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쳤던 내포(예산)땅은 서울의 세도가들이 이곳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았는데, 추사 김정희 집안으로 영조의 외척이기도 했던 경주 김씨 일문도 그 대표적인 한 예이다.
예산 역사에는 근대로 넘어오는 길목에 몇 몇 굵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지만 그 중에도 「추사체」를 이루어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서예계가 그 영향 안에 머물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빼놓을 수 없다.
추사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부친 노경씨(魯敬氏)와 모친 기계유씨(杞溪兪氏)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뛰어난 인물의 출생설화는 대체로 신비로운 점이 있듯이 추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수태한지 24개월만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거처했던 곳. 영조의 사위였던 추사의 중조부 김한신이 지었다. 따라서 조선 중기의 이른바 ‘대갓집’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안채의 경우 안방, 건넌방, 안대문, 협문, 광 등이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현판에 남아 있는 글씨는 추사의 글을 집자한 것이며, 진품은 아니지만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 갔을 당시 자신을 외로운 소나무에 비유해 그린 ‘세한도’를 볼 수 있다.
그 유명한 추사체가 탄생한 곳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대청이나 마루, 부엌까지 새삼스럽게 보일 것이다. 집 주변으로 추사의 묘와, 중조부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의 열녀문이 있다.
또 5백m쯤 올라가면 추사가 청나라에서 가지고 온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을 볼 수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희귀한 나무다
추사 김정희 영정(보물 제547호)
이 같은 환경 속에서도 추사는 문중의 축복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났다. 첫돌이 지나자마자 말과 글을 터득했고, 세 살 때는 벌써 붓을 잡고 글을 쓰는 흉내를 내기 시작하여 뒷날 절세의 신필로 동양 3국에 널리 이름을 떨칠 조짐을 나타내었다.
추사 생애의 전환점이자 학문과 예술의 개화기는 1809년으로 그 해 11월 추사는 생원시에 합격하고 자제군관자격으로 호조참판이던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으로 가 그곳에서 1810년 3월까지 그는 수많은 학자,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면서 연경학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돌아왔으며, 추사는 지금까지 갈고 닦은 학문을 바탕으로 금석학 연구에 더욱 정진한 결과 「북한산순수비」를 발견하고 「예당금석과 안록」같은 수준 높은 저서를 여러 권 남겨 우리나라 금석학 개조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건넌방에서 바라본 사랑채의 큰방
학문과 벼슬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추사에게도 좌절이 닥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풍양 조씨의 득세에 밀려 9년에 걸친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그는 이 시기에 우리가 오늘날 추사체라고 부르는 독특한 경지의 글씨를 완성하였고 쉽사리 풀리지 않는 유배생활 속에서도 1844년 유명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려냈다.
67세에 서울로 돌아온 추사는 과천에 있는 과지초당과 봉은사를 오고 가며 불도에 몰두하면서 서화와 후학지도로 한가로운 만년을 보내다가 1856년 71세를 일기로 이승을 떠났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의 친필로 새긴 해시계 석년
80여 평에 이르는 추사고택은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 자형의 가옥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가채가 있으며 안채에는 6간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너 방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도 지정 문화재 제43호인 추사고택에 들어서면 서예사상 최고의 경지와 금석학 실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체취가 느낄 수 있다. 이곳저곳 벽에 걸린 선생의 사상이 담긴 주련(柱聯)을 보노라면 잠시 무아경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주련 중에서도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畺菜)와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세한도(歲寒圖)’ 종이에 수묵, 23.7x61.2. 국보 180호. 개인소장
고택 옆에 있는 추사묘역
이 말은 생전에 자식이 없던 추사가 어느 평민의 집에 초대받아 가보니 "좋은 반찬은 바로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그리고 손자의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라는 화목한 한 가정을 보고 느낀 그대로를 표현 한 글로 유명하다.
번듯한 명당집들이 그렇듯이 추사고택도 햇빛을 담뿍 받는 양지바른 자리에 앉아 있다. 또한 추사의 묘역은 고택을 바라보아 왼쪽으로 계곡 하나를 지난 자리에 있다. 나지막한 봉분에 석물 치장도 화려하지 않아 흔히 지나치기 쉽지만, 아직도 그의 학식을 흠모하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이곳을 찾아 선생의 글씨체를 감상하기도 하고 영정이 모셔진 곳에서는 분향도 하며 덕을 기린다. 한지호 / 자동차여행가
영정을 볼 수 있는 사당으로 가는 길/묘 앞에는 그의 성품을 나타내듯 푸른 소나무가 서 있다.
추사고택 / 월간조선
추사고택 관리사무소 041-332-9111 / 09:00~18:00(11~2월 17:00까지) / 연중무휴 / 입장료: 어른 3백원, 청소년 1백50원, 어린이 1백원
신암면 용궁리에 추사고택이 자리잡은 용산(일명 소봉리)의 한자락에 미니 산림욕장장을 조성해 관광객 및 지역주민이 추사선생의 묵향과 소나무향기를 함께 느끼며 심신의 피로를 달랠 수 있도록 했다.
미니 산림욕은 추사 고택 정려문 뒤편의 수풀이 우거진 약 200m² 의 소나무 숲에 잡풀을 완전히 제거하고 복토를 실시한 후 맥문동과 잔디를 심었으며,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와 함께 테이블 벤치를 설치해 가족 나들이객의 휴식은 물론 독서와 사색을 즐길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 됐다/세계일보 2009.9 김영돈시민기자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천안교차로를 벗어나 21번 국도로 아산을 경유, 45번 국도를 갈아타고 예산 방향으로 가다가 신례원 삼거리에서 32번 합덕 방향으로 우회한다. 2km 쯤 가면 왼편으로 고택주유소를 끼고 9번 군 도로를 따라 3km 더 들어가면 넓은 고택주차장에 다다른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신례원 경유 합덕행 버스 또는 예산 행을 타고 신례원 하차 택시를 타면 10분 거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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