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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고양 용두동 서오릉

by 구석구석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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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면적 55만 3,616평으로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의 왕실 족분군인 서오릉은 서울 구산동사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인근 주민들이 산책코스로도 즐겨 찾는 곳이다.

 

조선 6백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왕과 왕비의 언덕 / 02-359-0090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서오릉(西五陵)은 조선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5개의 능을 말하며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제8대 예종과 제19대 숙종 임금 등 조선조 2명의 임금이 묻혀있는 곳으로 예종의 능침이 창릉(昌陵)이고 숙종의 능침이 명릉(明陵)이다.

 

문화재청

서오릉은 또 조선 제7대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묻힌 곳(敬陵)으로 서오릉은 564년 전 세조가 죽은 아들을 위해 능지를 직접 돌아보고 조성하면서 시작된 부정(父情)의 산물이다. 이후 창릉, 익릉 등 다른 능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경릉

의경세자는 1455년 세조 1년에 세자로 책봉된 후 20세에 병으로 죽고 세조의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의경 세자를 덕종으로 추존되었고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가 의경 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된 소혜왕후가 덕종과 함께 경릉에 있다.

 

경릉의 능침

■ 추존왕 덕종(德宗)과 소혜왕후가 잠든 ‘경릉’



익릉에서 내려와 순창원을 지나면 추존왕 덕종(德宗)과 소혜왕후가 잠든 경릉이 있다. 추존이란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세상을 떠난 후에 왕의 호칭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덕종은 왕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의경세자의 시호를 받았으나, 둘째 아들인 자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경릉은 동원이강(東原異岡)의 형식이다. 능침의 배치는 왕이 우측에, 왕비가 좌측에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경릉은 왼편에 왕릉이, 오른편에 왕비릉이 있다. 경릉의 왕비릉은 능제가 왕릉의 형식을 갖춘데 비하여 왕릉은 상대적으로 간소하다. 이는 덕종이 세자에 있을 때 죽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혜왕후릉은 남편이 덕종으로 추존된 뒤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세상을 떠나 왕릉의 예를 따랐다.

 

이외에 예종의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창릉),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翼陵),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능(弘陵)이 있다.

 

능 안으로 들어가 걷다가 처음 보는 능이 명릉이다. 사실 서오릉의 8개 능과 묘 중 가장 중요한 능이 46년간 조선을 통치한 숙종이 잠든 곳인 명릉이 아닌가 쉽다. 명릉의 오른쪽 편에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있고 서쪽 언덕에 인원왕후의 능이 조성돼 있다.

 

명릉 / 문화재청

■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씨,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명릉’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씨와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조영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다른 편 언덕에 단릉 형식으로 모셔져 동원이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명릉은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명릉에서 가장 낮은 서열의 인원왕후의 능이 가장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명릉은 숙종의 명에 의해 능역에 드는 인력과 경비를 절감하여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 치수도 실물 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한 제도로 조영되었다.

 

명릉

명릉을 나오면 마주하는 것이 재실(齋室)인데 재실은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했다. 재실을 지나니 순창원이 나오고 더 가면 경릉이다.

 

장희빈묘인 대빈묘

경릉에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가다 왼쪽 편에 장희빈 묘가 있다.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여인의 묘는 죽어서도 숙종과 함께 하지 못하고 외따로 떨어져 있어 쓸쓸해 보였다. 장희빈을 몹시도 총애하던 숙종은 질투가 심했던 장희빈을 내쫓고 무수리 최씨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인, 서인의 붕당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결국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게 된다.

 

왕과 왕비가 묻혀있는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개 능 외에 순창원(順昌園), 수경원(綏慶園), 그리고 대빈묘(大嬪墓)가 서오릉 안에 같이 있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친척 무덤이며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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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의 능이다.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태어나 1704년 13세에 숙종의 둘째 아들 연잉군(뒤에 영조)과 혼례를 치렀다.



정성왕후는 조선 역대 왕비 중에서 중전 재임을 가장 오래 하였으나 영조 사이에서 소생을 낳지 못하였다. 두 후궁에서 낳은 효장세자와 사도세자가 왕세자로 책봉될 때 양자로 입적하기도 하였으며, 영조와 사도세자가 대립하게 되자 그 중심에 서서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1757년(영조 33)에 창덕궁 관리합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의 능 오른쪽에 자리를 비워두고 능의 석물 등을 쌍릉의 형식에 맞추어 배치하였다.



그러나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즉위하면서, 영조의 능 자리에 대한 대신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효종의 구 영릉(寧陵) 자리로 최종 결정되어 원릉이라는 이름으로 영조의 능을 조성하였다. 이로 인해 홍릉의 오른쪽 자리는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홍릉 / 문화재청

■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



창릉은 조선 8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서오릉에서 왕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능으로,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예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안순왕후의 능이다.



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예종이 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되어, 세조가 돌아가자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는 청원부원군 한백륜의 딸이다. 1460년 세자빈으로 책봉된 한명회의 딸이 이듬해 병사하자 2년 뒤 세자빈으로 간택되었고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소생으로 효성이 지극했던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를 두었고, 1498년 12월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창릉

 

창릉 / 문화재청

창릉은 대빈묘와 홍릉을 지나 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제3기 신도시의 이름이 된 창릉은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으로 창릉 밖 울타리 너머 멀리 아파트들이 보인다. 창릉을 둘러본 후 시간이 남으면 서어나무길과 소나무길을 산책하면 좋다. 

 

재실

순창원은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세자빈인 공회빈의 묘이고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다.

 

■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익릉’



서오릉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익릉은 제19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仁敬王后, 1661~1680)의 능이다. 홍살문에서 시작되는 참도가 큰 계단식으로 돼 있어 이채롭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金萬基)의 딸이다. 열 살 때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숙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된다. 1680년(숙종 6) 천연두를 앓아 발병 8일 만에 경덕궁 회상전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이때 왕비의 나이 겨우 스무 살, 어느새 세 딸을 두었으나 두 공주는 벌써 어미의 죽음을 앞질렀으니 인경왕후의 운명도 참으로 기구했다.



익릉의 봉분은 병풍석은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다른 왕릉과는 조금 다르게 석주가 아닌 동자석 상단부에 십이간지를 글자로 새겨 놓았다. 정자각은 능침 언덕 아래에 있다. 현종의 숭릉 정자각과 같이 당시 유행하던 익랑이 딸려 있다.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의 향어로는 직선으로 경사가 졌으며, 중간에 계단을 두어 지형에 맞춰 설치하였다.

 

익릉 / 문화재청

자료 - 고양일보 박공식기자, 경기뉴스포털 이준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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