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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고흥 15번국도-금사리 천등산 금탑사

by 구석구석 2008.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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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소재지인 고흥읍으로부터 남쪽으로 15.5km 거리에 해발 550m의 천등산이 있다.

고흥반도 최남단에 솟은 이 바위산은 한때 수군만호가 지킨 조운(漕運)의 경유항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어항인 풍남항을 굽어보며 다도해 여러섬을 호령하듯 솟아있다. 천등산은 풍양면, 도화면, 포두면 3개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올라가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아래에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바위산으로 뭉뚱그려 보이지만 올라가 보면 암릉들이 세밀하게 흩어지고 갈라져 새로운 흥분을 야기시킨다.

 

 

천등산은 남해 바닷가 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바다 조망이 좋아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고 동쪽으로 마복산 봉수 서쪽으로 장기산 봉수와 서로 응했다. 지금은 작은 제단이 마련돼 있는데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정상 바로 밑 금탑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바둑판 모양의 너럭바위가 있다. 이름하여 신선대다.

천등산 동쪽 산허리에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금탑사를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비자나무가 3,313주가 분포되어 있다. 이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호)은 최고 100년이상으로 보여지며 자연생은 아니다.

 

 

 고흥10경인 비자나무 숲

 

목재는 치밀하고 심재가 황색을 띄고 있는데다 독특한 향기와 광택이 있어 바둑판, 조각재, 의장재 등에 값있게 쓰여지고 있으며, 종자는 기생충 구제용으로 생식하기도 한다.

 

비자나무숲에 둘러싸인 천등산 금탑사 061-832-5888

천등산 동쪽 사면 중턱에 자리잡은 금탑사(金塔寺)는 정확한 초창연도를 알 수 없지만 조선 중기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사찰이다. 천등산의 ‘천등’이란 가섭존자(迦葉尊者)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크게 천등불사(千燈佛事)한 것을 이르는 것이고, 금탑사의 ‘금탑’이란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보탑(寶塔)을 건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신라 원효 창건설과 조선 중기 창건설이 전해지는 이 사찰은 창건 당시 있었다는 금탑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선조 37년(1604년) 궁현과 왕순 대사가 중건한 이래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으나, 숙종 18년(1692년) 불타버리고 극락전만 남고 이후 200여 년 동안 폐사나 다름없는 상태로 이어져왔다 전한다.

 

금탑사가 다시 절다운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은 철종 12년(1861년) 유명 비구(有明 比丘)가 비장한 각오로 신심을 일으켜 먼저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시주물을 얻어 법기를 사들여 법당에 걸어놓은 이후라고 전해지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 말사로서 창건 이래 비구니 사찰로 이어져온 금탑사에는 현재 1788년에 그린 괘불탱(보물 제1344호)과 그 100여 년 앞서 제작된 괘불궤, 그리고 지방문화재 제102호인 극락전 외에 산신각, 범종각, 일주문, 요사채 등이 있다.

 

금탑사가 이름난 것은 절 뒤로 울창하게 우거진 비자림(천연기념물 제239호) 덕분이기도 하다. 4만여 평의 면적에 3,3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금탑사 주변에 무성하게 자생, 장관을 이루고 있다. 월간산 한필석 기자

 

남해바다에 금빛 강줄기 만들며 사라지는 석양

너럭바위 위에 올라서자 어둠이 스며드는데도 산 안에 폭 파묻힌 금탑사(金塔寺)는 산중고찰다운 모습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묵직한 모습으로 있다. 옛날 금탑사 승려들이 등불을 밝히고 산정에 올라 외우던 불법이 아직도 산안에 퍼지고 있기 때문인가?

 

돌탑 하나 외로이 선 천등산 정상은 옛날 봉화대가 있던 자리답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 금탑사의 수많은 승려들이 등불을 들고 올라왔기에 천등이란 이름을 얻은 것인가. 아니, 그보다는 고흥반도의 조망 때문에 올랐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예서 고흥반도는 섬으로 둘러싸인 반도가 아니었다.

 

멀리 해창벌 너머 팔영산을 비롯해 수많은 산봉이 솟아 있고, 산과 산 사이에 너른 들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큰 강줄기로 보일 따름이었다. 마치 강원 내륙을 떼어다 옮겨놓은 듯 넓고 너르다. 그 너른 곳에 불법을 전하려고 등불을 밝히고 산정에 오른 것이리라.

 

낙조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 위해 암릉을 따라 서쪽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첫번째 암봉에 이어 두번째 암봉에 올라서자 금빛 강줄기는 더욱 길게 뻗어나아가고, 저 멀리 이내에 감춰져 있던 섬들이 속속들이 속내를 드러낸다. 월간산 한필석 기자

 

숙소  산행 들머리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 따라서 고흥읍이나 녹동항 주변, 아니면 팔영산 자연휴양림을 이용해야 한다(지역번호 061). 고흥읍내 백림장(834-2277), 청명여관(832-2161), 은하여관(835-4715), 귀빈장여관(835-3057). 녹동항 주변 호수장(842-2633), 산호장여관(842-2732), 로얄장(832-3825).

 

팔영산자연휴양림(061-830-5557)에는 25평형(2동·100,000원), 12평형(5동·60,000원), 8평형(1동·40,000원) 산막과 야영장이 갖춰 있다. 야영장은 텐트 1동당 2,000원. 입장료 개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대형 4000원, 소형 3,000원.  

 

소문난갈비집-5,000원에 푸짐한 갈비탕 한 그릇  061-833-2052, 834-8647

벌교에서 15번·27번 공용 국도를 따라 고흥읍으로 향하노라면 남양면 소재지에 이르러 갈비탕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삼거리 코너의 소문난갈비집은 푸짐하기로 이름난 음식점이다. ‘32년 전통’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이 집에 들어가 갈비탕을 주문하면 반찬과 함께 가위가 하나씩 나온다. 갈비살을 잘라먹으라고 내놓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도회지 음식점 것이나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살을 발라 잘라놓고 보면 제법 푸짐하다.

 

보통(5,000원)은 갈비 2대, 특(7,000원)은 3대를 넣는데, 대식가가 아니면 보통으로도 충분하다. 갈비탕과 함께 김치, 갓김치, 깍두기, 물김치, 도라지무침, 고구마순 무침 등 맛깔스런 전라도식 반찬도 푸짐하게 나온다. 갈비찜(2인 기준 30,000원)도 먹어볼 만하다. 

 

벌교 순천해물탕-생물만 고집 061-857-3233

‘냉동은 사절’. 벌교 순천해물탕집은 철저하게 생물만을 고집하는 음식점이다. 고흥 길목을 지키는 벌교 중앙에 위치한 부영아파트 부근의 허름한 골목, 허름한 집에 위치한 이 음식점에 들어서면 게, 낚지, 새우, 생선, 조개류 등 커다란 물통이나 수족관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바다 생물들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양에 따라 소·중·대로 나누어 30,000원, 40,000원, 50,000원씩에 내놓는 해물탕과 꽃게탕은 당연히 이들 생물로 만든 것이고, 그렇다보니 맛이 어떠리라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나올 것이다. 도시의 해물탕집과 달리 남도 특유의 밑반찬도 푸짐하게 나온다. 4명이면 중간 크기로도 충분하다. 산낚지(소 10,000원, 대 20,000원)와 생선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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