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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전주 1번국도-완산칠봉 청학루길 고덕산 불정사 남고산성 전주막걸리

by 구석구석 200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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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서부우회도로~백제로~남전주전화국~평화동 사거리-27번 국도 구이 방면~우미아파트 앞 또는 학소암

팔달로~전주교육대학 및 전북임업연구소

동부우회도로~신리~한일장신대~어두리

88고속도로 남원 나들목~오수~임실~관촌~신리~한일장신대~어두리

신리~전주교육대 및 전북임업연구소

전주교육대~평화동 사거리~우미아파트 앞 또는 학소암.

 

전주 완산동에 있는 완산칠봉은 전주의 대표적인 산이다. 해발 163미터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동서로 길게 놓인 완만한 품새가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주봉, 곤지봉, 투구봉, 용두봉 등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칠봉이라 부르는데, 주봉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전주 시내에서 바라보자면 투구봉 능선 아랫자락으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마을이 이어진다. 동완산동과 서완산동이다. 오른쪽의 서완산동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마을과 해방 이후 형성된 달동네가 있는 곳. 새 건물이 큰 길 아래쪽에서 밀고 올라오면서 옛 골목길의 정취가 부분적으로 사라졌지만 아직 유기전1길을 중심으로 골목길 구조가 망가지지 않고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동완산동은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전주의 중산층과 부자들이 몰려 살던 중심지였지만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변두리 동네로 밀려났다. 양옥과 도시형 한옥이 어울려 정감 어린 골목길 풍경을 빚어낸다.

 

 

 

완산칠봉 산자락엔 500여 평 남짓한 습지가 보존되어 있다. 주택가와 인접해 있는 습지 옆으로 등산로가 나있어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 습지의 생태를 관찰할 수가 있다.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훼손시키지만 않으면 자연은 자연스러운, 그러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이 완산칠봉습지도 그 한 예이다. 

 

본래 사유지였던 이 습지는 한 사람의 각별한 마음과 그에 호응한 380여 명의 시민들이 있기에 보존될 수 있었다. 이들은 습지를 자연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고, 그 모금한 돈으로 습지를 구입하여 영구보존의 길을 열어놓았다. 오마이뉴스 김현

 

 

골목길 풍경의 백미 청학루길

서완산동은 재미있는 곳이다. 능선의 경사면에 위태롭게 들어앉은 마을과 평지에 평온하게 들어선 마을이 나란하다. 달동네와 옛 부촌도 어우러져 있다. 70~80년대 양옥과 도시형 한옥이 어우러진 가운데 카리스마 넘치는 옛 한옥이 근엄하게 들어서 있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탓에 일본식 집도 남아있다. 벽화가 그려진 마을도 있다. 다양한 골목을 집약해 놓은 곳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서완산동 유기전1길에서 시작해 기령당길을 지나 구정언덕길, 백학정길, 청학루길, 완산길을 거처 매화골길에서 끝난다. 유기전1길은 큰 대로에서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자동차 두 대가 비껴갈 만한 넓은 길이 나온다. 공원 정비사업으로 넓은 길이 만들어졌지만 옛 골목길의 정취는 그대로 남아있다. 길 가에 늘어선 집들은 달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오래된 서민형 주택이다. 빛 바랜 양철대문이 있고 거친 시멘트 담벼락에는 아담한 화분을 내놓았다. 지붕에는 빨래가 말라가고 옥상에는 양파와 대파 등 채소가 심어진 화분이 올려져 있다.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는데 매우 친절하다. 낯선 이에게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네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시원한 물 한 사발을 내주신다. 나그네에게 선뜻 물 한 그릇을 내주는 인정은 골목길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유기전1길은 기령당길을 지나 백학정길로 이어진다. 기령당길이 독특하다. 길은 용머리고개를 지난다. 풀숲이 우거진 산길이다. 짧은 트레킹 코스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정식 이름이 붙은 것이 재미있다. 길 양옆으로 마을 사람들이 가꾸는 꽤 넓은 고추밭과 상추밭이 있고 무덤도 몇 기 보인다. 기령당길이 끝나면서 백학정길이 시작된다. 스무 채 남짓의 집이 들어서 있다. 시멘트 담벼락을 세웠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전형적인 달동네 풍경이다. 길의 구도도 입체적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휘어짐과 꺾임 등 골목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골목도 품고 있다. 격식 없는 창과 문과 어울림, 그 앞에 놓인 화분과 빨래 등 생활 소품들도 아기자기하고 활달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능선 정상부에 자리한 덕택에 전망도 좋고 햇빛도 잘 든다. 멀리 동완산동이 굽어보인다.

 

백학정길은 청학루길과 완산길로 이어진다. 서완산동 골목 풍경의 백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경주의 사정동, 황오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70~80년대 지어진 양옥과 해방 이후 만들어진 옹골찬 품새의 도시형 한옥이 섞여 있다. 회색 시멘트 담을 단단하게 세우고 그 속에 집이 반듯하게 들였다. 문은 대부분 철제문이고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다. 청학루길은 평지에 나 있고 구획정리가 잘된 까닭에 계단이 없다. 분산적이고 다양한 길의 구도도 접하기 어렵다. 붉은 벽돌과 얼기설기 엮인 계단으로 대표되는 다세대주택도 만나기 힘들다. 문과 창문의 구성도 평면적이다. 청학루길에서 만난 최영섭 할아버지(84)는 “이 마을 만들어진 지가 70년대 훨씬 이전이지. 그때만 해도 이 동네가 부촌이었지. 제법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지금은 변두리가 되어 버렸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래된 골목길의 분위기만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재개발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까닭이다. 시간은 80년대 어느 지점에서 멈춘 것 같다. 특히 완산길 일대에 골목 특유의 오래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구멍가게와 철물점, 쌀가게, 미용실, 정육점, 통닭집, 목욕탕…. 골목에 서 있는 가게들이 어울린 풍경은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양철 간판에 페인트로 글씨가 씌어져 있는데 드문드문 칠이 벗겨졌다. 글씨체도 옛날 스타일이다. 촌스럽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간판에 박혀 있는 전화번호가 두 자리인 것도 자주 눈에 띈다. 점집도 많다. ○○보살, ○○철학관, ○○암 등 한집 건너 점집과 철학관이다. 골목길 곳곳에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점집과 철학관은 골목길을 이루는 주요한 구성요소이자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부근이 전주에서 집값이 제일 싸. 변두리다 보니 집을 내놓아도 잘 나가지가 않아. 그러니 점집이 많이 들어오는지 모르겠네.” 완산길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재개발이라도 되면 좋겠어. 하지만 몇 년 사이 말만 무성하지 개발될 기미는 전혀 안 보이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골목길의 전체적인 인상은 깨끗하고 산뜻하다. 쓰레기나 건축 폐자재, 버려진 가구 등도 나와 있지 않다. 백학정길이 거친 인생을 살아 온 중년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면, 청학루길은 은퇴를 앞둔 품위 있게 늙은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기와 지붕이 맞댄 스카이라인은 차분하고 여유롭다.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친절하다. 초등학교와 가까워서인지 활기도 넘친다. 아이들 술래잡기 하는 소리와 뜀박질 소리가 골목길 곳곳에 울려 퍼진다.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은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농구공을 들고 가던 한 아이 역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청학루길은 매화골1길과 이어진다. 매화골1길은 전주시립도서관에 닿는 경사 20~30도 정도의 비탈길이다. 한때 주변에 매화가 수두룩해서 이렇게 이름 붙었다고 한다.

 

매화골1길에 접어들면서 길은 자동차 2대가 비켜갈 만큼 넓어지고 분위기는 한껏 밝아진다. 벽마다 그려진 벽화도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 했다. 서완산동 골목은 골목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골목의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달동네의 골목길이 주는 서글픔, 쇠락한 부촌의 애잔함, 벽화골목 특유의 산뜻함, 다사다난한 생활의 곡절 등 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층위도 다양하다.

 네이버캐스트 최갑수

 

 

 후백제의 얼이 살아 숨쉬는 문화유적의 보고 고덕산

 

백제의 얼을 계승하려고 고심했던 견훤이 백제의 옛 땅에 후백제를 창업하고 전주부성의 수호를 위해 쌓았다는 남고산성으로 이어지는 고덕산은 신라의 대찰 남고사를 비롯한 삼경사, 관성묘 등 문화유적의 보고요, 백제유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천년고도 전주의 동남쪽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고대산(孤大山),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고달(高達)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 높다라기로도 불렸다. 이는 하늘 높이 달아매기란 뜻이니 산(山) 자를 말미에 붙여서 높닭산의 줄임말이 되었다. 높닭산은 높달산과 고달산이 되었고, 높닥산은 고덕산(高德山)으로 차음된 것이다.

 

행정구역은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대성동과 완주군 구이면, 상관면에 경계해 있다. 전주시내와 구이면 광곡과 평촌, 신리 방향 등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산이다.

 

육산인 듯하면서도 사면이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정상은 평평한 분지로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다. 조망은 사방이 딱 트여 아주 좋다. 북서쪽으로 전주와 익산시가지, 기린봉과 치명자산이 다가오고, 북쪽으로 연석산과 운장산, 숫마이봉, 부귀산이 보인다. 동쪽으로 만덕산과 그 너머로 덕유산과 지리산 연봉들이 하늘금을 그리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남으로는 구이 저수지와 경각산, 서쪽으로 모악산이 조망된다.

 

 전주교대에서 전북임업연구소 건너편 서학파출소 앞 안내도를 따라 10분쯤 가면 이정란 장군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경사를 지나면 갈림길을 만난다. 남쪽으로 직진하면 삼경사와 관성묘를 거쳐 고덕산을 가는 길이고, 동쪽 오름길로 들어서면 남고사 입구가 나온다. 우측은 남고사로 곧장 오르고 좌측은 불정사를 거쳐서 남고사 일주문 앞에서 만나게 된다.

 

만산홍엽을 이루어 가을이 정취가 무르익어 가는 숲길을 걷노라면 개 짖는 소리와 산새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산객을 맞는다. 일주문을 지나면 새로 축조한 남고산성이 위용을 드러내고, 이삼만 선생이 쓴 남고산성 사적비가 마중나온다. 산성 위에 올라서면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나무 사이로 남고사가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성문에서 오르막길을 50m쯤 오르면 7,000평쯤 되는 분지 위쪽에 신라 문무왕 6년에 명덕화상이 창건한 남고사에 닿는다.

 

시계가 탁 터진 전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후백제의 얼과 천년고도 예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주10경으로 유명한 남고모종(南固暮鐘), 즉 남고사에서 노을 진 석양에 들려오는 저녁 종을 들으면 마음 속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된다.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한 산객들이 저마다 시인이 된 듯 가을을 읊조린다.

 

 ▲ 남고산성 서문터

 

우측 송림으로 오르면 견휜이 도성방어를 위해 쌓았다는 남고산성 북장대에 닿는다. 그러나 견고한 성을 쌓은들 무슨 소용 있을까. 후백제는 적이 아닌 부자간의 권력다툼으로 자중지난해 고려에게 나라를 진상해 버린 것을. 동쪽에 우뚝 솟은 고덕산이 위용을 드러내자 하나같이 가을정취에 취해 야호를 외친다. 새로 축조한 성곽을 따라 걷노라면 좌측으로 전주시 대성동, 우측으로 평화동이 한눈에 조망된다.

 

어느덧 삼경사와 관성묘를 거쳐 오르는 삼거리와 만나게 되고, 성벽이 이곳에서 작별을 고한다. 아뿔싸, 풍광 좋은 곳에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 아쉽다(전주교대에서 40분 거리).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동쪽으로 40분쯤 소요된다.

 

완만한 단풍 길을 걷노라면 삼거리다. 북쪽은 천경대, 정상은 동쪽으로 직진이다. 10분쯤이면 메뚜기 형상의 바위를 조우하고, 곧이어 고덕산 능선에서 유일한 약수터를 만난다. 낙엽이 목욕했지만 한 바가지 듬뿍 떠서 먹으니 물맛 좋고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메뚜기바위에서 20분쯤이면 평화동 방면의 학산, 보광재에서 오는 길과 합류한다.

 

 ▲ 정상 직전의 암릉길

 

완만하던 등산로가 점점 고도를 올리며 북쪽 전주시 대성동, 남쪽 구이면 평촌 마을이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송전탑을 지나면 송림을 지나 암벽을 힘들게 올라서면 넓은 헬기장과 오석으로 된 멋진 표석이 있는 고덕산 정상이다.

 

조망은 사방이 탁 트여서 좋다. 동쪽은 만덕산, 서쪽은 모악산, 북쪽은 종남산, 서방산, 북서쪽 전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길은 어두리를 거쳐 신리까지 2.5km, 왜목치를 거쳐 호남정맥까지 5.5km, 전주교대까지 5.5km(2시간 소요)다.

 

남쪽은 구이면 광곡과 평촌이고, 동쪽은 가장 먼 길인 관촌 슬티 코스다. 동쪽으로는 신리의 한일신학대학 코스이고, 북쪽 능선을 타고 암릉을 타고 내려가면 왼쪽 대성동 영동고덕아파트 앞 국도로 빠지는 길과 신리 쌍다리 앞으로 가는 코스도 있다. 또 하나는 되돌아오거나 서릉을 타고 보광재를 거쳐 삼경사나 남고사로 빠지거나, 학산까지 와서 서쪽의 학소암, 북쪽의 평화동 아파트지구, 완산여상, 우정목련아파트 앞으로 빠지는 다양한 코스가 있다. 월간산 김정길 전북산사랑회 회장

 

#산행안내
고덕산은 짧은 코스가 왕복 3시간, 긴 코스는 5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타고 호남정맥 산줄기를 따라서 북쪽의 슬티나 남쪽의 경각산과 불재로 빠지면 하루종일 산행이 된다.

제1코스  전주교대~전북임업연구소~충경사~남고사~북장대~남고산성~삼경사 삼거리~정상~북장대~남고사~전주교대 <11km, 4시간30분 소요>
제2코스  전북임업연구소 앞~삼경사~관성묘~우측 능선~393m봉~정상~삼거리~남릉~임도~평촌 <8.5km, 3시간30분 소요>
제3코스  평화동 우미아파트 앞~학소암 입구~5봉~학소암~학산~북릉~정상~동릉~좌측 안부~어두리~한일장신대학 <12km, 4시간30분 소요>
제4코스  좁은목 약수터~풍남정~대승사~암릉~남고산성터~삼거리~393m봉~정상~1·2암봉~안부(문씨묘) 북릉~대성자동차학원~영동 고덕아파트 앞 국도 <13km, 5시간 소요>
제5코스  임업연구소~불정사~남고사~남고산성터~삼거리~393m봉~정상~삼거리~보광재~학산~북릉~골프연습장~우정목련아파트 앞 <12km, 4시간40분 소요>

 

동서학동 산 1-153 불정사 063-284-8025

한벽교를 지나 전주천을 따라 가다보면 우측으로 남고산성 이정표가 보인다. 우회전하여 200m 주행하면 삼거리에 도착하게된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올라가다보면 좌측에 대아 산성아파트가 있고 아파트를 조금 지나면 남고사 삼거리에 도달하게 된다. 삼거리에서 남고산성 방향으로 좌회전 하여 100m정도 올라가면 남고사 입구가 있고 그곳에서 좌회전하여 200m정도 산길을 따라가면 불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남고산성 이정표를 따라 가면 편하게 도착할수 있다.

 

불정사는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산153번지 고덕산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서녘의 해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찰, 불정사는 뒷산의 둥근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머리와 같기 때문에 절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빛이 난다고 하는 불광사(佛光寺)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정사로 바뀐 것이다. 불정사는 숲이 깊고 그늘지다. 시원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끼가 끼어 오래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다. 

 

대웅전이나 산신각이 원래의 전통적인 전각에서 벗어나 있으며 종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군데군데 석물이 많고 존상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산과 나무가 띄엄띄엄 가려져 있어 사찰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대웅전 내부에 위치한 아미타불좌상이 조선 후기 17세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된다.

 

사각형의 얼굴에 무표정한 표정에 반개된 눈과 함께 목에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단순화된 옷자락에 의해 경직된 모습이고 가슴 높이 걸친 군의의 상단 깃을 몇 가닥 겹쳐 수직적인 표현 또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오른팔을 소맷자락에서 빼낸 듯한 특징적인 옷차림새 또한 17세기 이후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발견하게 되어 법열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해질 녁 노을이 아름다운 불정사에서는 산세에 맞게 정갈한 절집과 그 안에 모셔진 조선후기 불상의 조화를 함께 맞볼 수 있는 사찰이다. 그다지 험하지 않으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마음으로 묻고 답하는데,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이러한 게 아닌가 싶다. 

 

 

 

동서학동 산228 남고산성

 

남고산성은 1981년 12월 10일 사적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총 면적 163,970제곱 미터로, 전주 남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고산의 자연 형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산성이다. 후백제 때 처음으로 쌓여졌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산세나 지세로 봐서 그 이전부터 성터였을 가능성이 많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고덕산 줄기에 쌓아 놓은 이 산성은 조선왕조 순조때 수축하여 남고종을 두었다.이 성은 효종 때 설치했다는 중진영과 숙종 때 쌓았다는 위봉산성과 함께 향토방어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 산성 안에는 현 남고산 앞쪽에 남장대 뒷편에 북장대를 두고 남장대 아래 서쪽 골짜기에는 군기고와 화약고 등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산성별장 1명에 장관 22명을 비롯 군인 1천 4백여 명이 주둔했다고 하니 규모의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남고산성의 평면은 불규칙한 제형을 이루는데 중앙의 북측에 위치한 각이 267.5m높이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수구가 있는 서북변은 자연규암층을 이용하고 있다.

동북변은 산능을 따라 약 800m 길이이고 동변은 길이 약 480m, 동변 역시 283.8m 높이의 동남봉과 254.4m 높이의 서남봉 사이의 능선을 연결하는데 길이 약 850m, 서변은 중앙에 수구가 있는데 서남봉에서 수구까지는 약 320m, 수구에서 만경대까지는 200m, 만경대에서 북방 남고산까지는 약 300m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2천 9백 50m에 이른다.남고산에는 남고사를 비롯한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앙의 만경대 남쪽 벼랑에는 고려 말 충신인 정몽주가 쇠퇴해 가는 왕조의 한을 읊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또한 만경대의 수령 5백년 된 만인송은 바위틈에 자라면서 오랜 흥망 속에 정절을 지키고 있다. -ⓒ 마운틴월드


3대째 이어온 전주 명가 '전라회관' 한정식
3대를 이어 60여 년 넘게 전주 한정식의 맛을 계승하고 있다. 전주의 팔미라 불리는 황포묵과 미나리, 고들빼기, 콩나물 등을 곁들인 20여 가지 반찬과 음식이 풍성히 차려져 나온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삼합. 홍어회에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여 한 입에 먹는 맛이 과연 일품이다.

 
특히 3년 정도 묵은 김치는 별미 중의 별미. 갈비찜과 낙지볶음, 홍어찜의 풍성한 맛도 좋다. 석화를 땅 속에 2∼3년 묵혀 만든 석화젓과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은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맛이다.
063-228-3033/12:00∼21:30/11만원(4인 기준)/신용카드 가능/삼천동1가 완산공원끝자락
자료 -   김종학

 

 

 전주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막걸리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안주는 전주의 인심과 손맛의 절정이다. 막걸리 1주전자(3되)에 1만~1만5000원을 내면 20~25가지의 진귀한 술안주가 무제한 리필 된다. 경남 통영의 '다찌집' 처럼 술값만 받고 안주값은 받지 않는 셈법이다. 전주시내에는 평화동, 삼천동, 서신동, 아중지구 등에서 막걸리집이 성업 중이다.

 

평화1동 '바이(Buy) 전주 막걸리집 063-222-7821'은 젊은층과 여성들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3되)에 1만2000원. 상상 초월의 안주가 쏟아져 나온다. 조기매운탕, 병어조림, 생선전, 간장게장, 두부김치, 꼬막, 홍합찜, 새우, 꼴뚜기회, 머리고기, 문어데침, 꽁치구이, 낚지볶음, 양파김치, 새우튀김, 피조개, 옥수수, 오이, 고추, 브로콜리, 김 등 25가지의 안주가 쉴새 없이 상에 오른다. 

 

10년째 전주막걸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덕사장(여ㆍ59)의 맛깔스런 손맛과 푸짐한 인심 덕분에 이 집은 늘 문전성시다. 특히 김 사장의 "절대 술 남기는 꼴은 못본다!"는 신조 덕분에 거듭 제공되는 안주로 젊은 고객들은 '고향집' 이상의 푸근한 정까지 함께 맛보게 된다.  자료-스포츠조선 김형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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