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사직동 흥국생명사옥 사직공원 인왕산트래킹

by 구석구석 2007. 12. 5.
728x90

 

멀티미디어 복합문화공간… 흥국생명 광화문 사옥
시원스레 오픈된 빌딩 로비는 여느 건물과 다름없이 보이지만, 조금 눈여겨 보면 로비 전체가 거대한 갤러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먼저 바닥에 그려진 대형 바코드가 보인다.

‘일주, 광화문에 세우다’ 라는 뜻을 지닌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코드로 기네스북에 오른 작품. 로비의 전면 벽면에는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의 ‘아름다운 강산’ 이 전시되어 있다. 가로, 세로 3인치의 채색 목판 7,500개를 배열하여 완성한 대작. 조그만 나무 프레임 하나하나에 우리나라의 자연과 문화, 일상에서 뽑아낸 각기 다른 이미지들을 따스하게 담고 있다.

로비 뒤쪽에는 독일의 유명한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가 직접 디자인한 작품 ‘홀론스키의 사열’ 이 설치되어 있다. 60개의 홀로그램이 연속 설치된 이 작품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보느냐에 따라 텅 빈 금속판 위에 전구의 이미지가 실제와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밖에도 미디어 갤러리와 단편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을 모니터로 열람할 수 있는 영상자료실 아카이브, 예술영화 상영관 아트큐브와 씨네큐브 등 문화를 향유할 공간이 가득하다. 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 만(Hammering Man)’ 은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작품. 망치를 든 오른쪽 팔이 1분17초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 02-2002-7221 / 아카이브 운영시간 10:00~19:00 / 신분증을 제시하면 원하는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자료 - 위클리 프라이데이 

 

 

 

사직동 1-48 사직공원

종로구에는 이름난 공원이 세 개 있다. 탑골공원, 사직공원, 삼청공원 등이 그것이다. 정부종합청사 서쪽, 인왕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총 넓이 188,710평방미터의 사직공원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종묘와 함께 맨 처음 만든 사직단(사적 121호)을 한복판에 두고 이루어진 공원이다.

 

사직단 / 한국관광공사


사직이라는 말의 뜻을 보면 '사'는 땅의 신이며 '직'은 오곡의 신으로 이들에게 제사를 올려 풍년을 기원했던 곳이 사직단이다. 식민지시대인 1922년에 공원이 되었다. 어린이 놀이터, 율곡 이이 선생과 신사임당의 동상, 활터(황학정), 시립어린이도서관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단군성전, 종로도서관 등이 인접해 있다. 사직공원 옆의 인왕산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인왕산 등산로가 나온다.

 

인왕산트래킹

 

인왕산 문화유산 트레킹은 사직단(社稷壇)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사직공원이 더 익숙하겠지만 사직단으로 부르길 고집한다. 장충단이 안개 낀 장충단 공원으로, 창경궁이 창경원이 된 것과 같은 이유로 사직단도 공원이 됐다.

지금의 사직단은 흔한 시민공원의 모양새다. 1922년 일제가 벚꽃나무를 심고 의자를 설치한 게 원죄라지만 해방 뒤에도 훼손은 계속됐다. 62년 도시계획 사업을 벌이면서 정문(보물 177호)이 원래보다 14m나 후퇴했다.

 

사직단은 곡식과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의 그 '사직'이다.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자마자 사직과 종묘를 세웠다. 좌묘우사(左廟右社)라고 해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웠다. 물론 기준은 왕이 거하는 경복궁이다.

 

배드민턴장이 있는 공터로 오른다. 사직단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직사각형의 담장 안에 직사각형의 단(壇) 두개가 나란히 있다. 단에는 황토가 봉긋하다. 왼쪽이 국토신(社)을, 오른쪽이 오곡신(稷)을 모시는 단이다. 둘이 합쳐 비로소 '사직'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 네모의 연속 구조다. 네모는 동양 철학에서 땅을 상징한다. 매년 9월 첫째 일요일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제를 올릴 때만 개방된다.

지금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서있는 공터는 수영장이 있던 자리다. 일제시대에 들어섰는데 69년 동상을 세우면서 수영장을 없앴다. 이와 관련한 한 가지. 69년 당시는 이른바 동상의 시대였다. 남대문 앞엔 유관순 열사, 시청 앞엔 김유신 장군 등 성현 37명이 동상으로 부활했다. 세종로의 충무공도 마찬가지.

 

공터 뒤란의 돌계단을 오른다. 이내 환한 미색의 건물이 보인다. 단군성전. 왜 예서 단군을 모실까 궁금해 사당을 관리하는 현정회에 문의했다. 원래 이 자리는 단군과 관계 없는 사직단의 터였다. 일제가 여기에 암자를 지으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원래 단군 신당이 있던 남산의 터에도 일제는 절을 지었다.

 

60년대 후반 사직단을 복구하면서 단군 사당이 이리 옮겨온 것이다.

여기에 모신 단군 영정은 단군의 표준형 얼굴이다. 78년 문화재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단군의 공식 얼굴이 됐다. 지금 전국의 단군 사당은 80여개. 모두 여기를 모델로 했다. 단군만 모신 것도 아니다. 고구려.백제.신라 등 역대 왕조의 창업주 신위도 있다.

흥미로운 건 발해의 창업주도 모신다는 것. 발해를 한국사로 포용하려는 뜻이 읽혀 반갑다.

단군 성전의 색깔을 둘러싼 논쟁. 현정회 측은 밝은 미색이 신라시대의 전통 양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 역사학자는 60년대 지은 건물은, 심지어 시골의 면사무소까지 모두 미색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공교롭게도 고(故) 육영수 여사가 좋아한 색깔이 이 미색이란다.

 

인왕산 스카이웨이의 인도를 따라 잠시 오르니 오른쪽에 오래된 전각이 보인다. 황학정(黃鶴亭)이다. 왕이 친히 궁술을 연습하던 곳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건 황학정의 위치. 원래는 경희궁 안에 있었다. 지금의 황학정 자리는 조선시대 궁술 연습장이었던 등과정(登科亭)의 터였다.

위치를 바꾼 건 역시 일제다. 22년 경성중학교를 짓는다며 황학정 터를 철거하고 여기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황학정은 이제 몇 안 남은 경희궁의 본래 전각 중 하나다.

하지만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씨다. 지금도 여기서 활을 쏜다. 활쏘기를 일절 금지했던 일제는 황학정에서만 허가했다. 해방 이후엔 국궁(國弓)의 구심점이 됐다. 지금은 전국 300여 곳에서 국궁을 할 수 있다. 황학정 사무소(02-738-5784)에서 회원으로 등록하면 국궁을 배울 수 있다.

입회비 30만원, 월회비 3만원(성인 남성 기준). 일부 역사학자가 여기서도 의문을 품는다. 왜 일제가 황학정에서만 활쏘기를 허가했을까. 인왕산 기슭에서 산아래로 시위를 당겨보니 이내 알겠다. 화살촉은 정확히 경복궁을 향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다 문뜩 뒤를 돌아보면 여인네의 주름치마처럼 생긴 널찍한 치마바위가 보인다. 내력이 곡진하다. 1506년 연산군의 폭거에 항거해 중종 반정이 일어난다.

 

당시 중종의 비는 신씨. 문제는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측 사람이었다는 것. 신수근은 중종 반정 때 죽임을 당했고 반정 공신들은 죄인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며 왕비 신씨를 폐한다. 그러나 중종은 옛 왕비가 그리웠다.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의 신씨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이 소식은 궐밖의 신씨에게도 전해졌고, 그는 궁궐에서 입던 붉은 치마를 아침마다 인왕산 높은 바위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 뒤로 '치마바위'라고 불렸다고.

 

청운동은 조선시대 백운동과 청하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날마다 궁궐로 출근하는 명문 사대부들의 집단 거주촌. 겸재 정선의 집이 여기였고 그는 대청마루에 나와 인왕산을 마냥 바라봤다.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는 그렇게 해서 나왔다.

 

청운동을 들러야 하는 이유는 하나의 동상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다. 36년전 종로경찰서 최규식 서장의 동상(사진)이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이 여기까지 내려왔다가 최 서장 일행과 맞부닥쳤다.

1.21 사태는 당시 정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청와대가 10분 거리인 곳까지 무장공비가 출동했으니 얼마나 섬뜩했겠는가. 인왕산은 즉시 통제됐고, 백악산의 허리를 자르는 북악스카이웨이도 그때 뚫렸다. 남산의 1, 2호 터널도 40만 서울 인구를 신속히 대피시키려는 의도였고,

한강변을 따라 아파트를 올린 것도 북한군의 도강을 저지할 목적이 최우선이었다. 이른바 반공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마루구스병 사건은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만큼의 공포는 사회에 엄연히 존재했다.

 

인왕산의 한자는 '仁王山'이다. '仁旺山'이 아니다. 혹 후자로 알고 있었다면 한양의 풍수를 왜곡하려고 했던 일제의 농간에 넘어간 것이다. 해서 인왕산 한자 이름 쓰기는 문화재 해설가 시험의 단골 출제 문제다.

 

해발 338m. 단숨에 오르기엔 벅차고 다부진 산행을 작정하기엔 밋밋한 높이다. 그래도 뜻 깊은 산이다.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내사산.內四山) 가운데 풍수적으로 우백호에 해당한다. 주산(主山)인 백악산(속칭 북악산)을 뒤로 한 채 남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에 인왕산, 왼쪽에 좌청룡 낙산을 두었다.

 

무엇이? 경복궁이. 그러니까 왕이 기준이다. 지도에선 인왕산이 왼편이지만 우백호라 불리는 이유다.

인왕산 하면 연상되는 몇 가지. 우선 호랑이다. 1901년에도 경복궁에 호랑이가 출몰한 기록이 있다. 불과 100년 전에도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얘기다. 무학대사도 인왕산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조선이 한양으로 도읍지로 정할 때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주장한 게 그였다. 정도전의 반대에 밀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도 있다. 절친했던 벗 사천 이병연이 숨진 뒤의 심정을 비구름 갠 뒤 인왕산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김신조. 1968년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박정희의 목을 따러" 질러온 길이 바로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다. 그 사건 뒤로 인왕산은 93년 2월 24일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남파 간첩만이 인왕산을 막은 건 아니었다. 예부터 인왕산은 평민에게 참 먼 산이었다. 연산군 때 인왕산 자락의 사찰과 암자.민가가 모두 철거당했다. 그 뒤로 일제시대 전까지 양민은 함부로 오르지도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경복궁을, 다시 말해 왕을 굽어보기 때문이다.

 

그와 유사한 이유로, 그러니까 청와대가 내려다 보인다는 이유로 인왕산에 올라 사진을 찍는 행위는 93년 뒤에도 금지 사항이었다. 한달쯤 전에 은근슬쩍 금지를 풀었다. 망원렌즈 사용만 단속 대상이다. 산속에서 누가 단속을 하냐고?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낮에는 경찰이, 밤에는 군인이 철통 경계 근무 중이다.

인왕산은 휴일 다음날 입산 금지다. 공식적인 이유는 자연 보호다. 자료 -   손민호 기자

 

경희궁~사직공원~인왕산길~경복궁

●총 걷는 거리-9.6㎞

●총 걸리는 시간-2시간 15분

●떠나기 전에-화장실은 궁궐과 공원, 인왕산등산로 등에 있다. 황학정부터 경기상고까지는 매점이나 가게가 없다.

 

왕복교통비와 간단한 간식만 준비한다면 거침없이 오케이! 걷다가 만나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걷기여행의 덤이지요.

 

1. 광화문에서 흥화문(경희궁)까지(0.6㎞/10분)

광화문역 7번 출입구로 나와 왼쪽 큰길을 따라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간다. 국민은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오른쪽에 구세군회관을 지나 ‘서울역사박물관’이 보이고 큰길 따라 100m 정도 더 가면 내일신문사 건물 오른쪽에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이 보인다.

2. 경희궁 산책로 돌고 다시 흥화문으로(1.5㎞/20분)

흥화문 안으로 들어간다. 정면에 보이는 공중전화 부스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져 오른쪽에 있는 화장실 옆길로 들어선다. 30m쯤 가서 왼쪽 가로등 옆 나무계단으로 올라간다. 나무계단이 사라지고 흙길이 된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오르막)길로 간다.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나무계단 끝까지 올라간 왼쪽 윗길로 조금 걸으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나무계단으로 내려간다. 돌로 만든 벤치를 지나 운동장을 돌아 경희궁 철제 울타리를 따라 왼쪽에 가로등이 나오기 전에 있는 돌계단으로 내려오면 다시 흥화문이다. 흥화문을 빠져나온다.

3. 흥화문에서 사직공원까지(1.5㎞/20분)

 

흥화문에서 다시 광화문 방향으로 100m 가다 구세군회관 옆 편의점 ‘바이더웨이(BUY THE WAY)’ 골목으로 들어서 오른쪽 일방통행 길로 간다. 중간에 갈림길은 무시하고 곧장 걸어가다 ‘성곡미술관’과 ‘축구협회’를 지나면 정면에 공사현장이 보인다. 현장 왼쪽에 있는 나무축대와 가드레일 사이로 난 길로 든다. 정면에 보이는 차도로 나간다. 오른쪽 경복궁역 방향으로 150m 가면 나오는 지하도를 건너 출구 반대 방향으로 50m 내려가면 사직공원 입구다.
 

4. 사직공원에서 황학정(활터)까지(0.5㎞/5분)

사직공원 안으로 들어가 정면에 보이는 돌계단에 올라서면 종로도서관이 앞에 보인다. 왼쪽 길로 간다. 계속 가면 활쏘기 연습장이 있는 ‘황학정(黃鶴亭)’이다. 황학정 오른쪽에 작은 정자 ‘한천각(閑天閣)’이 있다. 한천각 오른쪽 ‘인왕산등산로’로 올라간다.

5. 황학정에서 청운공원 정자까지(2.5㎞/40분)

바위 위로 걸어 오르다 체육시설이 있는 정상에 다다르면 왼쪽 길로 간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간이화장실이 있고, 작은 나무다리와 바닥에 통나무를 깐 길 쪽으로 접어들어 5분 정도 걸으면 다시 간이화장실과 체육시설이 나온다.

이제부터는 차도를 왼쪽에 두고 오솔길을 따라 청운공원 정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걷는다. 중간에 초록색 담이 둘러진 흰색 경찰 건물이 나오고,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두어 번 나오지만 무시한다.

6. 정자에서 경기상고 맞은편까지(1㎞/15분)

정자 앞 공원안내 표지판에서 차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분수를 오른쪽에 두고 계속 걸어 내려간다. 왼쪽에 ‘한국컴퓨터지주주식회사’와 ‘효성빌라’가 있는 골목으로 간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큰 차도가 나온다. 왼쪽은 자하문터널, 오른쪽은 경복궁 방향이다. 길 건너편에 경기상고가 있다.

7. 경기상고 맞은편에서 경복궁까지(2㎞/25분)

오른쪽 길로 5분 정도 걸으면 종로소방서 신교파출소가 나온다. 파출소 앞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 청와대 쪽으로 걷는다. 청와대 앞 봉황분수에서 경복궁 담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담장을 따라 계속 걸으면 왼쪽에 경복궁 서문이다. 김승중 걷기모임 유유자적회원

 

청국장 · 두부찌개 전문 ‘사직분식   

서울 사직동 배화여자대학 입구에는 퀴퀴한 청국장 냄새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곳이 있다.

점심시간이면 청국장을 찾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사직분식’은 허영만 작가의 <식객> 4권 청국장편에서도 나온 집이다.

 

이집 메뉴는 청국장에 손으로 크게 뜯은 두부와 함께 끓인 청국장찌개, 두부에 돼지고기 썰어 넣은 두부찌개가 있다. 구수한 청국장이 생각날때 한번 찾아가 보는것은 어떨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