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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의성 구계리 고운사천년숲길

by 구석구석 200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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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사천년숲길/경북일보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도로는 꾸밈이 없이 자연 그대로 나 있는 길이라 포근하고 정감이 넘쳤다. 그래서 우리는 한가한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그 길을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며 걸어갔다. 일주문을 지나 절의 경내로 들어서자 어느새 울창한 솔숲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밭에 들어앉았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세운 고운사의 첫 자는 본디 높을 고(高)였다. 신라 시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최치원이 여지(如智), 여사(如事)라는 두 스님과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뒤로 그의 자(字)인 고운(孤雲)을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최치원은 불교와 유교, 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 기지로 식량 비축과 부상병 뒷바라지를 하던 사찰이며, 일제 탄압시는 전국 31 본산지의 하나로 호국불교의 꽃을 피웠던 곳이다.  

 

고운사는 30동의 건물로 이뤄진 규모있는 사찰이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맨 먼저 나타나는 건물이 신라 말 학자인 최치원이 세운 누각인 가운루로 옛날에는 이 누각 아래로 계곡물이 많이 흘러내렸다.

 

가운루(도유형문화재191호)는 길이 16.2m, 최고 높이 13m의 누각으로 세 쌍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팔작지붕으로 초익공계(初翼工系)의 공포를 두고 있는데, 건물의 귀퉁이에 세워진 기둥만 특이하게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며졌다.

 

가운루 옆에 서 있는 우화루 벽엔 커다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데, 보는 방향 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걸작이다.

 

대웅전 옆의 언덕배기에는 전통깊은 수도선원 고금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고금당 옆에 맵씨있게 지어진 자그마한 당우 한 채가 나란히 서 있는데 대웅전으로 원래 쓰이던 나한전이다.

 

나한전 앞에 있는 높이 2.5m의 단정한 맵시를 자랑하고 있는 고운사 3층석탑은 경상북도 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된 석탑이다. 대웅전 왼쪽으로 돌아앉은 약사전엔 불상광배의 조각 수법이 뛰어난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보물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운사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명부전에는 염라10왕이 모셔져 있는데, 영험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 

 

 

 대웅전과 가운루

 

지난 1992년에 완공되어 오래된 법당은 아니지만 울창한 솔숲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고운사 대웅보전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앞뜰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세워 둔 석주가 있어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석등을 받치는 부분으로 쥐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동물이 새겨져 있다. 한 마리는 위로 기어오르고, 또 한 마리는 땅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고운사 절집에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牒)을 봉안하기 위해 조선 영조(1744년) 때 건립한 연수전(延壽殿, 경북문화재자료 제 444호)이 바로 그것이다. 고운사가 자리한 곳이 연꽃이 반쯤 핀 형국으로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이라고 들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생명 연장의 뜻을 담은 건물 이름에다 벽면에 불교와 관련이 없는 태극 문양도 그려져 있었다. 전남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분합문짝에 있던 태극 문양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3칸 규모의 대문인 만세문(萬歲門) 또한 산의 생김새를 닮아 예쁘고 독특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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