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화북 방면 원점회귀코스 뚫렸다
장각계곡
면소재지에서 49번 지방도를 따라 2km쯤 남하하자 소나무숲 울창한 상주학생야영장에 이어 상오리 장각계곡 입구.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으로 오르는 근접계곡으로 이곳에서 천황봉에서 시작한 시냇물은 장각동 계곡을 굽이쳐 흐른다. 6m 높이의 절벽을 타고 떨어져 작은 못을 이루고 있다. 장각폭포 위에는 바위에 금란정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폭포 주변의 소나무 숲과 붉게 물든 진달래가 잘도 어우러진다.
▲ 산행 기점에 위치한 장각폭포와 금란정. 영화 촬영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
2002년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 촬영지이기도 하다. 좁은 길을 계속 올라가면 신라 말 또는 고려 때 석탑으로 추정되는 충주 중앙탑과 흡사한 상오리 칠층석탑(보물 제683호)이 밭 한가운데 서 있으며 더 49번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면 오승폭포와 우측에 쌍용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장각 마을은 17가구가 모여 사는 제법 커다란 산중 마을. 그렇지만 인적은 보이지 않고 대신 커다란 개들이 으르렁대는 소리만 들려온다.
▲ 상오리 7층 석탑(보물 제683호). 신라 말이나 고려 때 탑으로 추정된다. |
마지막 민가(천황봉 4.7km, 비로봉 4.3km)를 지나 골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람이 불어온다. 매섭지만 차갑기보다는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15년간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들어선다는 설렘과 짜릿함 때문일 것이다. 수더분한 분위기의 계곡 가 산길은 눈이 제법 쌓여 있지만 눈길은 잘 나 있다. 새해 첫날을 맞아 천황봉 일출을 맞기 위해 주민들을 비롯한 산행객들이 뚫어놓은 눈길이었다.
마을을 벗어난 지 20분쯤 지나 골 갈림목에 이르자 산길은 왼쪽 계곡을 따르다 ‘해발 720m’ 안내판(천황봉 2.6km, 장각동 1.65km)이 서 있는 지점에서 급사면으로 올라붙는다.
15년만에 개방된 장각계곡
장각계곡이 15년만에 개방됐다. 91년 제1기 자연휴식년제 이후 2005년 말까지 굳게 문이 닫혀 있던 천황봉 동쪽 골짜기인 장각계곡이 15년간 간직해온 자연의 비밀을 공개한 것. 장각계곡은 제4기 휴식년제(00~02년) 시행 직후 개방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7,000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아치형 다리 3개와 출렁다리 1개, 안내판을 설치하고, 주민들 또한 곳곳에 화장실을 세우고 냇가를 정리하는 등 손님맞이 준비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석연찮은 이유로 제5기 자연휴식년제 기간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시어동 코스와 잇는 원점회귀산행이 이루어지면 등산인들이 화북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던 화북면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 개방이 결정되기 직전까지도 “등산인들이 들어서면 자연이 훼손된다”, “마을 직전에 백두대간을 따르는 우회로를 개설하라”는 등 골짜기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한농복구회 주민들이 개방을 반대해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답사 결과 장각동계곡은 어떤 이유에서 15년간이나 통제해왔는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크게 훼손됐던 지역도 아니고, 더욱이 저런 경관이 훼손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막았으리라 생각되는 곳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속리산 관리사무소측은 휴식년제 실시 전과 후의 생태계 차이를 비교할 만한 자료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장각계곡은 제4기 휴식년제 기간중 탐방용 시설물을 설치했으나, 이후 5년 가까이 지난 뒤에서야 개방했다. |
어느새 천황봉 남쪽으로 내리닫은 백두대간이 눈 아래로 바라보인다. 그러고 보니 장각계곡은 백두대간과 속리산 동릉 사이에 깊이 파인 골짜기였다. 대간뿐 아니라 수많은 지능선들은 천황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능선 하나하나 기암을 등에 얹고 소나무숲이 우거져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백두대간 상의 형제봉(832m)에서 남서쪽으로 갈래친 능선 상에 솟구친 구병산(876.5m)은 보은군이 자랑하는 명산. 보은군은 구봉산에서 형제봉~천황봉~문장대~관음봉~묘봉~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충북알프스라 명명하고, 등산인들의 유치에 힘쓰고 있다고 김웅식씨가 알려준다. 한길영 계장은 또한 구병산 자락은 6·25때 피난처였고, 장각동(長角洞)은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우복동(牛腹洞)의 쇠뿔에 해당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설명해준다.
급경사 오르막은 잘룩이에서 잠시 숨을 죽인 다음 10여 분 더 올려치자 주능선 직전의 널찍한 헬기장에 올라선다. 그곳에는 멋진 조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으로 기암괴봉이 무수히 쌓인 속리산 주능선이 곁가지를 펼치면서 관음봉을 향해 뻗어나가고, 문장대(1,054m) 직전 오른쪽으로 맥을 튼 백두대간은 청화산(984m)을 거쳐 북쪽 멀리 희양산(998m)까지 내닫고 있다. 또한 남으로도 뚝 떨어져 맥이 끊길 듯하던 대간은 형제봉을 일으킨 다음 보은땅을 가로지르고 있다.
▲ 천황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 뒤로 문장대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화려하게 뻗어 있다. |
주능선을 밟으며 속리산 정상인 천황봉(1,057.7m)으로 향하는 사이 발아래로 장각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자연의 모든 재앙을 다 막아줄 것처럼 기운찬 능선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바닥은 널찍한 터를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택리지의 저자인 청화산인 이중환(1692-1756)이 짚은 우복동이 장각동을 일컫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위꽃 화려하게 피어오른 주능선
▲ 커다란 바윗덩이가 쌓여 이루어진 자연석문인 상고석문. |
천황봉 남쪽 바로 아래 턱마루에서 청주댁들이 싸온 음식을 먹으며 조망을 즐긴 다음 정오경 문장대로 향한다. 천황봉에서 바라보이는 비로봉(1,008m)과 문수봉은 커다란 꽃봉오리요, 그 사이 사이에는 기암들은 작은 바위꽃들이다. 우리는 그 바위꽃을 뛰어드는 벌과 나비였다. 스윽, 스윽 소리 나는 산죽밭 사이 눈길을 따르는 맛도 즐겁다. 40~50대 중년의 나이에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데도 얼굴에는 미소가 넘쳤다. 겨울산이 주는 즐거움이다.
상고암 갈림목(경업대 1.9km, 상고암 0.7km, 법주사 5.1km)을 지나 자연바위 터널이 나타나자 유정희씨는 “엊저녁 내가 쌓아놓은 것”이라며 경주매씨에게 농담을 던진다. 2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바윗덩이가 터널을 형성하고, 그 위에 덮개바위까지 얹은 상고석문이다. 상환석문(중석문)과 더불어 속리산 명물로 꼽히는 상고석문은 커다란 바위가 이렇게 조화롭게 모여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강원도 명산으로 새해맞이 산행을 다녀온 이들에게 “먼지만 풀풀 날린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눈 덮인 산길을 걷는 맛은 더더욱 즐겁게 느껴지고, 산죽 우거진 사면길로 들어서면 새 생명의 축복을 받는 느낌이다. 게다가 높이가 낮아지면서 등뒤로 백두대간과 구병산은 더욱 힘차게 꿈틀거리며 힘을 더해준다.
산죽밭을 가로질러 무명봉을 넘어서자 갑자기 눈이 부셔온다. 문장대로 뻗은 능선 위의 기암들이 눈을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인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는데, 매끈하면서도 기운찬 입석대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여 또 한 번 숨을 멈추게 한다. 가까이에서 보려고 가슴이 닿을 만큼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자 이제 입석대는 시퍼렇게 날을 치켜세우고 있다. 속리산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주능선과 지능선 등날을 따라 기암들이 무수히 솟구치고, 기암 사이사이가 산죽들로 파랗게 빛나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경업대 갈림목(경업대 0.4km, 문장대 1.3km, 천황봉 2.1km)을 지나 신선대에 올라서자 예상과 달리 휴게소(043-544-2001)가 문을 열어놓고 있다. 대개 휴일에만 문을 열어놓는데, 이 날 따라 주인 최정서씨가 나와 있었다. 휴게소에서 오뎅국물에 신선주 한 잔 마시는 사이 문장대쪽에서 등산인들이 줄을 이어 올라온다. 오후 1시20분, 멀리서 속리산을 찾은 등산인들이 한창 산행할 시간이다.
▲ 문장대에서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있다. |
청법대 능선에 올라서자 드디어 문장대가 고개를 치켜든 채 반겨준다. 오후 2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휴게소 안은 썰렁하다. 산행객들이 벌써 하산을 시작한 탓이다.
“옛날에는 막걸리집에 색시집까지 있던 곳이랍니다. 문장대 철계단은 통행료가 100원씩이었고요.”
▲ 문장대 |
이제 알바위 문장대에 오른다. 계단을 오르는 사이 더욱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어댄다. 먼저 오른 등산인 세 사람이 관음봉쪽을 향해 야호 삼창을 외쳐댄다. 그러면서 “로또 대박이나 터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한다. 한겨울 문장대는 편안하게 쉴 만한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방으로 펼쳐진 조망은 일단 오르면 쉬 내려서지 못하게 한다. 관음봉~묘봉~상학봉~활목고개로 이어지는 서북릉, 밤치와 눌재를 거쳐 청화산을 일으켜세운 백두대간, 화려한 바위꽃 등에 얹은 채 천황봉으로 내달리는 주능선 등, 일단 눈길을 주면 쉽사리 고개를 돌릴 수 없는 풍광들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다.
선경에 취한 채 시어동으로 하산
“이거 다음 주에 동네 산악회 회원들하고 다시 와야겠는데요.”
“어휴~ 추워요. 빨리 내려가요.”
▲ 시어동 하산길에 있는 천일산제단. 한때 무속인들의 기도터였다. |
이제 대간과 칠형제봉 능선 사이에 깊숙이 파인 골짜기를 따라 시어동으로 내려선다. 얼어붙은 산길을 수시로 균형을 깨트리지만 휘청거리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 신선주에 취한 것인가, 바위꽃 향에 취한 것인가. 아니었다. 바깥 세상일을 몽땅 잊어먹고 선경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산 이름이 속세를 떠났다는 뜻의 속리산이 아닌가. 글 한필석 기자 pshan@chosun.com 사진 정정현 차장 rockart@chosun.com
원점회귀에 6시간 소요…계곡길 아이젠 필수
천황봉 직등로인 장각계곡 코스의 들머리는 화북면소재지 삼거리에서 남쪽(갈령 방향)으로 2km쯤 가면 나타나는 상주청소년야영장 직후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500m쯤 가면 장각폭포·금란정과, 그 오른쪽으로 통제소가 보인다. 통제소에서 약 2km 구간은 주민 차량만 통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차는 통제소 옆 공터에 세워놓아야 한다.
장각계곡 코스는 계곡길은 굴곡을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이어진다. 그렇지만 일단 능선으로 올라붙는 순간부터 장딴지가 뻐근할 만큼 가파르다. 통제소에서 헬기장까지 약 2시간 소요.
헬기장에서 예전 휴식년제 통제구간 안내문이 적혀 있는 입간판을 돌아서면 능선 삼거리. 여기서 왼쪽으로 10분쯤 가면 속리산 정상인 천황봉, 오른쪽으로 향하면 비로봉과 입석대, 청법대, 신선대를 거쳐 문장대로 이어진다(약 1시간40분 소요).
시어동 하산길은 평소에는 1시간 정도면 하산이 가능하지만 겨울철에는 급경사 내리막 대부분이 빙판을 이루고 있어 체력소모도 더하고, 시간도 더 잡아야 한다. 낙상 당하는 일이 없도록 아이젠을 꼭 차도록 한다.
법주사쪽으로 하산하려면 도중에 왼쪽 길로 빠지면 된다. 천황봉에서 0.6km 지점의 갈림목에서 빠지면 상환암을 거치고, 신선대 직전의 경업대 갈림목(경업대 0.4km, 문장대 1.3km, 천황봉 2.1km)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금강휴게소와 비로산장을 거쳐 법주사로 내려선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법주사 하산길은 문장대휴게소 기점 코스다. 어느 길을 택하든 관광단지까지 2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화북 기점 장각계곡~천황봉~문장대~시어동 원점회귀 산행은 6시간이면 충분하다. 거기다 분소에서 장각계곡 초입까지 움직이는 시간까지 더하면 7시간 정도 걸린다. 차량이 2대 이상일 때는 하산지점에 차를 돌려놓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택시를 이용하도록 한다. 화북분소~장각계곡 초입은 약 6km 거리. 화북택시 054-534-7447, 011-803-6463 김환동.
공원 입장료는 어른 1,6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버스 4,0000원. 법주사 매표소는 입장료 외에 2,200원, 900원, 700원의 문화재관람료가 추가된다. 화북분소 전화 054-533-3389.
상주까지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02-530-6211, 535-2111, 535-3166)과 동서울터미널(02-446-8000), 대구 북부시외버스정류장(053-357-1851~3), 청주 여객터미널(043-234-6543) 등지에서 노선버스가 운행한다.
숙식(지역번호 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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