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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28번국도-독락당 정혜사지 옥산서원 도덕산 옥산세심마을

by 구석구석 2007.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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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선생의 독락당

400여년 전 조선의 대유학자 회재 이언적 선생이 자연속에서 학문에 전념하겠다며 지은 곳이다. 이런만큼 독락당은 곳곳에 자연과의 교감을 완성시켜주는 공간들을 숨기고 있다. 이것들을 하나씩 찾다보면 마치 흥미로운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독락당 사랑채/이상기

독락당은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집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북쪽에 사묘를 두고, 가운데 서쪽에 어서각을 동쪽에 계정(溪亭)을 두었으며 뒤로는 양진당이 있다.

 

자연을 받아들이는 공간 중 가장 특별한 건 흙담장을 뚫고 나 있는 나무창살이다. 처음 독락당에 들어서면 아담한 뜰과 낮은 집이 예쁘다는 느낌뿐이다. 그리고 몇 걸음 들어가 대청마루에 앉으면 계곡물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좀 더 깊숙이 대청마루로 접어들어 옆문을 열면 절로 탄성이 터진다.

담장에 난 창살을 통해 자계천의 빼어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과 나무창살,계곡의 풍광이 기가 막힌 각도로 맞아들어가고 있다. 홀로 즐긴다는 독락(獨樂)이라는 당호가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자연친화적인 건물 계정(溪亭)/이상기
독락당의 빼어난 미학 중 하나는 계정(溪亭)이라 이름 붙인 정자이다.
이 집의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자리잡은 계정은 숨겨진 보물같은 느낌이다. 계곡의 반석 위에 기둥을 세워 앞으로 돌출시킨 계정은 자계천의 탁 트인 풍광을 끌어안고 있다. 올록볼록한 계자난간의 특이한 문양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 정자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짐작이 된다.

집 구경을 어느 정도 끝내면 계곡에 내려서자. 울창한 나무 그늘에서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잊고 지냈던 '여유'와 만날 수 있다.
'가는 길이 멀고 먼데 또 잠시 머무르는구나/옛 숲과 언덕이 연기처럼 가물거리는데…/군자는 죽음에 이르러도 원망하지 않는 법/ 내 머리가 희기 전에 벼슬을 버리고 이 산에 돌아오리라.'
 

용추와 폭포/이상기
회재가 다시 임금의 부름을 받고 이곳을 떠나며 남긴 시이다. 얼마나 이곳을 사랑했는지 그 심정이 구구절절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꿈에도 그리던 독락당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차가운 북쪽 변방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독락당에서 도덕산 쪽으로 5분여 걸으면 '정혜사지 13층석탑'이 있다. 정혜사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석탑만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신라탑으로는 보기 드물게 13층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일찌감치 국보40호로 지정받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탑에 대한 안내판을 보니 정혜사 또는 탑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은 없고 탑의 형태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왜냐하면 신라시대 탑은 3층과 5층이 많고, 드물게 7층과 9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특이한 양식이면서도 탑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탑의 몸돌이 거대한 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높이 131㎝, 폭 166㎝)을 세웠으며, 그 안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정혜사지 10층석탑/이상기

 

처마의 층급받침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다. 탑 주변에서 주춧돌과 기왓장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너무나 잘 정비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모두가 너무 도식적이다. 과연 이 탑이 신라시대 만들어졌을까? 13층이라는 층수가, 2층부터 13층까지의 지붕돌 양식이 보통의 신라 석탑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또 뭔지는 모르지만 감은사탑이나 석가탑, 그리고 창림사탑 등 전형적인 신라탑과는 그 느낌도 다르다.

 

정혜사(淨惠寺)라는 절 이름은 또 어떤가? 맑게 베푸는 절로 풀어볼 수 있는데, 정혜가 선정과 지혜의 준말인 정혜(定慧)는 아닐까? 그렇다면 정혜사는 선종계열의 절이 된다. 그러나 당시 선종 계열의 절은 수도인 서라벌을 떠나 지방에 만들어졌다. 도대체 풀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정혜사지 13층석탑은 경주지역에 남아 있는 최대의 미스터리 석탑이다.

 
추사, 한석봉의 명필이 있는… 옥산서원
독락당을 보고 돌아나오면 몇 백m 아래쪽에 옥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회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옥산서원은 건물보다도 주변의 풍광이 더 인상적이다. 바로 앞에 널찍한 너럭바위들이 층을 이루며 시원스레 깔려 있고 그 위를 쉼없이 타고 넘는 냇물은 곳곳마다 아담한 소(沼)와 폭포를 빚어 놓았다.
 
옥산서원에서 바라보는 자옥산/이상기 

 

물가 양편에는 참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 노목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절벽 사이를 이어주는 아담한 나무다리를 건너면 소꿉놀이하던 옛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위 풍광을 맘껏 즐긴 후 옥산서원으로 들어가자.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는 즐거움이라는 뜻의 역락문(亦樂門),시작도 끝도 없는 태허의 상태를 뜻하는 무변루(無邊樓),마음과 덕과 지식의 근본을 구하는 집이라는 구인당(求仁堂) 등 건물마다 근사한 이름이 붙어 있다.
서원은 강당이자 중심건물인 구인당(求仁堂), 기숙사인 동서재, 서원의 누각인 무변루(無邊樓), 장서각인 경각과 장판각 그리고 청분각, 사당인 체인묘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으로 들어서면 무변루가 나타나고 그 안으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있다. 마당 건너 구인당이 있고, 좌우에는 동서재에 해당하는 민구재와 암서재가 있다.
  
추사와 한석봉이 쓴 옥산서원현판/이상기

 

구인당에는 옥산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 보면 “만력 갑술(1574년) 선조 임금의 사액을 받은 지 266년 되는 기해(1839년)에 불이 나 다시 썼다”는 글이 적혀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을는지. 추사와 관련된 어떤 낙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루에 올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옥산서원이라는 또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끝 부분에 구액모게(舊額摹揭)라는 글자를 볼 수 있는데 이를 풀이하면 옛날의 편액 즉 원래의 편액을 본떠서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편액이 바로 한석봉이 썼다는 그 글씨를 모방한 셈이 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바로 옥산서원에서 조선 최고 명필의 글씨를 대조해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회재 이언적선생(1491~1553)을 모신 서원으로 선조 5년(1572)에 지어졌다. 선조 7년에 옥산서원이라 하게 되었는데, 서원 주위에 자옥산, 도덕산, 화개산, 무학산이 둘러 싸고 증심대, 관어대, 세심대 등 아름다운 자연을 끼고있는 것이 이 서원의 두드러진 점이다. 규모가 100여간으로 크고 이름난 이 서원은 동방 오현의 한 분인 이언적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며, 보물 제525호로 지정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총866종 4,111책의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 / 한국관광공사

 

구인당을 본 다음 건물 왼쪽으로 돌아가면 사당 옆에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가 보인다. 이 신도비는 비각 안에 들어 있어 그 글자를 일일이 읽어볼 수가 없다. 그러나 안내판을 통해 비문은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아계 이산해가 글씨를 썼다고 한다. 이들 모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다. 회재 선생은 이(理)와 기(氣)중 이를 우선시하는 이선기후설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이를 우선시하는 주리론은 이후 퇴계 이황에게 전해져 조선 성리학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구인당을 본 다음 건물 왼쪽으로 돌아가면 사당 옆에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가 보인다. 이 신도비는 비각 안에 들어 있어 그 글자를 일일이 읽어볼 수가 없다. 그러나 안내판을 통해 비문은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아계 이산해가 글씨를 썼다고 한다. 이들 모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다. 회재 선생은 이(理)와 기(氣)중 이를 우선시하는 이선기후설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이를 우선시하는 주리론은 이후 퇴계 이황에게 전해져 조선 성리학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부산일보 / 오마이뉴스

 

이언적의 발자취 더듬으며 안강벌 조망하는 도덕산

 두덕산(斗德山)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 산은 산세야 그리 빼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아담하고 조망이 시원한 정겨운 산이다. 남쪽의 자옥산(紫玉山·569.9m)과는 능선을 맞대고 이웃해 있으며, 산기슭에는 볼 만한 문화유적도 많다. 동쪽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옥산천(玉山川)의 자연과 어우러진 독락당과 옥산서원을 비롯해 주변에 산재한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여유를 부리더라도 겨울철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산행 들머리가 되는 시내버스 종점인 옥산1리 계정 마을에는 보물 제413호인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조선시대 대유학자요, 영남 오현(五賢)의 한 분이신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42세 때(1532년) 고향으로 돌아와 약 6년간 별당과 서재로 쓰면서 거처한 곳이다. 회재 선생은 수많은 문헌을 저술하여 성리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퇴계 이황 등에게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포장도로는 왼편 계곡쪽으로 20분 정도 가다가 비포장길로 바뀌고, 곧이어 왼편에 ‘도덕암 1.2km’ 표지판을 보게 된다. 비포장길을 계속 따르면 채석장을 만나게 되는데, 채석장 못미처에 도덕암으로 오르는 도로도 있다.

 

도덕암(054-761-8314 ) 표지판이 가리키는 숲속 등산로로 접어든다. 오르막이지만 여유를 갖고 발걸음을 옮기면 숲은 짙어지고 산새들 지저귐 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와 선선한 느낌을 갖는다. 산비탈을 오르면 오른편에 잘 단장된 여강이씨 묘를 만나고, 다시 10분쯤이면 산등성이 갈림길(도덕산 1.5km, 도덕암 0.4km)이다.

 

산등성이를 곧바로 오르면 도덕산으로 이어지지만, 오른편 숲 사이로 보이는 도덕암으로 향한다. 비탈길을 내려서면 산속 비포장길을 만나면서 곧바로 도덕암에 닿게 된다.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742-765) 때 세워져 1,200여 년이 넘었다는 도덕암은 볼품없이 초라하지만, 입구의 고목이 세월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또 깎아지른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절벽 위의 널찍한 반석에 앉힌 아담한 당우는 애초부터 명당터에 잡은 천년고찰임을 읽을 수 있다. 회재 선생이 자주 찾기도 했다는 이곳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시원한 석간수 한 잔으로 모든 번뇌를 잊는다. 

 

암자에서 도덕산 상봉까지는 0.9km로 35분 정도면 넉넉하다. 돌탑이 선 암자 입구에서 절벽 위 산신각 옆을 지나 5분이면 무덤을 지난다.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갑갑한 느낌을 주지만 경사가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다보면 주변 조망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요소요소에 로프를 설치하여 까다로운 곳은 없지만, 등산로가 얼어붙으면 안전에 신경 써야할 구간이다. 

 

제법 많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즈음이면 주능선 상에 이정표(자옥산 1.9km, 도덕암 0.9km)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고, 오른편으로 곧장 올라서면 도덕산 정상이다. 산정에는 정상표석이 서있고, 삼각점(기계 26, 1979.8 재설)은 정상석 위쪽 암봉으로 올라 북쪽으로 약 50m 지점에 있다. 삼각점 옆에는 전망대 바위가 있어 주변 조망을 즐기기에 좋다.

 

도덕산은 경주시 북쪽 경계를 가르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시원하고 탁 트인 주변 조망은 일망무제다. 남쪽의 자옥산이 능선으로 연결되고, 인근에 삼성산, 천장산, 봉좌산, 어래산 등이 있어 도덕산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북쪽으로는 보현산, 침곡산, 비학산이, 남으로는 낙동정맥을 따라 단석산을 넘어 영남알프스의 연봉들도 아련하다. 동쪽에는 포항 시가지와 호미곶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동해바다가 눈부시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이으면 천장산 또는 봉좌산 어래산을 연결하는 산행이 가능하지만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무리다. 곧바로 남쪽의 주능선을 타고 자옥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도덕암 갈림길을 지나자 오른편에 널찍한 묘지가 있고, 곧이어 도덕산~자옥산 간 주능선에서 최고의 전망을 제공해주는 바위전망대를 만난다. 자옥산 자락에 파묻힌 옥산리와 그 외곽에 펼쳐지는 안강의 너른 들판이 시원하고, 서쪽 아래로는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와 삼포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15분 가량 내려서면 풍산산악회가 세운 이정표(도덕산 1.16km, 자옥산 0.76km, 정혜사지 13층석탑 1.65km, 오배마을 1.43km)가 있는 사거리 안부에 이른다. 자옥산은 이 안부에서 가파른 능선을 15분 정도 치올라야 하는데, 중간에 묘를 지나 정상에 선다.

 

산정에는 옥산산수회라는 검은 표석이 박힌 돌탑과 세아제강산악회(2004.5.30)에서 세운 정상석이 자리한다. 옆에는 널따란 반석이 있어 쉼터를 제공하지만, 정작 숲속에 파묻힌 정상에서는 주변 조망을 즐길 수 없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오면 갈림길 이정표(하곡저수지 4.24km, 도덕산 1.9km, 계정마을 1.74km)가 서있고, 동쪽으로 약간만 이동하면 전망이 시원한 바위가 나온다. 발아래 계정 마을로 길을 잡고 바위틈 사이로 내려선다. 묘지가 있는 곳까지 20분쯤은 경사가 가파르고 자갈길이라 제법 미끄러운 편이다. 이후 산장식당이 있는 도로변까지는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을 지나 15분이면 닿는다.

 

도로 건너편에는 사적 제154호인 옥산서원이 옥산천변의 고목숲 아래에 터를 잡고 있다. 경주부윤 이제민이 도내 유림들과 더불어 회재 이언적 선생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선생 사후 19년만인 선조 5년(1572)에 지은 것이다. 조선조 말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훼손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옥산서원은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강의실인 구인당 바깥의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안쪽에 걸린 또 다른 서체의 옥산서원 현판은 아계 이산해가, 그리고 구인당 제호 현판은 한석봉이 쓴 글이라 한다. 또 보물 제524호인 정덕계유사마방목, 제525호인 삼국사기, 제526호인 해동명적을 비롯해 약230종 2,197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다. 

 

산행과 함께 도덕산 자락에 깃들어 있는 회재 선생의 예사롭지 않은 발자취와 고풍의 문화유산을 더듬다보면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운다.  월간산 황계복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

 

산행길잡이
○독락당~정혜사지 13층석탑~도덕암~도덕산 정상~안부 갈림길(푯말)~자옥산 정상~옥산서원 <4시간>
○옥산리(산장식당)~자옥산 정상~도덕산 정상~봉좌산~갈림길~동자 마을~봉계1리 치동 마을 <6시간30분>
○오룡리 성산저수지~자옥산~도덕산~미룡 마을~오룡리 성산저수지 <4시간>
○독락당~정혜사지 13층석탑~자옥산·도덕산 안부 갈림길~도덕산 정상~독락당~옥산서원 <3시간>
 

숙 식  산행들머리인 옥산리에는 숙박시설로 옥산모텔과 자옥산모텔이 있고, 산장식당, 솔밭식당, 초원식당, 기와집식당 등 다수의 음식점이 있다. 인근의 안강읍내에도 숙박시설과 식당이 많이 있으나 경주시내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경주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이름난 곳이라 호텔을 비롯해 장급 여관은 물론 콘도까지 다양하게 있어 숙박에 큰 불편이 없으며, 음식점도 곳곳에 다양하게 있다.  

 

옥산세심마을 054-762-6148, 011-9599-6148

조선조 올곧기로 소문난 회재 이언적 선생이 학문하던 독락당이 있으며 효심으로 소문난 이전인의 정신과 선조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으로 사산오대(四山五臺)로 둘러싸인 음중음택(陰中陰宅)의 형상을 지닌 포근한 마을이다.

 

사계절의 변호가 뛰어나며 특히 늦가을 정취가 낭만적인데 낙엽이 뒹구는 골짜기에 작은 폭포가 아기자기하게 걸려있고 그 위로는 외나무다리가 드리워 한층 운치를 돋우고 있다.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과 맑은 계곡이 흐르는 빼어난 주변경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마을 박물관으로 불리며 마을에 동화되어 지내다 보면 어느덧 세속의 찌든때는 말끔히 없어지는 청량제같은 휴식처로 유명한 마을이다.

 

* 농사체험 - 모 심기, 고구마 캐기, 버섯종균 넣기
* 전통헬스체험 - 지게지기, 널뛰기, 떡메치기, 제기만들기, 새끼꼬기
* 먹거리체험 - 손칼국수 만들기, 밤.고구마구워먹기
* 고기잡이체험 - 고기잡이체험장, 얼음 썰매타기
* 알거리체험 - 회재할배배우기, 세심대, 외나무 다리건너기
* 전통놀이체험 - 굴렁쇠굴리기, 쌀가마니 지고달리기, 줄다리기, 투호
* 도자기체험 - 도자기빚기

 

마을민박  가람이네 054-762-6148 / 30,000원 ~ 50,000원

세심마을에는 오랜 풍상에도 변치 않고 그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옥산서원(玉山書院)과 독락당(獨樂堂), 그리고 이를 둘러싼 수려한 자 연이 있다. 이 곳에서 마을의 빼어난 경관과 지난 400년 동안 꿋꿋이 지켜온 선조의 올곧은 선비정신과 효 사상을 재미있고 유익한 테마체험으로 느껴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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