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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거창 석강리 미녀봉

by 구석구석 200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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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석간수 한 모금에 선계가 열리고… 경남 거창 미녀봉
미녀봉은 이름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멀리서 보면 이제 막 멱을 감은 듯 길게 빗어넘긴 머릿결에 봉긋한 가슴(유방봉)의 형상이 실루엣처럼 드러난다. 여기다 새까만 속눈썹과 오똑한 콧날, 도톰한 입술 등을 갖췄으니 영락없는 미인의 얼굴이다.

산행은 가조면 석강리 농공단지 뒤편에서 시작됐다. 300m가량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흙길이다. 호젓한 소나무 숲이 등산로 양쪽으로 펼쳐있고, 20여분을 더 오르면 늙은 당산나무를 만난다. 내친 김에 휴식없이 발걸음을 잇는다. 유방샘까지 5분여거리이다.

약수 산행이라고 해서 유방샘을 아주 크고 잘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망이 크다. 사실 유방샘은 겉보기에 보잘 것이 없다. 하지만 가공한 흔적이 전혀 없고 바위 사이로 졸졸 흐르는 '석간수'의 맛은 여간 달콤하고 시원하지 않다.

유방샘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방봉의 젖샘이며 등·하산길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얼핏 샘이 작다는 이유로 '목도 마르지 않는데 그냥 지나가지'하고 지나쳐버리면 실수하는 셈이다. 곧 급경사가 이어져 입술을 충분히 적셔두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오르막의 경사는 45도는 족히 된다. 그리고 이 같은 급경사는 미녀봉의 이마 부위에 닿을 때까지 계속된다.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땀은 제법 흘려야 할 것이다. 절세미인을 정복하는데 이 정도의 고생은 감수해야지….

바위 끝과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힘겹게 오르니 의외로 절경이 예사롭지 않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가조벌이 장관이다. 고속도로가 실뱀처럼 굽어지고 미녀봉의 음기·양기마을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벌판을 둥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거창의 명산도 놓칠 수 없다.

벌판을 내려다보는 방향에서 가장 오른쪽이 비계산이다. 그리고 왼쪽으로 의상봉과 보해산, 금귀산(마을사람들은 탕건처럼 생겼다고 해서 탕건봉이라고도 부른다) 등이 이어진다. 참고로 거창은 1,000m가 넘는 산이 20개 남짓 될 만큼 명산이 많다.

미녀봉의 이마 부위에 닿는 데 30분이 걸렸다. 지금부터는 능선이나 다름없어 한결 수월하다. 미녀의 눈썹과 콧날,입술,가슴 등을 차례대로 밟는(?) 느낌이 색다르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바위는 사실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힘들다.

바위를 타고 내려섰다 올라가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유방봉이다. 유방봉을 껴앉고 뒤로 돌면 오른쪽에서 통신탑을 머리에 얹은 오도산(1,134m)이 성큼 다가온다. 갈림길과 헬기장을 지나 둔덕처럼 생긴 솔밭 멧부리에 닿는다. 미녀봉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봉우리다.

이 지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 미녀봉 정상을 넘어 계속 능선을 탈 생각이 아니라면 여기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 방향의 왼쪽으로 산행 리본이 수북이 걸려 있으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녀봉 정상까지는 여기서 20분거리다. 왕복 40분이다. 정상석이 있는 곳은 소나무 때문에 전망이 별로다. 따라서 150m를 더 나아가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오도산과 오도치,미녀봉의 나머지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각같아서는 능선을 따라 가조벌의 끝자락 마을까지 가고 싶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다. 이 마을에는 버스가 하루 2편밖에 없어 산행 기점으로 돌아오기가 불편한 탓이다.

하산은 유방샘을 지나 당산나무에 다시 이를 때 왼쪽 음기마을 방면으로 내려가는 것이 권장된다. 취재팀도 이 길을 선택했다. 수십기의 가족묘를 지나 저수지에 이를 때 운이 좋으면 발정기의 장끼와 까투리가 사랑을 나누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자료
부산일보 백충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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