러본 많은 관광객이 이곳 행주산성 부근의 먹거리촌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인천 국제 공항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앞으로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행주외동213-8 일미정 031-974-0123 

 

1965년 문을 연 "일미정"은 행주대교가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30년 내력을 쌓은 유서깊은 장어집이다. 더욱이 30여곳 민물고기집들 중 장어구이로는 원조집임을 자부한다.

 

하얀 벽체에 까만 지붕이 눈길을 끄는 단층집이 별장처럼 아담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장어요리 한 가지로 흔치 않은 30년 내력만큼이나 음식 내용과 상차림이 각별하다.

 

우선 장어에 바르는 장이 특유한 맛을 자랑하는데 북어, 쇠고기의 양지, 장어뼈와 머리, 다시마를 12시간 정도 푹 고아 걸러낸 육수에 양파, 고추, 우어, 마늘 등 13가지의 양념과 7가지의 한약재까지 넣어 무려 20가지가 넘는 재료가 들어가고, 다시 정종과 물엿, 고추장 등을 넣고 8시간 정도를 다린다. 이처럼 수십가지가 들어가는 양념과 약재의 비율이 가장 큰 맛비결이다.

 

장어의 크기는 30cm 안팎의 다소 작은 것들을 선별해 쓰고, 구울때도 양념장을 계속 10번이상 발라야 색깔과 맛이 제대로 난다고 한다. 그래서 별도로 마련된 주방에서 참숯불을 피워놓고 주방장이 직접구워 불판에 얹혀 나온다. 무엇보다 정갈함이 돋보이는 장어정식은 8가지의 찬과 된장찌개가 곁들여져 마치 한정식차림을 연상케 할 정도다.

 

행주외동103-11 강마루 031-971-5152

 

행주산성입구 식당촌에 위치한 강마루는 전통 한옥 구조로 된 운치있는 고기집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고, 야외에는 넓은 주차장과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다.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어 연인, 가족모임, 회식 등 각종 모임에 적당하다. 갈비와 장어를 주로 취급하며, 양념장에 하루 정도 숙성시킨 양념갈비도 맛이 있다. 이 집은 오랫동안 토속주를 연구해온 원재순옹(89)께서 직접 빚는 청강주(淸江酒)주도 유명하다. 옥수수를 쪄서 누룩과 함께 보름 이상 발효, 숙성시킨 후 다시 옥수수죽을 쑤어 항아리에 넣고 약 30일간 숙성시킨다고 하는데, 한 번 먹어볼 만하다.

 

행주내동 104-4 지리산할매집 031)972-6736

오전 10시~오후 10시 / 설·추석 당일휴무 / 주차가능

 

어탕국수 전문점이다. ‘어탕국수’는 민물고기와 우거지를 얼큰하게 끓인 국물에 소면을 넣은 것으로 경남 함양의 향토음식이다. ‘지리산 할매집’은 경남 함양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순분(80) 할머니가 딸, 며느리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인기메뉴인 ‘어탕국수’(5000원)는 미꾸라지, 잉어, 붕어, 메기 등을 3~4시간 고아 고운 채로 뼈를 거른 후 산초 등으로 비린내를 제거했다. 국수 대신 밥을 말아먹고 싶은 사람은 ‘어탕’(6000원)을 선택하면 된다. 반찬으로는 두부, 배추김치, 파김치, 나물, 가지볶음 등이 나온다. 다양한 반찬을 원하면 ‘영광굴비 밥상’(6000원)을 주문하면 된다. 전, 두부부침, 나물, 장아찌, 된장찌개 등 10여가지 반찬과 고소한 굴비가 상에 올려진다.

 

이곳에는 8~12인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세 개 있고 20명 이상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큰방이 하나 있다. 김순분 할머니의 며느리 최정연씨는 “함양까지 내려가지 않고 서울 근교에서 어탕국수를 맛볼 수 있어서인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민물고기를 갈면 텁텁한 맛이 나는데, 오래 곤 후 채로 뼈를 걸러 감칠맛이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 주간조선 2009.9 서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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