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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하남 춘궁동 이성산성 춘궁리5층석탑 고골낚시터 고골풍경채 광주향교

by 구석구석 2007.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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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사적 제 422호 하남 이성산성
 
이성산성의 성벽은 수직이 아니라 60°로 기울어 있다. 성벽의 돌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고 옥수수알처럼 몽실몽실 이쁘게 빼곡이 쌓아 놓았다.
 
 "성벽이 비스듬히 세워져서 성을 침입하는 적들이 돌을 빼도 성이 무너지지  않죠. 대신 기어오르기가 쉽지만 라운딩이 돼서 미끄러지게 되구요. 세계에서  유일한 성벽입니다. 자랑거리지요"   향토사학자이며 백제사연구가인 한종섭(59)씨는 이성산성의 성돌은  화강암인데 근처는 물론 인근 남한산성 일대에도 화강암이 없어 한강을 넘어 구리시(구리시  아차산성은 화강암으로 축성) 일대에서 옮겨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벽 높이가 6∼7m, 둘레 1천665m에 달하는 이성산성에 대해 학계에서는 축조시기를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한 6세기 중반 이후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성산성 안 저수지터에서는 7세기 신라인들이 길이 측량을 위해 사용하던 도량형의 하나인 당척(唐尺)이 한양대발굴단에 의해 발굴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자는 전체 길이가 29.8㎝이며 9개의 눈금을 같은 간격으로 측면에 새긴 것으로 중국 당나라가 사용하던 것과 동일하다.

당척이 사용된 건축물로는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등이 보고돼 있었으며  발굴단은 이성산성 건물터 2곳이 실제 당척으로 축조됐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한씨는 그러나 이성산성 표면 곳곳에서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골호(화장을  해서뼈를 넣은 항아리)가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 백제인들이 성을 쌓은 뒤 신라인들이 점령, 무덤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해와 달, 금성은 하늘에서 가장 밝아 고대인의 숭배대상이었다. 9각과 8각, 12각이 산성의 높은 곳부터 차례로 위치하는 것으로 봐 일월성신을 모시는 왕의 신전이라고 한씨는 풀이했다. 한씨는 남미 마야의 신전 배치도가 이와 똑같다며 증거로 들었다. 성돌인 화강암을 옮기기 위해 엄청난 인력이 동원됐고 왕이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 것으로 봐 백제의 왕도(王都)라는 것이 한씨의 해석이다.

조선 후기 정약용과 홍경모는 이성산성을 백제 시조 온조왕의 고읍으로  보았고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이성산에 백제의 성지가 있다고 했다. 춘궁동은 춘장과 궁말이 합쳐져서 조선시대부터 써오고 있는 명칭인데 춘장은 이성산성 아래 마을이고, 궁말은 궁궐마을이라는 해석도 있다.

88년부터 지난해말 9차까지 진행된 이성산성 발굴작업에서는 토제와 철제마  등 3천352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성산성은 2000년 9월 사적 제422호로 지정됐으며 하남시는 공원으로 조성키로하고 토지를 매입중이다.
 
 

보물 제12호 춘궁리 5층석탑(춘궁동 466)

 

이 석탑은 고려 초기의 절터로는 최대 규모인 동사지에 3층 석탑과 나란히 남동향으로 서 있는 고려 시대의 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높이 7.5m의 이 석탑은 경기도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큰 탑이다.

 
이 탑의 상 • 하기단의 면석과 갑신은 여러 장의 사각형 석재로 구성되었고 상층기단 갑석에는 얕은 부면이 있다.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버팀기둥이 새겨져 있다. 1층 탑신은 상하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다른 석탑과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1층 탑신의 하단은 4장의 방형 석재로, 그리고 상단은 1장의 석재로 만들었는데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1층부터 3층까지의 지붕돌은 각가 4장의 석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4층은 2장, 5층은 1장의 석재로 제작되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을 보이고 있다. 상륜에는 노반석만이 남아 있다.


또 탑신부는 초층탑신이 5개석으로 이루어진 것과 옥개석 하면의 받침이 5단에서 4단, 3단으로 줄어든 것등 구조상 불규칙한 면을 보이고 있다. 각 층의 체감률은 바로 옆의 3층석탑과 비슷하나 그 규모가 큰데 비하여 각부의 조화가 잘 잡혀 있어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정사각형의 탑으로 탑신부의 각층 비례도 조화를 이루는등 양식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10세기 후반의 미탑이라 하겠다.

 

이 탑은 기단의 아래층이 일부 매몰되었고, 탑의 상륜부가 남아 있지 않는등 손상된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하층 기단의 각 면에는 3개씩의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우주;隅柱]과 버팀 기둥[탱주; 柱]이 새겨 있다.


탑신부의 각 층은 탑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탑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지붕돌의 지붕인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들어올려져 있다. 이 탑은 2층 이상의 높이가 1층에 비해 급격히 낮아지고 있으나 기단과 지붕돌의 수법에서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면이 보이고 있다.

 

 

춘궁동 500번지 고골낚시터 031-794-8584

 

고골낚시터는 오래된 낚시터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만든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몇 년전까지만 해도 향어 낚시로 유명세를 올릴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어종을 방류하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낚시터는 크게 두개의 구역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A구역은 약 50석 규모의 작은 구역과 130석 규모의 B 구역으로 나뉜다.

  

면적 : 2.3ha / 수심 : 2~3m / 수원 : 자연수 / 좌대 : 180석 / 어종 : 붕어, 잉어, 향어 / 주차시설 : 100대 / 입어료 : 25,000원 / 기타시설 : 매점, 원두막

 

찾아가는 길  구리-판교간 고속도로의 서하남 IC로 나와서 하남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직진. 언덕을 넘어 s.k 주소를 지나 하님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우측에 '라이브카페 오줌싸게'(파랑색간판)가 나오는데 이를 끼고 우회전하면 됨.

 

 

상사창동 338 고골풍경채 031-793-0440

고골 - 골낚시터 지나 - 고골사거리 직진, 좌측에 하나로마트 - 샘재골 사거리서 우회전 후 직진 5분 거리에 위치한다. 

 

 

 하남시에는 고골 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다. 그 고골에 풍경이 아름다워 풍경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음식점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고급 호텔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최고급 요리인 캐비아로 유명한 철갑상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그것도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저렴하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요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그 귀하다는 산천어도 함께 맛볼 수 있으며, 한방오리탕 및 들깨수제비 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숯불장어구이를 취급하는 곳으로 귀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모두 모아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내의 분위기 역시 화이트의 톤과 나무의 질감을 적절히 혼합해 놓은 매우 깨끗하고 깔끔한 컨셉으로 꾸며놓았다. 약 1억5천만년 전 중생대 초가부터 멸종되지 않고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어류로 강한 생명력을 지녔으며, 10여 종의 필수아미노산 DHA, EPA 등 성분을 지닌 철갑상어는 회와 캐비아로 구분하여 식탁에 올리는데, 회는 대, 중, 소의 단위로 70.000원부터 130.000원까지, 캐비아는 4쪽 단위로 50.000원에 내어놓으며, 산천어회무침의 경우 역시 대, 중, 소의 단위로 35.000원부터 70.000원까지의 가격으로 손님상에 올려놓는다. 또한 오리훈제와 들깨수제비를 묶어서 35.000원에 내어놓는 비교적 저렴한 메뉴를 갖춰놓았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고골 풍경채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11시까지이다.

 

상사창동 343-3 마당넓은집 031-793-3233 

 

남한산성 북문 밑 첫동네의  "마당넓은집"은 잠실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말 그대로 마당이 참 넓은 집이다. 10년전부터 계속 이곳에서 음식점을 하시고 있는 사장님은 손님들에게 반찬 한가지라도 더 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장사를 하신다. 빽빽하게 있는 빌딩사이에서는 맛볼수 없는 자연을 벗삼아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족구장도 마련이 되어 있어서 동호회나 소규모 모임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교산동227-3  광주향교 031-791-6857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의 향교는 이성산성 아래에 있던 것을 숙종29년(170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자제를 교육하던 시설로써 경내에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 동무, 서무를 비롯한 6동의 건물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공자와 4성, 송나라와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광주향교는 지금의 수원, 화성, 의왕, 성남, 광주, 강동, 강남, 송파까지 관장하던 전국에서 제일 큰 향교였다고 한다.

 

 

 

 

 

교산동55-3 명마애 약사불좌상

삼각형 바위 면에 조각된 마애불로서 높이 약 93cm 정도의 약사불이다.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조각술이 정교하고 불신의 비례도 매우 훌륭하여 보물 제981호 이다.

 

이 불상의 왼쪽에 태평이년 정축 칠월이십구일 고석불재여사을 중수위금상황제만세원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태평 2년(977) 정축 7월 29일에 옛 석불이 있던 것을 중수하오니 지금 황제의 만세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이다.
옆에는 조그마한 폭포와 약수터가 있어서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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