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35번국도 경주국립공원 용장리
신라인들이 1천년 동안 '불국토'(佛國土)로 여겨왔던 곳이다. 불국토를 보고나면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는 불성을 조금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을까. 남산은 절터와 불상이 각각 1백개가 넘고 석탑도 80여개에 이른다. 하루 또는 이틀 일정으로는 '남산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터.
용장골은 남산의 대표적 봉우리인 금오봉(金鰲峰.4백68m)과 고위봉(高位峰.4백94m)사이에 있다.
국도 35호선상의 용장1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4백m 정도 포장도로를 걸으면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마을이 끝난다. 용장사 터로 가려면 이 지점에서 징검다리를 밟고 개울을 건너야 한다.
계곡 주변에서는 중간중간 '주민들이 계곡 물을 식수로 쓰고 있다. 더럽히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전국의 계곡이 오염으로 찌들어 있는 요즘 아닌가. 시원한 청량수(淸凉水)를 한 모금 마신 기분이다. 과연 남산은 '불국토'라는 생각이 든다.
산길이 끊어지는 곳에서 개울을 건넜다가 이윽고 다시 개울을 넘어오면 산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 길을 따라 신우대(산에서 저절로 자라는 대나무)가 우거진 수풀 사이를 4백m 정도 걸으면 시야가 트이며 용장사 터가 나타난다. 우거진 잡초 사이로 기와 조각과 주춧돌 몇개가 남아 있다. 절터 뒤편에 남아 있는 높은 석축은 전에는 제법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 대현(大賢) 스님이 법상종을 개창(開創)한 절로 알려져 있으나 조선조 어느 때쯤부터 스러져버렸다.
절터 안내판에는 조선시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93)이 이곳에 머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고 소개돼 있다. '금오신화'의 '금오'는 용장사가 자리잡은 '금오봉'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장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앉았는데/깰 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김시습의 한시 '용장사'의 한글 번역 중에서)
절터에서 동북 방향을 바라보면 높은 바위 위에 허연 삼층석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부처님이 굽어 보며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모습 같다. 용장사 삼층석탑(보물 186호)이다. 용장사 터에서 탑까지 오르려면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표식 리본을 따라가면 된다. 봉우리에 거의 다 올랐다고 생각될 때쯤 석불좌상(石佛坐像.보물 187호)과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보물 913호)이 나타난다.
마애여래불 앞을 지나 봉우리의 오른편을 돌아오르면 마침내 삼층석탑에 닿는다. 석탑 앞에 서면 남쪽으로 고위봉이 우뚝 서 있고 서쪽으로 형산강 줄기를 머금은 배리(拜里)평야가 펼쳐진다.
신라시대 석탑이 보통 상.하층의 기단(基壇)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이 석탑은 상층 기단 하나 밖에 없다. 석탑이 서 있는, 높이 4백m 상당의 봉우리 전체가 하층 기단인 셈이다. 석탑의 높이는 4.5m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탑'이라는 말이 나온 연유는 여기에 있을까. 4.5m의 구조물로 산과 하늘을 동시에 보듬은 마음 씀씀이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감싸안고 동시에 삼라만상 중의 하나로 존재하고자 하는 게 부처님의 마음,불심이 아닐지. 자연스레 탑 앞에서 두 손이 모아졌다.'부디 삼라만상 모두 성불(成佛)하소서'.
김시습이 보았던 사슴이 산 속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지도 모르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구름 속에 머물러 있던 해가 어느새 삼층석탑 위로 희미한 햇빛을 뿌리고 있었다.
용장계곡은 다시 열반골, 은적골, 법당골, 절골, 탑상골, 연화대골, 이영재골, 못골 등으로 갈라지며 이골에는 용장사지를 비롯하여 22곳의 절터와 6구의 불상과 11기의 탑이 있다. 중앙일보 성시윤기자
신라의 수도 경주는 국보 22 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거대한 박물관으로 1997년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2000년에는 경주시의 5개 역사 유적 지구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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