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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구리 인창동-농수산물직판장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건원물화제 짚불

by 구석구석 200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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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에서 하남으로 가다 구리나들목에서 오른쪽으로 나오면 오른편으로 동구릉이고 43번국도를 타고 계속나오면 인창동을 거쳐 구리시청-하남으로 연결된다.

 

구리나들목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인창동 127번지 농수산물직판시장 031-560-5100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소비자에게는 신선하고 안전한 농수산물을 공급하고 생산자에게는 출하된 농수산물의 적정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유통시설로 1997년 설립되었다. 편리한 교통망과 넓은 주차장,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고, 2003년에 수산2동을 추가 개장하여 다양한 먹거리를 구비한 원스톱 쇼핑체제를 구축하여 많은 수도권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에 가면‘가을전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매년 9월말에 벌어지는 가을 전어축제는 가을의 대명사 전어 판매는 물론 각종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불꽃놀이, 경매시범, 노래자랑 등 다채로운 행사가 치루어진다.

 

조선왕조 9명의 왕과 17명의 왕비 및 계비가 잠들어 있는 검암산 동구릉 031-563-2909

매표소 입구를 지나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동구릉(국가지정 사적 제193호)의 관문이자 신문인 커다란 홍살문. 잡귀가 싫어하는 붉은 팥죽색으로 칠을 하고, 좌우 기둥 사이에는 여러 개의 창살을 세워 연결한 후 가운데에 태극 문양과 삼지창 모양의 홍살로 중앙을 단속하며 서 있는 홍살문. 그 모습에선 왕릉의 신문 안으로 아무나 함부로 출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용맹스런 호위무사(?), 경호실장(?)의 결기가 느껴졌다. 

 동구릉의 대표(?) 수문장을 지나 걸어가는 왕릉 숲길은 사람의 마음을 역사의 시간 속으로 빨아들이는 묘한 흡인력이 있는 듯하다. 좌우로 높고 길게 늘어선 낙락장송과 전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꼿꼿이 하늘을 향하여 그 충직한 도열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은 노회한 늙은 내관처럼 허리를 낮추고 구부린 채 우리가 알현코자 하는 임금의 능침으로 안내하려는 듯 몸짓으로 길을 가리키고 있다.

 

 

왕릉묘역과 수릉

 

추존 문조(제23대 순조의 맏아들)와 그의 비 신정왕후 조씨의 무덤인 '수릉'을 지나쳐 '현릉'에 당도했다. 세종의 장남으로 조선 제5대 임금을 지낸 단명한 왕 문종, 몸이 허약해 37세로 왕위에 올라 불과 2년 4개월 동안 재위하다 병사한 그의 무덤에는 평소 알지 못했던 역사적 풍수야사가 드리워져 있다.

 

 현릉/김선호

 하나의 능역(무덤의 영역) 안에 좌우로 각각 강(언덕)을 다르게 하여 두 개의 무덤이 조성된(동역이강릉)

현릉은 홍살문과 정자각 그리고 능원의 각도들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도록 꺾어져 적통이 꺾인 문종 왕릉의 역사를 증거해 주고 있다. 아마도 문종의 아들인 어린 임금 단종을 제거하고 스스로 보위에 오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장생발복'을 기원한다는 눈속임으로 자리매김된 억지스런 위장의 술수가 아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를 모신 휘릉과 제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가 묻힌 혜릉은 왕비가 혼자 외롭게 묻힌 단릉이다. 혜릉의 무덤 주변엔 녹지 않은 눈마저 하얗게 쌓여 있어 쓸쓸함을 더하는 듯했다.

 

 

제20대 경종의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인 혜릉과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묻힌 휘릉

 

 

아쉽게도 다른 능에선 발견하지 못했는데 혜릉의 정자각이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다. 정자각 용두에 삼장법사와 손오공 무리가 새겨진 조작이 얹어 있다.

숭유 억불정책을 편 조선시대의 종교관을 생각하면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불교를 억압했던 정책과는 상관없이 단의왕후의 무덤에 새겨진 삼장법사와 손오공친구들은 외롭게 묻혀 있는 왕후의 무덤을 호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천도한 이성계는 생전 자신과 후손들의 유택(죽어 묻힐 자리)을 물색하던 중 신하 '하륜'을 시켜 이 곳

검암산 자락 아래 지역을 능지로 정했다고 한다.

 

건원릉의 언덕/이성한

 건원릉 입구에 당도해서 앞 쪽에 직선으로 펼쳐진 참도와 그 일직선 상에 세워진 정자각, 그리고 정자각 뒤편에 어마어마한 규모와 크기로 조성된 언덕(강)을 바라다보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상왕의 능이라서인지 멀찌감치 아래서 바라다 보이는 무덤의 언덕(강)은 그 위엄과 위용이 실로 대단한 모습을 하고 있다. 더욱이 높은 언덕(강) 위에 보이는 봉분의 능상에는 여지껏 어떤 왕릉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억새풀이 거칠지만 강하고 위엄 있게 덮여 있으니, 그 느낌은 참으로 강렬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죽기 전 유독 고향인 함흥을 그리워하니 그 아들 태종 이방원이 억새가 지천인 함흥 땅에서 옮겨다가 무덤 위에 덮어 드렸다고 하는 애틋한(?) 사연이 서려 있는 건원릉이다. 능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이 태어나고 또 돌아가는 생(生)과 사(死)의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진실로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무장으로서 천하를 호령하고 주름잡으며, 조선을 건국했던 일국의 태상왕이었던 태조 이성계조차도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자연 순환의 이치 앞에서 어찌 보면 하찮은 그 억새풀이 그다지도 그리웠단 말인가! 아니지, 마음속의 고향이 그리웠을 게지...
 

정조대왕(이산)의 할아버지인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가 나란히 쌍릉으로 잠들어 있는 '원릉'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왕릉의 숲길에는 노랗고, 빨갛고, 붉게 물든 현란한 색채의 가을나무 패션쇼가 신비롭게 한창 펼쳐지고 있다.

정조대왕 이산의 할아버지인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이성한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이 자신의 정비와 별거하고 계비인 정순왕후와 나란히 잠들어 있는 '뭔가 이상해 보이는' 이 곳. 영조는 83세를 누리며 51년 7개월이란 기간 동안 재위했던 조선왕조 최장수 재위 왕으로서 생전에 풍수에 지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지금 '서오릉'의 홍릉 자리에 자신이 죽은 후 묻힐 자리를 택지해 두었다. 그러나 그의 정비인 정성왕후가 일찍 승하하자 먼저 홍릉에 안치하고 나중에 자신이 죽은 후 묻혀 누울 자리를 비워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죽은 자가 산자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가?


정조는 영조가 승하한 후 왕위에 등극하자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인 할아버지 영조의 무덤을 동구릉 능역에다 조성해 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정조의 왕심이 '아비추숭 할배폄하'로 드러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이리라. 그리하여 동구릉의 원릉에 영조는 안치되었으며, 이후 정조임금이 불분명한 사인(死因)으로 승하한 후 정순왕후는 왕위를 승계한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까지 하며 위세를 떨치다가 죽은 후, 영조의 옆자리에 묻히게 되었다.


조선왕조 최초의 삼연릉 양식의 무덤인 '경릉'을 향해 걸었다.  

경릉에 도착해서 언덕(강) 위 무덤 봉분을 보려하니 제법 경사진 지대라 무덤의 머리 끝 일부분만 대머리처럼 살짝 드러나 보일 뿐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없다. 아래편 남서쪽 기슭 낮은 언덕으로 올라 무덤 셋이 나란히 자리 잡고 앉은 모습을 그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경릉은 제24대 헌종과 그의 비 효현왕후 김씨 및 계비 효정왕후 홍씨가 나란히 누워 있는 무덤이다. 헌종이 승하하고 이어서 보위에 오른 일자무식 농사꾼 '강화도령' 철종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에 놀아난 백수 임금으로서 병권을 놓친 허수아비 임금에 불과했었다. 따라서 안동 김씨 세도가의 전횡으로 능역이 3단에서 2단으로 생략되었으며 원래 선조 왕릉이었던 '목릉'을 천장했던 파묘자리에 능지를 택한 풍수상 가장 큰 문제가 걸린 왕릉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난간석 안에 모든 능침이 들어 있는 양식으로서 헌종왕릉은 안동 김씨 김조근의 딸이 오른쪽에는 남편을, 왼쪽에는 남편의 첩까지 양편에 끼고 있는, 지엄한 조선 왕릉이 안동 김씨 여식의 무덤을 따라간 해괴한 사연을 안고 있는 왕릉인 것이다. 그것은 안동 김씨가 전주 이씨와 남양 홍씨를 세도정치의 들러리로 삼은 조선 말기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엄연한 현장이기도 하다.(*참조: 왕릉풍수와 조선의 역사-장영훈 저)

 

1) 중부고속도로와 이어지는 서울외곽순환도로 → 한강 → 구리 나들목을 빠져나가 → 서울방향 → 43국도를 만나는 사거리 → 우회전해 조금만가면 보이는 동구릉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면 동구릉
2) 서울 강북 지방 → 망우리고개 → 교문사거리에서 좌회전하거나 북부간선도로 → 동구릉  

자료-오마이뉴스 2007 이성한/2008 김선호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

동구릉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려는 경기도 구리시의 노력이 조선왕릉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09.6.27일 한국이 신청한 조선왕릉(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40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구리시가 동구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지 6년 만이다. 동구릉은 태조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한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수릉, 경릉 등 조선왕릉 9기에 왕과 왕비 17위가 모여 있는 등 찾아보기 어려운 유적이다.

 

구릉산 (검암산)

동구릉으로 인해 구릉산이라 불린다.

한북정맥의 한줄기기가 양주에 이르러 주엽산에서 아차산으로 이어지며 한강에서 소멸된다. 

구릉산은 그 중간의 불암산과 망우산 사이에 솟아 있는 표고 177.9m의 잔구성 산지이다. 

구릉산의 산세는 남북으로 향해 있으면서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는 왕숙천을 이루고

서쪽으로 흐르는 계류는 묵동천을 거쳐 중랑천을 이루어 한강으로 합류된다.

구릉산의 지질을 보면 북서쪽은 화강암, 동남쪽은 호상편마암으로 이루어졌다. 

토양은 산성암지역으로 산록지 토양과 저구릉곡간 토양이 혼합되어 있다. 

구릉산의 수림은 소나무가 울창한 동구릉 일대를 제외하고 

산림녹화를 위해 속성으로 식목한 아까시나무가 대종을 이룬다. 

그외 자연수종으로 상수리나무·굴참나무·싸리나무 등이 있으며

주택가 기슭에는 배나무·복숭아나무 등이 식재된 과수원이 발달되어 있다.

 

검암산은 조선시대 왕릉인 동구릉이 있는 산으로 일반적으로 구릉산(九陵山)이라 부른다.

조선 왕실에서는 검암산 이름에 ‘칼’을 연상하는 글자가 들어가 역대 왕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에 불길한 조짐이 보인다 하여 검암산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검암산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왕릉터로 주목을 받아 가장 많은 능이 안장되어 있다.


검암산의 동쪽 기슭에 왕릉군이 자리함에 따라서 산 서쪽 기슭에 능마을이 형성되었다. 또 능 뒤에 해당하는 안쪽 깊숙한 마을을 능후동·능내동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왕릉이 위치한 것에 관련하여 신내동 능마을에서 구릉산으로 넘어가려면 박수고개를 지나야 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고개지만 이곳에 서낭당이 있어 무사하기를 빌고 넘었다고 한다. 특히 나무 베는 것이 금지된 지역에서 땔감을 구해야 했던 주민들로서 나무를 하러 갈 때는 반드시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능마을에는 마을 동쪽 구릉산 기슭에 도당(都堂)이 있어서 주민들의 추렴에 의해 1년에 두 차례 도당제를 따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능마을 사람들은 왕릉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역대 왕의 건원릉 행차가 끊임없이 이어진데다가 왕릉 주변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마을사람들이 긍지를 갖는데 충분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능말 경주 임씨가 진사보다도 낫다’고 하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는 진사 이후 벼슬길에 나아가 험난한 관직생활을 하는 것 보다, 참봉·훈도·오위장과 같은 종9품직에 제수되어 일생을 마쳐도 임금행차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능행길은 궁궐에서 동대문 - 동묘(신설동) - 보제원(안암동) - 종암동 입구 - 안락현 또는 봉화산 뒷길(화랑로) - 신내동·망우동 박수고개 - 양원리 - 옛 망우리고개(중앙선 망우리터널) - 동구릉으로 이어졌다. 이 길은 한양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간선도로로 망우리고개에서 왕상탄과 평구역을 지나 양수리로 나아갔다.


검암산에는 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오석그릇·옥수석기(玉髓石器)·흑도 등은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대동지지』 에는 검암산 서쪽 봉우리 두 곳에 옛 망루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언백(高彦伯)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검암산 일대는 6·25전쟁 때 전선을 형성했던 곳으로 식생이 바뀌면서 배나무밭과 복숭아밭은 과수원으로 변하였지만, 동쪽 기슭의 동구릉 일대와 북쪽의 육군사관학교 일대는 자연녹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남·서쪽은 주택지로 변하여 학교와 아파트들이 들어서 인구 밀집지역으로 변하였다. 이 일대는 서울의 외곽지역으로 동래정씨와 경주임씨 등 수백년을 이어오는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아울러 그 생활유적을 간직하고 있어 동구릉과 더불어 문화유적 공간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재 동구릉이 사적지로 관리되고 있는 것 이외에는 검암산에 대한 관리시설이나 공원화된 곳은 없으며 자연녹지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검암산에는 능행길과 더불어 동해와 영남으로 가는 간선도로가 개통되어 있었다. 그 전통은 그대로 계승되어 중앙선이 검암산을 뚫고 지나고 춘천과 원주·충주·안동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그 옆을 지나가고 있다.

 

 

 

구리시에서는 5~6월에

건원문화제

를 개최하고 있다.
동구릉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조선왕 9릉 17위의 능이 있는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으로 태조 이성계의 능 이름인 건원릉의 '건원'을 따서 건원릉의 산릉제례일인 6월 27일 전후로 건원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국조오례의]의 배릉의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반드시 건원릉 이하 부왕 및 모후의 산릉에 참배하게 되어 있었다. 조선왕조 오백년동안 이 배릉의식은 국가적 의례로서 뿐만 아니라 왕이 친히 거행하는 점에서 그 의례적 비중이 매우 높았다.


이와 관련하여 시에서는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어가행렬을 재현하고 동구릉에 대한 학술대회, 백일장, 산릉제례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어가행렬과 학술대회는 격년제로 개최)

 

 

 

인창동 643-5 짚불 031-567-3533 

 

 도로변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간판 덕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곳이다.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 가다보니 그 주변에서 가장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시내처럼 으리으리한 집도 아니요, 제대로 된 간판 조차도 없다. 오래 전에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음식 사진이 박힌 간판뿐이다. 하우스를 끼고 있는 외관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나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넓은 공터에 주차할 수 있어 용이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시골집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작은방으로 이루어진 별실이 3개정도 있고, 한쪽에 넓은 홀이 있다. 두툼한 통나무 테이블과 서까래, 가마솥이 마치 시골집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향토적인 분위기다.

 

 대표메뉴인 짚불삼겹살을 주문하면 10가지의 밑반찬과 양파를 곁들인 소스, 야채가 한 상을 채운다. 이어 사장님이 짚불에 직접 구워다 주는 고기를 불판에 조금만 더 익혀 먹으면 된다. 볏짚로 구워서인지 고기가 좀 까맣다. 볏짚의 재는 먹어도 된다고 한다. 기름기가 쫘악 빠진 삼겹살은 느끼함이 없고 돼지고기의 잡냄새도 없어 담백하다. 기름기가 많이 빠져서인지 조금 부드러운 맛이 떨어지긴 하지만 느낀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한테는 무난해 보인다. 삼겹살보다는 기름기가 조금 있는 항정살이 뻑뻑함이 없이 부드럽고 더 고소하다.

 

테이블에 벨이 없어 빠른 서비스를 받을 순 없었지만 반찬 리필은 친절하게 응해준다. 전체적으로 볏짚으로 초벌을 한것 말고는 특이할 만한 점은 없다. 그저 검게 그을린 고기를 먹은 느낌이다. 단체모임이나 가족단위 외식으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에는 5,000원에 청국장과 고추장 불고기, 생선구이가 차려지는 짚불정식을 5천원에 맛볼 수 있다.

 

 

 

 구리 인창동

로데오패션타운

은 주변에 LG백화점, 농수산물 도매시장, 롯데마트, 하이마트, 삼성 전자랜드 등의 대형 상가와 대형 유통단지 내에 형성되어 있으며, 구리시 광역상권으로 중랑구, 망우, 신내, 태능, 남양주, 진접, 오남, 도농, 덕소 등을 상권으로 포함하고 있고 패션타운 내에는 이지캐주얼, 골프웨어, 스포츠 웨어, 여성 캐주얼, 남성정장 등으로 컨셉을 형성하고 있는 다수의 유통인구가 왕래하는 프리미엄 패션 로데오 타운이다.

 

 

구리시민스포츠센터 031-557-7676

 

구리시민의 건강과 여가활용을 위한 공간인 전망대를 갖춘 하루 200톤의 초현대식 소각시설과 더불어 주민편익시설로 시민들이 휴식과 재충전의 장(場 )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제규격의 인조잔디 축구장을 비롯하여, 실내수영장, 사우나장, 게이트볼장, 롤러스케이트장 및 농구장, 전망대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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