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1023번 지방도로는 하동 화개면에서 마천면으로 이어지는 대성리~한신계곡~형제봉~삼정리~강정리를 지난다.
산행 코스는 영원사 표지석~민박집~식수대~상무주암~문수암~헬기장~삼정산 정상~영원령~전망바위~도근점~영원사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 휴식 포함 6시간40분이 걸린다.
지리산북쪽 전망대인 삼정산
삼정산은 지리산의 줄기이면서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이색적인 산이다. 더구나 이 삼정산에는 상무주암 같은 유명한 수행처가 있어 암자기행을 즐기기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눈을 가득 이고 선 지리산의 주능선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웅석봉 중봉 벽소령 토끼봉 반야봉 노고단 정령치 바래봉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면 냉큼 다가올 것처럼 가까이 느껴져 신비하기까지 하다.
산행기점인 삼정마을로 들어가려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설국의 문을 지나야 한다. 차창 밖으로 살짝 내민 얼굴이 시릴 정도로 찬 공기지만 상큼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마을 앞 슈퍼 근처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면 온통 눈으로 쌓인 삼정산 전체가 들어온다.
정말 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이다. 채비를 마친 후 마을길로 들어서 20m쯤 가면 수백년 됨직한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다. 여기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논둑길을 가로지르면 산자락이 열린다. 5분여 걸으면 청아한 계곡물 소리가 들리고 하늘을 가릴 만큼 우거진 숲이 양쪽으로 호위하듯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크림처럼 부드러운 눈은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예쁜 소리로 화답해 준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 투명한 눈꽃여왕이 옷자락을 펼치며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호스가 터져서 물줄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얼어붙었다. 나무에 화려한 얼음꽃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5분여 전진해서 왼쪽을 보니 숲속에 군인 2명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웬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사람과 똑같은 실물인형이다. 빨치산 전투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삼정산은 지리산의 전망대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역사적 아픔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정상까지 곳곳에서 빨치산 관련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50여분. 눈이 발목을 휠씬 지나 무릎 아래까지 올라온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 즈음 삼거리 표지판이 나오고 널찍한 길로 접어든다. 50여m 가다가 오른쪽으로 산자락에 등산로가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가도 영원사 절을 지나 등산로를 만날 수 있고 산으로 바로 오르는 길이 따로 있다.
영원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맥을 잇는 고승들의 수도장으로, 불타기 전까지 100칸이 넘는 아홉 채의 건물을 가진 대사찰이었다. 조금씩 다가가니 풍경소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울긋불긋 단청이 고운 여느 절과는 다르게 나무색 그대로를 간직한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졌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찰로 눈 세상에서 만난 때문인지 더욱 기품이 느껴진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라면 여기서 마쳐도 좋다. 영원사를 지나면서 눈이 많아 전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 오마이뉴스 2008 안병기
지리산 해발 9백여 미터의 산중턱에 자리한 영원사(055-962-5639)는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창건한 이래 서산, 청매, 포광 스님 등의 당대 선지식들이 주석한 바 있는 수도도량이다. 지리산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영원사는 지리산 주능선의 한가운데인 삼각고지에서 북으로 뻗은 삼정산을 뒤로하고, 벽소령이 병풍처럼 앞으로 펼쳐져 있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다.
한때는 주변의 울창한 수림을 이용하여 너와로 이었던 100칸이 넘는 9채의 전각들로 웅장한 가람의 모습을 지녔을 만큼 내지리(內智異)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영원대사가 영원사 부근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으나 깨우침을 얻지 못해 수도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다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 낚는 시늉을 하고 있는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참선 수도를 하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영원대사가 창건할 때 얽힌 일화부터 예사롭지 않은 수도도량인 영원사는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을 보면 부용영관, 서산대사, 청매, 사명, 지안, 설파 상언, 포광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너와 지붕으로 된 웅장한 선방에 당대의 고승들이 즐비했던 영원사의 위용은 여순사건과 6.25전란으로 가람이 완전 소실되어 지금은 몇 개 남은 주춧돌과 부도들로 웅장했던 옛가람의 모습만 더듬을 뿐이다.
하지만 영원사 인근 산 곳곳에 흩어져 남아 있는 고승들의 호를 딴 부도들은 이름 있는 스님들이 수도하였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서 있다. 또 영원사에서 남쪽으로 마주보이는 산중턱의 토굴에서 오랫동안 참선한 수도승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과 선문염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필단사리 3층 석탑 등도 지난 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을 말해주고 있다.
/글 한국관광공사
빨치산 굴비트재현
영원사에서 한 번 쉬고 다시 오르막을 타면 탁 트인 전망이 좋은 영원령에 도착한다. 아직 정상에 미치지 못했어도 이미 지리산의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아기자기한 능선과 조망 트인 암릉을 40여분 더 지나면 어느새 삼정산 정상에 도착한다. 능선과 능선 사이,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로 타오르는 운무와 눈꽃 같은 가슴 벅찬 비경은 눈 덮인 산을 3시간여 헤맨 노력에 대한 보답을 해준다.
정상에서 맘껏 조망한 후 올라간 방향으로 다시 내려오면 상무주암이 나오고 우측 능선을 타면 원점회귀할 수 있다.
삼정산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내지리의 깊숙한 곳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리의 망루 역할과 함께 이 산의 또 다른 매력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불적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정마을에서 영원사를 거쳐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를 지나는 코스는 불적답사 목적을 훌륭히 이룰 수 있다.
/ 글 부산일보
상주무암 암자에 이르는 길가에도 싸리울이 쳐져 있다. 행인이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막으려고 세웠나 보다. 싸리나무는 참 쓸모가 많다. 마당을 쓸려고 빗자루를 엮기도 하고, 사립문을 만들기도 하고, 이렇게 땅에 꼽아 울타리로 세워두기도 한다. 길가에 세워진 싸리울이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이 싸리울은 달빛과 환상적인 조합을 이룬다. 한겨울 밤, 마당에 쌓인 눈과 은은하게 내비치는 달빛, 그 달빛에 너울거리는 싸리울의 그림자. 어릴 적 내 고향의 밤이 보여주던 풍경이다.
상무주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둘러보니, 전각이라곤 살림을 겸하고 있는 인법당과 법당 왼쪽 바위에 앉힌 작은 산신각뿐이다. 법당 처마에는 '상무주'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경봉 스님의 친필이다.
팔단사리탑
경봉 스님(1892∼1982)은 20세기 한국 불교의 거목이다. 경봉 스님의 친필 현판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에 걸리게 됐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원광이란 낙관은 이 현판이 경봉 스님의 친필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경봉 스님의 법명이 원광이기 때문이다.
경봉 스님은 화장실을 가리키는 해우소라는 말을 처음 쓴 스님으로도 알려져 있다. 상주암은 수행의 맥이 면면히 이어진 암자이다. 선맥으로만 보면 우리나라 어느 절보다 화려한 곳이다. 현재는 1970년대 선방수좌들 사이에서 '도인'으로 불리던 현기 스님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한다.
마당가에는 아주 작은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이 유명한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다. 각운스님은 이곳에서 스승인 혜심 진각이 지은 <선문염송>에 주해를 붙인 <선문염송설화〉30권을 저술했다. 저술을 끝마치자, 붓통 속에서 사리가 갑자기 떨어졌다. 그 사리를 봉안한 탑이 바로 이 탑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필단사리탑’이다.
/ ⓒ 2008 OhmyNews 안병기
문수암은 1965년 혜암 스님이 창건한 암자다. 조계종 10대 종정이셨던 혜암 스님(1920~2001)은 문수암 바로 위에 있는 상무주암에서 용맹정진하신 적이 있다. 문수암은 그 당시에 지은 암자로 알려져 있다.
혜암 스님께선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월산 등 20여 명의 스님과 함께 4년간 결사 안거를 시작한 이래 해인사 선원, 송광사, 통도사, 범어사, 지리산 상무주암, 칠불암 등 여러 선원을 거치면서 용맹정진하신 것으로 알려졌다. 해인사 원당암 앞 돌에 새겨진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스님의 말씀은 유명하다. '생사를 초월한 듯 죽음을 무릅쓰고 화두를 참구하라'는 사자후다.
문수암 전각은 조촐하기 이를 데 없다. 법당과 살림을 겸한 인법당과 요사 그리고 해우소가 전부이다.
법당 입구엔 천인굴이란 굴이 있다. 깊지는 않지만 수십 명은 들어가 앉을 수 있는 넓이다. 전란이 일어나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피난와서 이곳에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정리는 양정마을과 음정, 하정 이렇게 세 마을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이 아담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양정마을 앞 계곡의 소나무 숲이 무척 운치가 있다. 어떻게 이런 절경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살의를 품을 수 있었을까.
하정마을의 선유정
삼정리 가운데 제일 첫 번째 마을인 하정리는 그림같은 마을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 한가운데 서 있는 수령 30~40년가량 된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 풍경에 마지막 화룡점정의 붓질을 가한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에 인민재판소가 있었다고 하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마을의 초입, 계곡가 소나무 숲에는 아담한 정자인 선유정이 홀로 음풍농월을 즐기고 있다. 선유정으로 내려가는 길엔 '석문암(石門岩)'이란 글자가 음각된 바위가 있다. 그 옆에 설치된 안내판은 이곳에 선유정을 세우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선유정은 지난 1976년 마을 사람들이 승천한 선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라고 한다. 비극이 할퀴고 간 자리엔 그 상처를 치유할 다른 것이 필요할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역사란 기억을 먹고 사는 생물"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지금 급격하게 기억상실증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비록 더디게나마 조금씩 진보해 온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혹 누가 아는가. 역사가 기억상실증에 빠진 우리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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