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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35번국도 삼릉~냉골~금오산

by 구석구석 200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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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부고속도로 경주나들목에서 나오면 보이는 산이 남산이며, 세 번째 신호등 못 미처 우회전하면 35번국도로 나선다. 경주시내에서는 오릉을 지나, 35번국도를 따라 1.3km 거리의 왼쪽에는 포석정이 있으며, 2.2km 지점의 오른쪽에 서남산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면 된다. 주차비 1일 승용차 2,000원. 배리 삼존불만 들를 때는 삼불사 주차장으로 바로 들어가면 된다. 주차비 무료.


 

 

안강에서 경주로 가는 길은 68번 지방도가 지름길이다. 시내로 들어와 다시 오늘 답사지인 배리 삼릉으로 간다. 먼저 경애왕릉을 보고 삼릉으로 해서 금오산에 오르기로 코스를 정한다.

경애왕(924-927)은 실질적인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그는 신라 55대왕으로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 상대국 왕이 한 나라의 수도를 유린할 정도이니 신라는 이미 나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신라 제55대 경애왕릉/이상기

 

경애왕릉에서 한 삼사백 미터쯤 가면 삼릉이 자리하고 있다. 삼릉은 세 개의 능이 모여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 묻힌 세 임금은 아달라 이사금, 신덕왕, 경명왕이다. 이들은 모두 박씨 성을 가진 임금들로 아달라 이사금은 신라 초의 왕이고, 신덕왕과 경명왕은 신라 말의 왕이다.

 

 

 아달라왕 등 세 왕이 모셔진 삼릉과 뒤로 보이는 금오산/이상기

 

아달라 이사금(154-184)은 신라 8대 왕으로 백제와 갈등을 겪으면서 영토를 확장하려고 노력하였다. 즉위한 지 3년 되는 156년 지금의 하늘재인 계립령을 열었고, 5년 되는 158년 죽령을 열었다. 이것은 신라의 영토를 소백산맥 지역까지 넓혔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20년 정월에 왜국의 여왕이 사신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과도 교류한 것으로 보인다.


신덕왕(913-917)은 헌강왕의 사위로 왕이 되었다. 효공왕이 자식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즉위할 수 있었고, 궁예와 견훤 등과 삼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였다. 경명왕(917-924)은 신덕왕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 왕건이 세운 고려와 가까이 지냈다. 후당과 교류하였으며, 후백제와는 갈등관계에 있었다. 신라 말에 내치와 외치를 가장 잘한 왕이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경주 남산엔 신라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다. 남산은 서울의 북한산과 같이 경주의 진산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10㎞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해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어 야트막하면서도 큰 산이다.

 

냉골을 따라 금오산으로 향한다. 냉골은 한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고, 삼릉이 있는 계곡이라고 해서 삼릉골이라고도 부른다. 한 10여 분 오르니 석조여래좌상이 나타난다. 1964년 6월 동국대학교 답사팀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가사의 조각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특히 왼쪽 어깨로부터 무릎까지 흘러내린 매듭끈과 가슴 부위 매듭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목이 없는 석조여래좌상 / 이상기

 

이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 왼손은 정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들어 올려 가슴에 대고 있다.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는 조각이 정교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다시 5~6분 위로 올라가면 유명한 선각육존불을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바위에 선으로 새겨 만든 여섯 분의 부처님이다.

 

 

선각육존불의 왼쪽면인 아미타삼존불과 선각마애불 / 이상기

 

전체적으로 한 덩어리의 바위인데 왼쪽 부분이 앞으로 조금 나와 있고, 오른쪽 부분이 조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약간 층이 진 양 면에 각각 세 분씩 부처님을 새겨 넣었다. 왼쪽에 있는 부처님이 아미타삼존이고, 오른쪽에 있는 부처님이 석가삼존이라고 한다. 특히 왼쪽의 세 분 부처님 조각이 선명한데, 본존은 연꽃 대좌 위에 서 있고 좌우의 보살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아미타부처님께 연꽃을 바치고 있다.


이에 비해 오른쪽 석가삼존상은 선각이 약해 아미타삼존만큼 선명치는 않다. 또 바탕이 되는 바위에 균열이 생겨 도상을 확인하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고 좌우에 두 보살이 서 있는 모습은 확인할 수 있다. 방울 세 개를 꿰어 만든 방울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이 쉽지는 않다.

 

여기서 한 10여 분 올라가면 선각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이것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옛날에 짝은 사진을 보니 얼굴은 낮게 돋을새김 했고 옷 주름은 선으로 처리했다.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금은 미련해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더 친근감이 든다.

 

 

석조여래좌상과 복원중인 현장/이상기

 

선각마애불에서 다시 20여 분 이상을 조금 가파르게 오르면 석불좌상(보물 제666호)을 만날 수 있다. 이 부처님은 석조여래좌상이라고도 하는데 현재 문화재청에서 조사와 복원을 하기 위해 관람을 막고 있다. 차광막 속에 들어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한 2년 전 이 불상을 보았을 때 다 좋은데 부처님 상호가 영 마음에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복원했는데 그것이 영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뒤가 더 아름다운 부처, 그래서 이번에 복원작업에 들어간 것 같다.

 

상선암 가는 길  

석불좌상에서 다시 금오산 정상 방향으로 15분 정도 가니 상선암(上禪庵)이 나온다. 옛날과는 달리 나무계단이 있어 절에 오르기가 훨씬 쉬워졌다. 이 절의 대웅전에서 우리가 올라온 방향을 내려다보니 골짜기를 돌아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다시 눈을 들어 금오산 쪽을 바라보니 절 뒤로 상사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이 절을 돌아가다 보니 한쪽에 누운 바위에 선각보살상이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물결처럼 흘러내린 옷주름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허리 부분에 끈으로 묶은 방울도 몇 개 보인다.

 

▲ 등산객들이 경주 남산에 올라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을 보고 있다. 경주 남산은 유적산행의 대표적인 장소로 꼽힌다. / 경주남산연구소 제공

 

이 보살상을 지나 왼쪽으로 산길을 조금 오르면 큰 바위 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이 부처님의 공식 명칭은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바둑바위로 알려진 큰 암반 남쪽 면을 파내서 광배를 만들고, 그 위에 입체형의 마애불을 조각했다. 머리와 몸통 부분은 양각했고, 팔과 손 그리고 옷 주름은 음각했다. 얼굴 표정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데, 앞에서 보면 근엄하고 옆에서 보면 인자하다.


이 불상은 금오산 정상 쪽을 바라보며 있고, 앞으로의 전망이 탁 틔어서인지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뭔가 기도를 한다. 이곳은 남산 전체에서 소위 기도발이 가장 잘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상선암과 마애불 뒤의 바위군: 상사바위와 바둑바위 / 이상기

 

남산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이곳 냉골에는 16기의 불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가 보물과 지방문화재 급이어서 문화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편이다. 또 이들 부처의 모양이나 형태가 모두 달라 보는 사람에게도 큰 즐거움을 준다. 우리의 불교 문화재들은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인 즐거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냉골은 남산의 골짜기 중 답사 일번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 비교적 가파른 길을 오르면 상사바위에 닿는다. 상사바위는 금오산을 오르는 마지막 능선 상에 있어 이곳에 오르면 방금 지나온 마애불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산 서쪽의 들판과 산을 아주 잘 조망할 수 있다. 한때 수운 최제우 선생이 이곳 상사바위에 머물면서 수도를 했다고도 한다. 조선 초 금오산 남쪽에 김시습 선생이 머물렀다면, 조선 후기에는 최제우 선생이 금오산 북쪽에 머물렀다. 인물이 산을 아는 건지 아니면 산이 인물을 불러들이는 건지?


상사바위에 오르면 산행의 방향이 동쪽에서 남쪽으로 바뀐다. 이곳에서 금오산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흙으로 이루어진 평탄한 길을 약 20분 정도 걸으면 금오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번 남산 산행에서 벌서 두 번째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약수골로 오른 첫 번째에 비해 코스가 길고 문화재가 많아 훨씬 더 재미있다.

 

 

용장사지 가기 전에 오른 대연화대/이상기

 

금오산 정상에서 우리는 남쪽의 용장사지를 거쳐 용장골로 하산할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깐 남산 순환도로를 지나야 한다. 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가면 용장사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잠깐 대연화대에 들른다. 대연화대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연꽃처럼 삐죽삐죽 솟아올라 있는 바위들로 남산 동쪽으로의 조망이 좋은 곳이다.


가까이 남산리 들판과 통일전 지역이 내려다 보이고, 왼쪽으로 조금 멀리 경주 시내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조금 고개를 들면 남산과 토함산 사이에 누런색 들판이 보이고, 토함산 아래 자리 잡은 불국사 지역이 보인다. 경주 사람들이 남쪽으로 갈 때는 남산의 좌우를 거쳐 가야 하는데, 동쪽으로 가면 울산으로, 서쪽으로 가면 언양을 거쳐 양산으로 가게 된다.

 

 

용장사지3층석탑

 

남산 순환도로에서 용장사지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흙길이 사라지고 다시 바위길이 시작된다. 바위들이 많으면 암릉미는 있지만 답사에는 조금 부담이 된다. 한 오분 정도 걸으니 능선의 정상에 서게 된다. 앞을 바라보니 은적골 건너편으로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494m)이 보이고, 발 아래로 용장사지 3층석탑(보물 제186호)이 보인다. 이 탑을 보려면 왼쪽으로 바위를 돌아 내려가야 한다.


바위를 내려가니 비교적 가파른 경사지 위에 천년 풍상을 견뎌온 3층석탑이 우뚝 솟아있다.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래 기단을 삼고 그 위에 1층의 기단을 세운 다음 3층의 탑을 쌓아올렸다. 층마다 몸돌 위에 지붕돌이 얹힌 형태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한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1층의 몸돌의 높이가 높은데 비해 2, 3층 몸돌의 높이는 낮아 안정감이 있지만, 체감비율이 갑자기 떨어져 미적 감각은 조금 떨어진다.

 

지붕돌 밑면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사면 끝에서 약간 들려 우리 건축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탑의 상륜부가 없고 지붕돌 일부가 깨져 완벽한 아름다움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장사지 3층석탑은 남산이라는 거대한 기단 위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번째 탑으로 남산 제일의 탑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삼륜대좌불과 상층부모양

 

탑을 보고 또 바위를 한 굽이 돌아 아래로 내려가면 조금 평평한 공간에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이 있고, 한쪽 벽으로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이 조각되어 있다. 삼륜대좌불은 원형의 대좌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공식 명칭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다. 둥근 형태의 대좌,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유가종(瑜伽宗)의 조사 스님인 대현(大賢)이 8세기 전반 남산 용장사에 살았다. 당시 절에는 미륵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스님이 이 장육상을 돌면 삼륜대좌 위에 앉은 부처님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옛날에도 탑돌이처럼 숭배 대상을 따라 돌면서 기도하는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좌대가 둥글기 때문에 그것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궁중의 우물물을 솟구치게 한 일화는 대현스님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대현 스님은 슬기롭고 언변이 뛰어나며 정밀하고 민첩하며 판단과 분별력이 뛰어난(惠辯精敏決擇了然)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후진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용장사에는 미륵장육상으로 알려진 삼륜대좌불만 남아 옛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육상이라고 하면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5m나 되는 큰 부처님이다. 그러나 미륵좌상의 높이는 머리가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2m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삼륜대좌불 전체의 높이를 생각해서 장육상이라 부른 것 같다. 이 앉은 부처님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데, 매듭이 있는 가사와 앉은 자리 밑으로 흘러내린 천의 접힌 표현이 특히 아름답다

 

 

 마애여래좌상과 명문/이상기

 

삼륜대좌불의 북쪽 바위의 벽면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약한 돋을새김이어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긴귀, 꾹 다문 입술 등으로 인해 조금은 근엄해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온화한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양 어깨에 걸친 가사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옷이 왼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2008 OhmyNews 이상기

 

현지에서 추천하는 음식점으로 토박이식당(748-7025), 한정식집 장독대(777-5557).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는 경주게스트하우스(745-7100), 등잔초가집민박(745-7245), 황토방민박(745-1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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